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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민정 Jan 22. 2020

2020년엔 ‘무엇을’ 여행하고 싶으세요?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⑮

2020년엔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달나라로 휴가 갈 줄 알았다. 학창 시절 미래라는 시제로 글을 짓거나 그림을 그릴 때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대적 배경을 2020년쯤으로 정해두곤 했었다. 사람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다 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다들 좀 얼떨떨하게, 와닿지 않는다는 듯 무감각하게, 2020년을 맞은 분위기다. 미래의 영역으로 뚝 떼어놓은 시간을 어느덧 우리가 베어 물며 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자동차가 날고 달나라로 (아무나) 휴가 가는 미래는 아니지만, ‘더 좋은 기동력’과 ‘더 많은 여행지’라는 부분을 놓고 보자면 나는 우리가 충분히 미래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고속 열차와 저가 항공의 등장으로 국내외 어디든 이동이 빠르고 편리해졌으며, 갈 수 없는 나라보다 갈 수 있는 나라가 훨씬 많으니까. 무비자나 도착 비자로 입국 가능한 목적지 수로 순위를 매기는 헨리 여권지수라는 게 있는데,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권 파워는 세계 3위다.     


‘어디에’ ‘어떻게’ 가는지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도 크게 변했다.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에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지만 사람에 대한 상처를 지닌 두 여자 카메론 디아즈와 케이트 윈슬렛이 크리스마스 시즌 2주간 서로의 집을 바꿔 생활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영화가 개봉하던 2006년 당시만 해도 ‘홈 익스체인지’라는 개념이 낯설었으므로 퍽 인상적이었는데, 그 다다음해 나타난 에어비앤비를 필두로 이제는 ‘남의 집 여행’도 자연스러워졌다.     


소위 여행을 일상처럼 하게 된 것이다. ‘집’이란 그런 의미다. 호텔 조식을 먹는 대신 현지인이 자주 가는 시장에서 장을 보아 직접 아침을 해 먹고, 투어버스를 타고 관광지에 가는 대신 집 근처 공원을 거닐고 미술관이나 도서관을 산책한다. 미국 할리우드의 근사한 저택과 영국 전원의 예쁜 오두막집, 환경이 바뀐 두 여자가 이전에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새 인생을 찾듯이 우리도 사진이 아니라 인사이트가 남는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꼭 해외를 두고 하는 얘긴 아니다. 얼마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분석한, 제주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의 달라진 소비 패턴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읽힌다. 쇼핑이나 레저에 쓰는 비용은 줄었고 음식이나 문화에 대한 씀씀이는 커졌다. 특히, 제주목 관아지나 제주도립미술관처럼 도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에 대한 여행객의 발걸음이 늘었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확실히 대세는 다니는 여행보다 머무는 여행 쪽이다.     


새해가 되면 운동이나 외국어 공부를 계획하듯, 나는 여행을 계획한다. 운동이나 외국어 공부가 그렇듯, 여행도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다. 지키기도 하고 지키지 못하기도 한다. 다만 세울 때의 기분은 이룬 것 버금가게 충만하다. ‘올해는 어디로 여행갈까?’하고 생각하다 문득 질문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무엇을 여행할까?’ 2020년의 여행자에겐 이 쪽이 더 어울리는 질문이리라.     


2020년엔 여러분, 무엇을 여행하고 싶으세요?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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