편집자님으로부터 파일교가 도착하기 시작해서 이거 큰일났다 싶었다.
너무 솔직하지 않았나, 싶은 마음과 하고 싶은 말 다 못 했다의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초여름.
머리카락을 자른다고 근심이 잘려 나가는 것이 아닐텐데도 머리르 자꾸자꾸 짧게 잘라내었다.
최근 읽은 책 중 인상적이었던 소설.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책.
모든 경계는 선명할수록 그 안에 갇힐 위험이 커진다. ‘디아스포라 문학’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지 누가 정한단 말인가.
이 책을 다 읽은 날 저녁에 신유진 작가님의 에세이 특강이 있었는데, 주제가 <경계인의 언어>였다..
경계란 무엇인지, 정체성과 사회구조의 경계에 선 존재들에 대해, 중심이 아닌 주변에 있는 존재에 대해서,
쓰고자 하는 이에게 경계에 존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해 주시는 시간 동안 이 책이 계속 생각났다.
“폴 윤의 인물들은 길 잃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장소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잃어버리거나 무엇으로부터 도망쳐 왔는지, 혹은 눈앞의 복잡한 풍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낯선 곳에 던져져 있다. 그곳은 종종 혹독하거나 부당한 환경이지만, 그 혹독함과 부당함이 그들을 파괴할 만큼 강렬한 힘은 아니다. 그들을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몰아가는 힘이 있다면 차라리 ‘알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다. 자신이 자신에게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는다는 것. 목구멍 깊숙이에서 덜그럭거리는 그 수수께끼를 풀 방법이 없다는 것. 그들은 애착과 의미가 만들어지는 자신의 근원, 즉 세계의 감정적 기준점이 되는 장소나 인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그곳과의 연결이 끊겨 있다. 속할 수 있는 장소를 갖지 못한 채 부유하는 사람에게는 세계 어느 곳에서의 경험이든 근본적으로 비슷한 것이 된다. 그것은 어느 방향을 봐도 같은 풍경만 보이는 들판 한가운데를 걷는 듯한 삶이다. 묻거나 항의할 곳도, 대답해줄 사람도 없다. 고립된 그들은 누구에게도 내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무덤덤하게 적응해나간다. 그런 하루하루가 계속된다.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일들이 잊히고, 특별했다고 믿었던 것들도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깨달음이 찾아오면서, 고요한 일상 속에 쌓여가던 감정은 가끔씩 발작적인 폭력의 형대로 터져 나오며 독자를, 그리고 인물들 자신을 놀라게 한다. 하지만 찰나의 항변 같은 그런 순간들도 금세 지나가고, 풍경은 다시금 공평하게 건조하고 삭막하며 무감동한 것이 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_
생각해보면 난 늘 주변의 이야기, 경계에 머무는 이야기에 끌렸는데, 그건 내가 나 자신을 경계인, 주변인이라 생각해서였을까. 어떨때는 그 선을 그어놓은 나의 기준과 생각마저 오만하게 느껴지는데, 왜 엄격한 자기 검열은 항상 나 자신을 향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