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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Nov 12. 2023

자식이라는 선택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 없던 힘도 생긴다는 말. 그 속에는 오묘하고도 모순적인,  생명체가 새끼를 향해 가지는 이중적인 마음이 담겨있다. 유전자를 물려주는 과정에서 맞이할 수밖에 없는 희생. 하지만 그 희생을 위로하고도 남는 생명체적 보람.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표현되는 말이다.


부모는 자식의 의사를 물어보고 그 존재의 탄생을 결정할 수 없다. 생명체의 탄생은 오롯이 그 부모의 판단과 결정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게 존재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볼 수 없기에 그 탄생의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 자신에게 전가된다. 책임감은 거기서 비롯될 것이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희생하고 노력한다. 자식을 위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끊임없이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자식의 행보가 나의 선택과 결정과 노력의 가치를 규정한다. 그래서 동일시된다. 나 아닌 존재를 위함이지만 그것이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함이 된다. 스스로를 드높이는 것보다 새끼를 드높이는 것이 내 존재의 정당성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모순적으로 그것이 나를 더 온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군가를 책임지려 할 때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은, 위할 수 있는 대상을 가진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더 큰 힘을 부여하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탄생될 존재에게 그 의사를 확인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탄생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유구한 경험의 역사가 그것이 결국 스스로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증명해 온 바가 있어서가 아닐까. 힘들어도 자식을 낳아보라는 말은 거기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다.


2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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