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나는 말간 얼굴로 제주시-서귀포시를 하루에도 두세 번씩 왕복하던 올챙이 시절을 기억 못하는 개구리가 되어 버렸다. 한 시간, 한 시간 반이면 서울에선 평균 통근 시간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오가던 내게 당시에 누가 그랬다. “아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을 넘는 건데!” 꼭 그 말 때문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히 산 넘는 빈도가 뜸해진다.
취재나 잔치 같은 특별한 목적을 제외하고, 최근 몇년 간 다니는 거리는 늘 고만고만하다. 주말마다 출근하는 방송국도 차로 15분, 일주일에 한 번 장 보러 가는 마트나 시장도 차로 10분이니 딱히 반경을 넓힐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습관이란 게 무서워서 어쩌다 육지 출장 중에 동선이 길기라도 하면 기진맥진하기 일쑤이니, 그 사이 개구리가 되고도 남은 것이다.
제주도는 섬이다. 사방에 끝이 있다. 동쪽 끝 마을 ‘종달리(終達理)’는 지명에 아예 마침표가 들어간다. 아무리 멀다 한들 최대 소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동쪽의 해돋이와 서쪽의 해넘이를 하루 만에 목도할 수 있음은 제주에서 벌어지는 지상 최대의 쇼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입장이다. 이런 얘길 하고 있자 친구가 물었다.
“그럼 제주도의 ‘도’ 자가 섬 도(島) 자야?”
“아니, 지형은 섬인데 지명은 아니야. 그 ‘도’는 행정구역 쓸 때 그 도(道) 자!”
“그렇구나. 하긴 나는 제주도가 섬이라는 생각을 희한하게 한 번도 못한 거 있지. 그냥 제주도는 휴양지, 언제 어느 때고 훌쩍 떠나서 힐링하고 오는 곳이었어.”
그 말에 다시 소환되는 올챙이 시절. 맞다, 나도 그랬다. 육지 사람들은 늘 마음 한구석에 ‘제주’라는 유토피아를 품고 산다. 삶이 무료할 때, 모든 일에 무기력해지려 할 때, 내가 내 마음에 좀처럼 안 찰 때, 큰돈 들이지 않고 큰맘 먹지 않고도 가볍게 숨어들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꼭 가지 않더라도 가슴 속에 그런 장소 하나쯤 품고 사는 건 꽤 도움이 된다.
언젠가 남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육지 사람들에겐 제주가 이상향이잖아. 그럼 제주 사람들은?” 남편은 대답 대신 원 참 별스러운 것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시간이 지나면 감흥이 없어지게 마련이니까, 나의 제주가 유토피아의 영역에서 생활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음이 못내 아쉬워 안달이 났던 거였다.
하지만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지금의 나는 남편과 똑같은 표정을 지을 것 같다.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제주에 사는 동안에도 제주는 변함없이 유토피아라는 사실을. 바다나 오름도 차로 10~15분이면 닿으니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자연을 내 집 정원처럼 누릴 수 있다. 일부러 숨어들지 않고도 일상의 틈을 벌려 힐링할 수 있다는 건 무척 근사한 일이다. 나는 항상 우물 밖이 궁금한 아이였는데 제주에 살면서 우물 안에서도 충분하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내가 있는 이곳, 이 자리에서 행복할 줄 아는 태도를 익혀가는 중이다.
눈부신 업적 성공을 이루었지만, 아내를 두고 다른 이를 사랑해 모든 것을 잃은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유토피아를 그려 넣지 않은 세계지도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가 자신이 발 딛고 선 그곳이 유토피아임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그의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한때 그 문장을 열렬히 사모했던 독자로 그런 생각을 해보는 가을날의 오후다.
안녕하세요, 김민정입니다. 이 글이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마지막 칼럼입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관광을 테마로 한 여행기’라 소개했는데요. 코로나19라는 변수를 맞으면서 올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에 관한 얘길 더 많이 나누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여행의 형태는 많이 달라지겠지만, 여행이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 내가 발 딛고 선 이곳 이 자리의 행복을 발견하기 위한 시간이란 명제는 변하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로 말과 글을 통해 개굴개굴 제주를 노래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우리 또 만나요!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