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에서 묵었던 숙소도 전날과 같이 알베르게보다는 호스텔 느낌이 더 강했다. 외곽에 위치하여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을 더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었는데 리셉션에는 사람대신 내 이름이 적힌 열쇠꾸러미가 있었다. 처음에는 번호가 어떤 걸 의미하는지 모르겠어서 방을 잘못 들어갔는데 도미토리가 아닌 한 노부부가 묵는 3층의 방으로 들어갈 뻔했다. 문을 열어 나에게 여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그 노부부의 당황한 표정이 눈에 선하다. 도미토리는 사실 1층 리셉션 바로 왼쪽에 위치해 있었다. 문이 닫혀있어서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도미토리에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아서 전체가 조용했다. 오히려 주방이나 기타 공간들은 청소하고 정리하는 사람들이 분주히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호스트인가 싶어서 말을 걸었지만 뉘앙스로 듣고 보니 호스트가 아니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익숙한 듯이 짐을 내려놓고 침대를 정비하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루틴 한 생활이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순례자의 생활 패턴이 계속해서 체화되고 있었다.
할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점차 숙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신체가 부피감이 있는 한 서양 남자가 나 다음으로 들어왔는데 한 번은 내가 방을 나가려는 찰나에 이 남자도 방으로 들어오려고 해서 문을 열었을 때 서로를 예상치 못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오 마이 갓. 암 쏘 쏘리"
"오 암 쏘 쏘리 투"
남자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미안하다는 표현을 해댔다. 점차 알게 됐지만 남자는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에 표현이 풍부한 사람이었는데 정비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숙소를 나가 어딘가로 가려는 참인 것처럼 보였다.
" 나는 지금 마트에 가서 먹을 걸 좀 사 오려고 하는데 뭐 사다 줄까요?"
" 아, 저는 점심을 이미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번 여행에서 일일일식(one meal a one day)을 하고 있어서 괜찮을 것 같네요."
일일일식을 하고 있다는 나의 말에 남자의 눈은 휘동그레 졌다. 사실 며칠을 돌이켜보면 본의 아니게 아침을 챙겨 먹고 있었기 때문에 일일일식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녁을 딱히 챙겨 먹지 않고 있고 식사 다운 식사는 한 끼 정도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정도는 맞고 반정도는 틀린 말이었다. 일일일식보다는 내가 필요한 만큼 먹는 쪽으로 향해가고 있었는데 여하간 이 말 때문에 남자는 뭔가의 걱정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 와우. 혹시 내일 어디까지 가나요? "
" 아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뭐였더라 "
" 오 세브레이로까지 가나요? "
" 아 맞아요. 오 세브레이로 "
" 오 세브레이로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해서 힘들 거예요. 만약에 오세브레이로로 한 번에 가지 않고 직전 마을에서 머물면 괜찮긴 한데 거긴 식료품을 살만한 마트가 없어서 여러모로 여기서 장을 보는 게 좋을 거예요. "
" 아. 생각을 좀 해봐야겠네요. "
남자는 스마트폰으로 한 앱의 화면을 보여주면서 오세브레이로로 가는 길의 해발 고도 변화를 그래프를 통해 설명해 주었다. 폰세바돈이 최대의 고비일 줄 알았는데 그걸 보니 또 하나의 고비가 남아있는 듯했다.
거실에 앉아서 사용한 돈을 결산을 하고 잠시간 휴식을 취하던 나는 남자의 말을 잠시 곱씹어 보았다. 자기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이야기에 완전히 귀를 닫는 것도 그리 좋은 태도는 아니다. 적절한 균형과 유연함 속에 올바른 결정이 따른다. 고난의 행군이 예정되어 있을 것 같은 내일을 위하여 군량미를 확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