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은 다른 걸 떠나서 이 자체가 엄청나게 규칙적인 하나의 루틴이다. 일단 여섯 시가 되기 전에 눈이 떠진다. 세수를 할 때도 있고 굳이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아침에 머리를 감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드라이기로 말리는 과정이 없으니 아침이 고요하고 부산스럽지 않아서 좋다.
그러고 나서 바로 걷기에 돌입한다. 이삼십 킬로를 대략 오전 중으로 걷는다. 해가 뜨는 과정을 매일 몸으로 느끼는 과정은 상쾌하고 경건하다. 새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거닐면 자연히 명상이 되고 마음이 맑아진다.
허기가 지면 바에 들러서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가지고 다니는 간식을 먹는다. 내 몸이 필요할 정도만 먹고 또다시 걷는다. 그러는 과정에서 쉬어야겠다 싶으면 쉬고 걷는 게 무리가 없으면 계속해서 걷는다. 모든 것들을 나의 신체와 마음의 리듬에 맞춰서 진행한다. 과함과 부족함이 파고들 여지가 많지 않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체크인을 하고 몸을 씻는다. 짐을 풀고 침대를 정비한다. 그리고 빨래를 한다. 빨래라는 가벼운 육체노동을 하면 하루를 마감하는 느낌이 든다. 세탁물이 깨끗해지는 과정을 느끼는 건 그 자체로 약간의 상쾌함을 제공한다. 물론 손빨래는 조금 귀찮고 힘들기는 하다. 하지만 그 마저도 하다 보니 힘을 크게 들이지 않는 요령이 생겼다.
그러면 대략 시간이 두세 시간 된다. 밥을 챙겨 먹거나 잠을 좀 잘 수도 있고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낸다.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는 시기의 스페인은 저녁 아홉 시가 넘는 시간까지 해가 쨍쨍했다. 그건 저녁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기도 애매할 정도의 강렬한 태양이었다. 아홉 시나 열 시 사이 일찍이 침대에 누워도 그 자리가 창가라면 머리맡으로 빛이 감돌았다.
갸름해진 얼굴을 보니 순례길을 걸으면서 살이 꽤 빠진 것 같다. 몸이 가볍고 건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건강해진 게 아니라 내 몸은 원래도 이렇게 건강할 수 있다는 것.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면 건강이란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라는 걸. 내 일상은 얼마큼 어그러져 있길래 그리도 심신이 아팠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엄청난 관성들이 도사리고 있는 나의 본연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실로 내키지 않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