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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민정 May 26. 2020

우리에겐 ‘여행적 하루’가 필요하다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19)

얼마 전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급기야 한라산 등반 계획을 세웠다. 마흔을 앞두고 정신무장 좀 하자는 거였다. 서른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겨울에도 우리는 같이 여행을 했었다. 목적지는 강릉이었는데…… 유감스럽지만, 정동진도 오죽헌도 가지 않았다. 시장에서 회를 사다가 숙소에 들어가 동틀 때까지 먹고 놀았다. 해돋이나 볼까 했더니만 동해안의 바다 뷰라고 다 일출 뷰는 아니었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던 기억이.     


“그때 우리 왜 강릉까지 간 거냐?”     


친구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초당순두부 먹고 카페거리를 걷긴 했지만, 그게 강릉까지 간 이유는 아닐 텐데. 실상 서른 즈음의 우리에게 ‘장소’는 별 중요하지 않았다. 스무 살에 성인식을 치르듯, 삼십 대를 맞이하며 일종의 이벤트가 필요했을 거다. 그때 우리는 잠시 어느 회사의 누구누구로 살다가 방향키를 튼 직후여서 심기일전이 간절한 상태였다. 그래서 전날 밤, 술 까기 전 방에 엎드려 누워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고 타임캡슐에도 담았던 거다.      


보통의 여행은 장소를 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다음 교통수단을 고르고 머물 곳을 예약하면 떠날 준비는 대충 끝난다. 하지만, 어떤 여행은 의미가 먼저 정해지기도 한다. 이십 대에서 삼십 대로 넘어가며 송구영신의 의미로,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진로를 고민하며 자아탐색의 의미로. 언젠가 제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언니(아마도?)는 이혼 후 홀로서기의 의미로 여행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누구나 한 번쯤 살다 보면 자유롭기 위해 길 위에서 뚜벅뚜벅 용기를 줍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신혼여행, 태교여행, 환갑여행과 같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여행이 옵션처럼 따르는 이유도 그래선지 모른다. 그런 여행은 장소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신혼’, ‘태교’, ‘환갑’에 이미 여행의 의미가 차고 넘치는 까닭이다.  

      

강릉에 다녀온 이듬해, 나는 여행기가 공모전에 당선돼 책도 내고 작가로 살게 되었다. 여행이 곤란한 시기에 여행을 얘기하는 이런 글도 쓰게 되었다. 이달 연재를 위해 과거 블로그 일기를 열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서른이 되면 사회는, 직장은, 어른들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것들을 내려놓게 된다. 잘하는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고 싶으니까.     


깜짝 놀랐다. 많은 게 바뀌었음에도 내가 지금 하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해서. 올해 우리는 한라산에 가게 될까? 잘 모르겠다. 각자 사는 게 바빠 1년에 고작해야 한두 번 얼굴 보는 정도다. 하지만 분명하다. 한라산이 아니더라도 코로나 19 탓에 어디 가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여행적 하루’가 필요하다. 장소는 별 중요하지 않다. 행복한 사람이고 싶으니까, 용기를 줍고 싶으니까. 그걸로 의미는 충분한 것이다.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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