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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장 Nov 23. 2021

016. 영화, 십개월의 미래


 급작스레 임신 사실을 확인한 미래에게 미래는 성큼성큼 다가온다. 연애와 다른 결혼, 현실. 임신한 상태의 몸과 마주하는 일, 임신을 이유로 업무배제가 되거나 취직활동이 어려워지는 모든 순간들이 들이닥친다. 임신 하나로 신나게 놀고, 술 마시고, 다정하게 연애하고, 치열하게 일하던 미래는 그 10개월 사이 전혀 다른 세상과 마주한다. 


 우리가 모르는 임신과 출산의 이야기, 라는 형식의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요즘 약간의 코믹함을 곁들인 십개월의 미래는 조금 마음 가볍게 볼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책이었다면 나는 끝까지 읽지 못하고 덮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82년생 김지영>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겪지 않아도 내 주변에서 현실로 부딪히며 푸념하던 이야기들이 그대로 담긴 이 영화의 서사는 지난하고 괴로웠다. 이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절반의 성별은 말도 안 되는 허구, 하나의 사례를 일반화하지 말라고 비판하지만 여성으로 대한민국 사회에 살아보지 않았다면 그런 말 마세요 쯧쯧,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싶어 진다. 상영관을 뛰쳐나오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클라이맥스에 나만큼이나 충격을 받은 미래의 결정은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박수를 쳐야 될 것 같아 일어났지만, 내가 치는 박수는 미처 리듬감이 생기지 않고 떨떠름하게 모두가 앉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영화에서 성공한 언니의 임신이 미래의 임신보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장면이 너무 서글펐다. 여성에게 성공이란 뭘까. 그리고 모성이란 뭘까. 


 꽤 발랄하고 개그 코드도 다양하게 심어져 있지만 나는 영화를 보고 난 발걸음이 무거워 주위의 누구에게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여성들이 보고 나와 같은 고통과 괴로움을 겪기도 원치 않고, 남성들이 보고 이런저런 핀잔의 말을 얹는 것도 원치 않는다. 상영관을 나와 햇빛이 비치는 거리를 걸으면서도 눈을 가느다랗게밖에 뜰 수 없었다. 짧은 길이었지만, 괜히 하늘보다는 바닥을 보고 걸었다. 그래도 이 영화 덕분에 몇 년째 다시 펼치지 않았던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용기가 생겼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4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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