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⑭
오늘 제주시 최고 기온은 16도, 최저 기온은 8도. 라디오 리포터는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니 건강 관리에 유의하라고 여러 차례 일러준다. 온도는 실제 우리 일상을 예민하게 관리한다. 온도의 높낮이에 따라 먹는 것, 보는 것, 입는 것이 달라진다.
그런데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감정의 온도」라는 책을 읽다가 온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외견뿐이 아니란 걸 알았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도 온도가 있더라는 거다. 행복은 체온이 높았고 우울은 체온이 낮았더랬다.
저자는 감정의 온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몇 가지를 소개하는데, 가령 이런 예들이다. 오후 두 시의 햇볕을 쐬는 일, 물기 있고 온기 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일,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보는 일. 나는 그중에서도 이 대목에 눈길이 갔다.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는 일.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더욱이 계절이 겨울이라면, 추위를 대하는 자세는 대개 둘로 나뉜다. “제주는 확실히 따뜻하다”는 쪽과 “바람이 있어 의외로 더 춥다”는 쪽. 하지만 둘 다 첫 마음은 같은 경우가 많다. ‘조금은 따뜻하지 않을까?’란 기대 말이다.
사람들은 남국에 어떤 환상을 품는 것 같다. 비단 우리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Le Sud’라는 샹송이 있는데 영어로 ‘The South’다. ‘남쪽엔 시간도 영원하고 사람도 백만 년 이상 살아왔을 걸, 늘 여름의 땅’과 같은 가사를 보자면 프랑스인들도 남쪽을 특별히 여김이 틀림없다.
지난주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올해 마무리할 일들을 얼추 해두고 새해가 밝기 전 리프레시할 요량으로 반년 전에 비행기 티켓을 끊어둔 것이었는데, 인생이란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법, 일거리를 뚝 끊고 다녀와 허겁지겁 이어 붙이는 꼴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따뜻한 나라로 여행 가는 일이 감정의 온도를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는지 생생하게 체험하는 격이 되었다. 더운 나라 특유의 활기, 수영과 몰링(malling)을 즐기는 사람들의 생기, 햇빛과 스콜의 콜라보가 만들어 내는 찰기,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시간의 윤기까지.
말하자면 ‘기’찬 여행이었던 셈이다.
제주가 아무리 춥기로서니 서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숫자가 증명한다. 오늘 기준 서울의 최고기온은 10도, 최저기온은 –2도다. 그나마 오른 게 이 정도다. 대한민국의 가장 남쪽,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이곳 제주에서 여행작가로 사는 건 그러므로 특별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자주 쓰는 외래어가 ‘스트레스’라는데, 감정의 표현하는 말 중 가장 긍정의 꼭대기에 있는 단어가 ‘홀가분하다’라는데, ‘스트레스’에서 ‘홀가분’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곧 감정의 온도를 데우는 일이기도 하고.
내 삶의 온도계가 고장 난 것 같다면 제주로 오세요. 이미 다녀온 참이라면 또 오세요. 여행에서 갓 돌아온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행이란 말도 있잖아요. 당신의 제주 여행을 위해, 먼 훗날 다음 세대의 제주 여행을 위해 저는 내년에도 성실히 쓰겠습니다!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