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의사 선생님과 담판을 짓게 되어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가 주는 따가운 눈초리 정도는 개의치 않고 흘려보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20년이 넘는 내 사회생활 경력들이 쌓여온 결과였다. 수술실로 들어간 후 나는 대기실에서 내 양손을 맞잡았다. 땀나는 순간이었다.
‘내 아들이 드디어 세상에 나오는구나!’
점심시간이다 보니 쾌적하고 붐비지 않는 게 장점이었지만 동지들이 없어 대기실 안에서 혼자 서성여야 했다. 나는 대기실을 길게 왔다 갔다 하며 생각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특별할 것 없던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이었다. 혼자 인생을 즐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즐거운 것이 점점 사라진다. 몸도 점점 뻣뻣해지면서 감정도 같이 뻣뻣해진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였다. 하지만 세계 여행지를 한 바퀴 돌면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여기라고 느껴진다. 빈말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일에 시큰둥해진 듯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여행조차도.
‘아악’
‘아-악.’
누군가 수술실 너머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응애. 응애 '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기대하던 난 행여나 수술이 잘못돼서 의료진이 소리를 지르는 줄 알고 긴장했다. 하지만 곧 간호사가 나를 부르며, ‘아버님 탯줄 자르세요.’라고 했다.
아들이 내 아내의 목청을 닮았는지 목소리가 엄청나게 컸다. 작은 바구니에 실려 나온 아기는 울지도 않으며 무표정으로 나를 쏘아봤다. 그리곤 예능 프로에서 자주 보던 강호동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누구냐 넌?’
아들이 태어나기 전 태교라는 것을 하긴 했지만 역시 처음 마주쳐서인지 서먹하다. 아기도 나와 마찬가지로 서먹한 눈빛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고 똥그란 눈으로 아빠를 쳐다봤다. 갓 태어난 아기의 눈빛에 기가 죽어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