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는 시대의 천재이지만 많은 비판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그의 주도 하에 많은 명작을 만들고 남겼지만 그의 꿈만을 실현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자유로운 연출의 권한을 가질 수 없었다. 영화를 만드는 자신의 방법을 제대로 실천해 볼 수 없어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그 명성과 달리 지브리 스튜디오는 말 그대로 작은 스튜디오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 공간은 미야자키 하야오 한 명의 꿈만을 담을 수 있는 그에게만 최적화된 곳이었다.
좋아 보였던 것이 나쁘게 보인다. 내가 받았던 지브리 애니메이션으로부터의 감명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제외한 지브리의 많은 창작가들이 자신의 꿈을 스스로 거세하고 한 사람의 절대자를 추종한 결과물일 수 있다. 한 사람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한 사람이 가진 에너지만으로는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은 슬픈 운명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그다음이 필요하다. 다른 이의 꿈을 실현하는데 희생한 만큼 자기 자신의 꿈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을 권리. 회사라는 집단이 성장하고 커져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목적하는 바를 실현시켜 볼 기회까지도 늘리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지브리와 달리 디즈니 스튜디오는 큰 폭의 성장을 이루고 한 사람의 천재의 역량에 기대는 방식이 아닌 시스템과 분업이라는 체계를 확립함으로써 그 안에 다양한 전문성과 창의성과 기회를 담았다. 그러한 프로세스 속에서도 디즈니라는 일관된 브랜드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규정과 시스템 매뉴얼을 구축해가지 않으면 더 높은 권위에 있는 사람의 의사결정 방식이 계속해서 조직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것을 구축해 가면 한 사람의 감이나 신념이 아닌 시스템 자체로 의사 결정을 하게 되고 그 시스템을 떠받치는 다양한 전문성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자연히 스미게 된다.
2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