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LO Jun 15. 2024

뉴턴의 3법칙. 무엇인가를 남겨야 앞으로 간다.

[10일 차] 트라야 카스텔라 -> 사리아

영화 인터스텔라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인듀어런스호를 일부러 블랙홀 쪽으로 돌진시켜 그 중력을 이용해 원심력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이었다. 블랙홀 이름은 가르강튀아인데 해당 장면에서는 이 블랙홀을 돌아서 빠져나올 때 본선에 연결되어 있는 몇 착륙선을 분리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본선을 최대한 가볍게 하여 자칫 빠져나올 때 동력이 모자랄 수도 있는 상황애초애 막는 것이었는데 주인공 쿠퍼(매튜 맥거너히)는 이 대목에서 착륙선 하나와 함께 스스로 버려지는 것을 선택한다. 본선의 고장으로 원격으로 착륙선을 분리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착륙선에 직접 탑승하여 수동으로 그 연결을 해제한 것이다. 이는 본선에 탑승해 있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브랜드(앤 해서웨이)를 구하기 위한 자기희생이었다. 이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해 깜짝 놀라는 브랜드에게 쿠퍼는 통신으로 이렇게 말한다.


" 뉴턴의 3법칙. 무엇인가를 남겨야 앞으로 가잖아 "


쿠퍼는 그렇게 블랙홀로 떨어진다. 그리고 '인터스텔라'하면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인식되는 그 책장 뒤의 공간, 5차원 세계로 빨려 인류를 구하게 된다.


뉴턴의 3법칙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릎을 구부렸다가 바닥을 밀면 그 반작용으로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 또는 로켓이 연료를 폭발시켜 뒤로 분사하면 그 반작용으로 몸체가 앞으로 가는 것과 같은 현상들의 원리를 설명한다. 사실 이 장면은 뉴턴의 3법칙보다는 운동량 보존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이기는 하는데 로켓의 경우처럼 무엇인가를 뒤로 버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장면이었다. 영화에서 인간들과 우주 탐사에 동행한 AI로봇 타스는 그보다 더 비유적인 표현을 남긴 채 쿠퍼보다 먼저 가르강튀아로 추락하기도 한다.


" 인간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만큼 무언가를 뒤에 버리는 것이죠. "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알베르게에는 물건이 많이 버려진다고 한다. 이런저런 욕심으로 물건을 잔뜩 가져왔다가 그 무게가 감당이 안 돼서 버린다는 것이다. 그 버려진 만큼의 무게가 자신의 욕심이라고 한다. 이 말을 사전에 새겨들은 나는 순례길 짐을 쌀 때 최대한 과해 지지 않게 노력을 다. 그 결과 몸무게의 1/10 수준인 6.8kg의 배낭으로 순례길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제법 적당한 무게의 짐을 챙겨 순례길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다양한 물건들과 작별을 하게 됐다. 신기하게도 거의 매일 한 개씩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혹시 몰라 가져온 나무 수저 세트, 빨래망, 옷핀 등이 없어졌고 나중에는 해를 막아주던 모자도 없어졌다.  책 한 권도 분실했다. 대부분 알베르게를 떠날 때 잘 챙기지 못해서 놓고 온 물건들이었는데 나중에는 그 종류가 많아져서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가 되기도 했다.


그 물건들은 무게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과 인식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른 물건들과 동일하게 뇌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에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의 물건들을 가지고 있었던 탓인지 그 물건들은 연이어 내 곁을 떠났다. 마치 똑같은 물건이 7,8개를 넘어가면 한 번에 그 숫자를 파악할 수 없듯이 많은 종류의 물건들은 내가 그것들을 다 챙겼는지 아니면 챙기지 않았는지를 단 번에 파악할 수 없게 했다. 항상 새기는 '사람의 마음은 한정된 자원이다.'라는 그 말처럼 가진 물건을 매 순간 모두 헤아리기에는 마음에 한도가 있었다.


그 물건들은 경우에 따라 대체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스텔라의 메시지처럼 몸과 마음을 가벼이 하는 계기는 됐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이에게 추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운명 같은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길에서 만나는 사건 사건들은 진리나 인생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상징과 비유를 가지고 있다. 이별한 것들에 미련을 갖지 말고 익숙해지거나 새로움으로 채워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막 속에서의 사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