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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Jun 03. 2024

군량미를 확보하라 2

[7일 차]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의 중심에는 아주 오래된 건물이 하나 있었다. 언뜻 봐도 엄청나게 거대한 건물이었는데 해당 건물 자체를 공립 알베르게로 쓰고 있었다. 들어가서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오랜 역사가 내부 곳곳에 스며들어 있을 것 같은 공간을 순례자 숙소로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 머물렀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주변을 맴도는 다른 순례자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찍은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랬다.

구글맵을 검색해 보니 마을에는 몇 개 슈퍼마켓이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인이 운영한다는 한 잡화점과 까르푸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철수한 지 이미 오래된 그 까르푸. 단지 친숙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심리적으로 묘하게 기대지는 측면이 있었다. 중국인 잡화점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식료품점이라기보다는 잡다한 물간들을 파는 다이소 같은 곳이었는데 그래서 신선식품은 없지만 몇 가지 포장식품을 팔 고 있었다. 구글 리뷰에서 선명히 확인할 수 있는 '신라면'과 '처음처럼'. 익숙한 이름과 그림들을 낯선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스페인은 낮 시간 중간에 가게들이 한두 시간 영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중국인 마트도 4시 반 이후로 영업을 다시 시작한다고 설명이 되어있었다. 한두 시간의 짬이 나는지라 광장 근처의 한산 한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한 잔 마시며 한 동안 음악을 들었다. 밖은 뙤약볕이 내리고 있었지만 어닝으로 그 햇빛을 막아주는 바의 마당은 최고의 안식처였다. 단 돈 2유로에 구매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과 공간감이었다.


시간이 되자 우선 중국인 마트에 들렀다. 리뷰에서 보던 그대로 매울 '신'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신라면이 있었다. 다른 종류의 한국 라면도 팔고 있었지만 평소의 취향대로 신라면을 선택했다. 하나에 2.2유로로 이쪽 상황에서는 꽤 고가를 자랑했는데 두 개를 살까 고민하다가 욕심 같아서 하나만 구매했다. 라면 옆에는 캔으로 된 볶음김치도 팔고 있었지만 굳이 구매하지는 않았다.


그다음 까르푸에 갔다. 까르푸는 동네에서 거의 끝 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중앙광장에서 몇 분을 걸어가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하던 까르푸라고 하면 종합대형마트 중 하나였지만 이곳 까르푸는 그 정도 규모는 아니고 동네의  큰 마트정도의 사이즈였다. 마트 안에는 빵이나 과일 냉동식품 음료 정육 등 마트에서 파는 전형적인 식료품들이 진영 되어 있었다.


카트를 하나 잡아 빼어 진열대를 천천히 돌면서 어떤 물품을 구매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기본적으로 물은 필요했고 언덕을 오를 때 지칠 수 있으니 당을 채울 수 있는 간식도 필요했다. 그리고 알베르게에서 식사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필요했다. 더불어 건강한 식단을 위해 야채나 과일도 필요해 보였다.


결과적으로 1.5L 물하나, 사과 두 개, 초코스낵 한 봉지, 중간 사이즈 바게트 하나, 그리고 4개들이 소시지를 구매했다. 처음엔 베이컨도 사려했지만 소시지와 베이컨을 둘 다 사는 건 과할 것 같아 소시지만 구매했다. 냉장으로 보관해야 하는 식품이긴 하지만 진공포장이라 하루이틀은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침의 서늘한 날씨를 이용해 이동하고 이후에는 알베르게의 냉장고를 이용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계산대에 고른 물건들을 올리고 계산을 하려는데 점원이 사과 봉지에 가격이 붙어있지 않은 걸 발견했다. 우리네 마트처럼 저울에 올려 가격 스티커를 뽑아 붙여야 했는데 친절하게도 계산대의 점원이 직접 사과를 저울로 가져가 가격표를 붙여다가 계산해 줬다. 장본 물건들을 비닐에 담아 한 손으로 들어보니 꽤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알베르게에 돌아와서는 장본물건들을 그대로 냉장고에 보관했다. 다시 거실에 앉아 못 쓴 글들을 쓰고 아직 정해야 할 게 많은 나날들에 대한 이런저런 결정을 했다. 어떤 알베르게로 갈 것인지, 순례길 이후 여행일정은 어떻게 해야 할지, 교통편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관해서다.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에게 장보기를 권했던 그 남자와 그 사이 알베르게에 도착한 듯한 한 명의 여자가 무슨 주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대화를 한참이나 주고받았다.


밤은 또 찾아오고 다음 날을 위해 수면을 취해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얇은 부직포 재질의 침대 시트를 제공하는 다른 알베르게와 다르게 이곳 호스텔은 조직이 강한 면시트를 제공해서 잠자리가 조금 더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지자 역시나 그 남자의 주도로 같은 도미토리를 쓰는 두 여자가 별안간 체조를 하기 시작했고 그 권유가 나한테까지 오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날의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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