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코로나로 한가해진 광장에서 할 수 있는 건 마냥 손님을 기다리며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이었다. 일상처럼 유튜브를 보다가 구독 중인 재재의 문명 특급에 나온 몬스타엑스에 말 그대로 덕통사고를 당했다. 영상을 보고 앨범을 구입하고 컴백을 기다리는, 소위 말하는 덕질이라는 걸 하면서 즐거웠던 일 중 하나는 1년이 넘게 매주 수요일 밤 찾아온 민혁의 보그싶쇼였다.
보고 그리는 쇼, 보그싶쇼는 몬스타엑스 민혁이 호스트로 나와 다양한 연령대의 사연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는 방송이었다. 라디오 세대인 나에게는 즐겨 듣던 라디오의 추억이 떠올랐고, 그림과 함께 진행하는 라디오라는 독특한 콘셉트는 내가 좋아하게 된 아이돌, 민혁의 그림 실력까지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다양한 뮤지션들을 게스트로 초대해 좋은 노래들, 좋은 아티스트들을 편견 없이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어린 시절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돌의 생애주기에 걸맞게 다양한 사연들에 자신의 경험을 함께 풀어내며 많은 공감과 위로를 선사했다. 그의 진심 어린 조언에 마흔의 나조차도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 하는 순간들을 자주 만났다. 특히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방송계에서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멋있는 가수가 되고 싶었고, 무대 서는 게 좋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게 좋았기 때문에 가수가 된 거죠. 솔직히 정확한 이유는.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위해서 데뷔해서 노래하고 가수가 되었는데 진짜 팬 분들은 우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무한한 거예요. 이게 이유가 없는 거야. 원래 사랑하거나 응원하는 게 있어요. 가족 있을 거고 연인이 있을 건데 다 이유가 있거든요 사랑에, 무한한 사랑은 없거든요.'
무한한 사랑은 없지만 무한한 사랑을 주는 팬이라는 존재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들을 때 특히 그랬다. 각종 포털에 쌓인 불친절하다는 평가에 불친절한 게 아니라 비 친절을 지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서비스업 시장의 지나친 친절을 비판해 왔다. 광장은 뾰족한 사람들의 다양한 소수성을 존중한다며 사회적으로 관용된 무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규칙들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그것이 불편하면 굳이 광장이 아니라 보통의 가게들을 가면 된다고 고자세로 운영해 왔던 것도 사실이었다. 민혁이 후배 아이돌에게 해주는 조언을 들으며,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음식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는 건, 몇 번이고 찾아와 엄지를 치켜주는 분들 덕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분들이 남긴 SNS의 표현들과 입소문 덕분에 또 새로운 사람들이 광장을 찾게 되었을 것이다. 비 친절이라는 단어를 방패로 그 마음을 가볍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하며 조금은 다정해지려 애쓰기도 했다. 실제로 몇 년을 함께 일하며 나를 가까이서 지켜봐 온 알바님도 민혁을 좋아하고 나서 내가 꽤 부드러워졌다고 하는 걸 보면, 나는 지난 1년간 민혁에게 적지 않게 선한 영향력을 받아왔던 것 같다.
민혁 덕분에 지난한 코로나 시대에 언제 손님이 올까, 언젠가는 손님이 0명인 날이 오지 않을까 매일, 매주가 걱정이던 일상에서 일주일에 단 하루만은 한가해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한가하면 오늘은 여유롭게 보그싶쇼를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마감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위드 코로나가 선포되고 조금은 바빠진 요즘에도 수요일만은 챙겨 만났던 보그싶쇼가 1년 3개월의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코로나와 함께 왔다 코로나와 함께 떠나는 보그싶쇼에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의 위로를 받았는데,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동안 나의 위로가 되어준 내 아이돌, 민혁.
보그싶쇼의 호스트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지난한 코로나의 시간들을 잘 보낼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