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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Nov 12. 2023

조상의 실재

왜 인간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조상을 기리는 행동을 끊임없이 하는 것일까? 아마 우리가 우리의 선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면 조상을 기리는 삶의 양식과 행동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기에 형태와 수준을 달리하여 그들을 기리는 행동을 계속해나간다.


그것이 추상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엄연히 우리의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면, 뉴런 속에 각인되어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자기 자신을 찾아온다면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명백하게 나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든 안 하든과 관계없이 우리는 그것에 대해 계속 판단하고 입장을 고민하고 행동을 결정해야만 한다. 조상이란 그렇게 실재하지 않지만 우리의 인식에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존재다. 그래서 무시할 수 없다. 기리는 행동의 근원은 거기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조상이 축복인 경우도 반대로 괴로움인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존재가 나의 탄생의 전제가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찾아온다는 점이다. 흘려보낼 수는 있을지라도 찾아오지 않게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이 신호의 근원을 어떻게 규정할지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지 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무엇이 이 상황에 있어 마땅한 태도와 행동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것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그 추상적인 존재에 짓눌리고 휘둘린다.


실재하는 존재는 정말로 실재하는 것인가? 눈을 감았을 때도 눈앞에 보이던 존재가 계속해서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창고 안에 처박혀 그 존재를 까마득히 잊은 물건은 실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어쩌면 모든 것은 그냥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투영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에 구분은 없다. 그 대상이 우리에게 파도를 흘려보낸다면 말이다.


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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