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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Jun 03. 2024

산산이 부서져 사라저도 좋을 만큼

[6일 차] 폰페라다 - 광장

기름진 느낌의 피자는 별로 맛이 없었지만 끼니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본적 소임은 다했다. 힘들고 지친 하루였다. 모든 필요를 채우고 정비를 마친 뒤 광장으로 나가 그 순간을 즐겼다.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유럽의 광장. 특유의 늦게 지는 태양은 아홉 시가 다 될 때까지 광장을 비췄다.


많은 인파로 나를 밀어내던 광장의 가게들은 허기짐이 사라지니 단순한 볼거리가 되었다. 광장에는 벤치가 많았고 해의 변화로 벤치들은 점점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그 변화에 따라 나도 몇 벤치를 이동해 가며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인파들 사이를 서성이며 글을 썼다. 내 옆에 와 앉아 한동안 시간을 보내던 몇몇 서양 어른들은 벤치에 앉을 때와 떠날 때 '올라'그리고'바이바이'라며 내게 인사를 해줬다. 광장 주변의 사탕을 파는 가게에서 콜라를 하나 구매했고 정확히 동전으로 1.8유로를 건넨 나에게 주인은 '페펙트'라고 응답해 줬다.


그 중앙광장에서 눈을 감고 데미안 라이스를 들었다. Grey room,  Colour me in, The greatest bastard. 그 평화로운 공간에서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하는 기분은 뜨겁게 내리쬐는 이 햇살에 내 몸이 사르르 분해되 가루가 되어 바람에 산산이 날려져도 상관없을 것 같은 벅차오르는 느낌의 황홀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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