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 시간에는 주로 일본 드라마를 본다. 언어는 자전거 타기와 달라서 몇 달만 가까이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만다. 공부를 겸해서 팟캐스트로 NHK를 들으며 일했는데 듣고 있는 팟캐스트가 많아서 도무지 NHK까지 손이 뻗어지지 않는다. 다음에는 듣고 있는 팟캐스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봐야지.
나고야 근교에서 식사가 제공되는 숙소 마카나이소가 있다. 마카나이는 식사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요식업 종사자 혹은 조리사의 스텝밀을 지칭하기도 한다. 식사가 제공되는 숙소라는 의미 그 자체의 이름인 이곳은 미혼모 술집 사장과 초등학생 아이,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 외국인 유학생, 무명의 만화가와 평범한 회사원이 함께 살아간다. 혼자 숙소를 꾸려 나가는 쿄코는 조리 실력이 형편없지만 함께 하는 식사에 의미를 두고 이 숙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조리사인 동생 료를 불렀고, 마침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된 료는 언니의 숙소에 들어가 기숙사 구성원들과 좌충우돌 부딪혀가며 조리를 하는 자신과 꿈에 대해 생각하고 사람들을 이해하고 어울리게 된다.
이렇게 써 놓으니 꽤 그럴 듯 하지만 이 드라마, 정말 썩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 2016년의 드라마라는 사실이다. 2021년에는 용납되지 못할 성희롱이 개그의 요소로 소비되고 있다. 딱히 나아졌으리라 기대하지 않지만.... 가슴을 보기 위해 애를 쓰거나 서슴지 않고 몸을 더듬는 행위, 바바리맨 등등 다시 생각하니 머리가 뜨끈해지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았다. 바로 드라마의 주인공 료, 때문이었다. 잘 못선 보증 때문에 거액의 빚을 떠안고 언니 집으로 들어가서도 나는 내 공간이 필요하다며 마당에 텐트를 치고, 공동화장실은 죽어도 사용하지 못하겠다고 새벽녘에 겨우겨우 나와 화장실을 쓴다. 내내 미간을 찌푸리고 소리를 지른다. 매일 식사를 준비하면서 사람들의 첨언에 화를 버럭버럭 내고 누가 뭐라 하기 전에 먼저 신경질을 내며 실수를 저지르는 료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다. 낯선 관계의 서투름이 단단한 나를 위협하는 것 같아 먼저 불쾌한 경험을 선사하고, 그 행동에 후회하고 손톱을 뜯으며 잠 못 드는 모습까지도 똑같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사하는 위로마저도 닮아서 애처롭고 짠했다.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언니를 보며 그 미소가 진짜 짜증 나! 하고 외치지만 속이 단단해야 나올 수 있는 미소가 부럽기도 하다. 누군가는 화를 내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만, 싱긋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순간을 가진 사람의 힘을 느낄 때마다 그럴 수 없는 내가 싫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 짜증 나는 거다. 료에게 온 마음을 다해 공감하는 중입니다.
료가 김치가 들어간 메뉴를 만드는 날이 있었다. 와 맛있겠다, 맛있다만 연발하는 사람들 앞에서 일본음식이 아니니까 이게 맞다 저게 맞다 하는 얘기 안 나올 거니까 하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누군가가 내게 왜 일본음식을 기반으로 하냐고 물었을 때 나도 똑같이 대답한 경험이 있어서 놀랐다. 작은 매장을 내게 되는 료가 자신만의 식사 방식을 가진 손님을 참지 못하고 안 팔 테니까 나가! 하는 장면에서도 정말 볼썽사납단 생각이 들면서도 료를 이해하고 만다. 손님과 화해하는 순간까지도 명확히 겹쳐지는 과거의 내가 있다. 별안간 '펑'하고 터트리고 마는 순간에 스스로도 질색하지만...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비겁하게도 그렇게 타고나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타고난다는 건 뭘까요? 몇 년 전, 친한 친구에게 혹시 내가 그러더라도 나랑 친구 해줘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안 그러면 되잖아?라고 담백하게 말하는 친구에게 맞아, 안 그러면 되지. 하고 대답했지만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나의 갑작스러운 화는 무형의 위험을 내 마음대로 부풀려서는 지나치게 대응하는 자세에 기반해 있다. 낯선 사람을 앞에 두고 온 힘을 다해 짖는 치와와처럼. 이런 정도의 불안도 상담을 받는 게 좋을까 싶다가도 에이 이 정도야 뭐,라고 생각하고 그만둔다. 아직 상담의 문턱이 높게 느껴지는 건 내가 옛날 사람이 되어 간다는 증거겠지?
그래도 좋은 사회와 구성원들에 둘러싸여 있다. 드라마 속 료처럼 내게도 좋은 사람들이 많아 나를 이해해주고, 다독여준다. 나라면 나랑 친구 안 할 것 같은데? 하면 나니까 친구 해준다 하는 듬직한 친구들 덕분에 사람들과 섞여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아직도 배울 게 많고 성장 중이다. 39에도 40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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