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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객 Aug 02. 2024

'조어'의 카타르시스

[12일 차] 포트로마린 -> 팔라스 데 레이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동료 순례자와 작별의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또 나대로 길을 걸었다. 여유는 계속되었다. 이전의 날들과 달리 나를 강제하는 무엇에서 조금 더 해방된 느낌이었다. 쉬고 싶을 땐 길 위의 밴치에 앉아 그저 시간을 보냈고 또다시 길을 걷다가 무엇인가 괜찮은 생각이 떠오르면 어디든 앉아 메모를 했다. 그것은 짧은 어구이기도 했고 하나의 완전한 문장이기도 했다.


'인디언들은 길을 달리다 자주 멈추곤 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알게 된 지 꽤 오래된 이야기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어딘가를 향해 달리다 자칫 자기의 영혼이 자신을 쫓아오지 못할까 봐 수시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고 한다. 인디언들의 마음처럼 그날의 나는 수시로 가던 길을 멈춰 서며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했다. 몸이 앞서면 생각이 자기 나름의 길을 걸으며 따라오는 듯했다.


길 위에서 지나치던 카페들 중 한 곳은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공간에는 지붕이 쳐져있어 점차 수직으로 향해가는 태양 빛을 가려줄 수 있었다. 날씨가 습하지 않은 날씨에서는 햇빛만 피할 수 있으면 쾌적한 환경을 즐길 수 있다. 해를 피할 수 있으면서도 탁 트인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카페는 그런 면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심지어 사람도 많지 않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가 좋았다. 또다시 생각을 바라보고 욕구가 올라오면 그 생각들을 '글'이라는 형태로 남기곤 했다.



'글쓰기', 또는 '작가'라는 말 자체에는 그것의 목적이 담겨있지 않다. 행위만 담겨있을 뿐이다. 글쓰기는 말 그대로 글을 쓴다는 뜻이다. 작가는 글 쓰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만 무엇인가를 짓는 사람. 창조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물론 그 단어의 언어 자체로서의 뜻 뒤에는 사회적인 의미가 담겨있지만 말 그대로만 따져보면 글쓰기는 그냥 글을 쓰는 행위일 뿐이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가변적이고 선택적이다.


글을 쓰다 보면 단지 '말을 만들어 가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건축으로 치면 망치질이나 톱질 등의 기초적인 행위가 된다. 말의 조각들을 조합하여 문장과 문단을 만들고 그런 요소들이 서로 중복되는 역할을 하지 않도록 군더더기를 계속 걷어내 가는 행위. 그 과정 자체에서 때로는 즐거움을 때로는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럴듯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드는 순간 글을 쓰는 것이 괴로워지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잘 정돈하여 노트나 컴퓨터 등 외부세계로 최대한 손상 없이 이관하겠다는 정도로만 대하는 것이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더 중요한 태도가 될 때가 있다. 물론 그 안에는 최소한의 방향성이나 의미 목적 등이 담겨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세부적인 측면에서 그 결과를 스스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글쓰기에서 내가 장악할 수 있는 것이란 여러 가지 단위의 말을 만들어내는 '조어'에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한 편의 글이라는 것이 하나의 결과물이라면 단어 하나, 문장하나, 문단하나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과물을 향해가는 과정이다. 고인이 된 고 신해철 씨는 '강심장'이라는 오래된 프로그램에서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짧은 순간이고 그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 이 일은 괴로운 일이 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은 제어할 수 없는 것을 제어하려고 할 때 불행을 느낀다는 말에도 과정의 중요성이 담겨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정을 만드는 것일 뿐 결과는 예측할 수도 제어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도 그 과정에 해당하는 '조어'자체에서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줍는 것'이라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생각이란 내 주변의 물리적인 환경에 영향을 받아 발생하는 것이고 걷는다는 것은 그 물리적인 환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변화 속에서 다양한 생각이 발생되고는 하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처음부터 끝까지가 걸음의 연속이었고 그 속에서 발생한 다양한 생각들은 글쓰기의 원재료가 되어주었다. 그 원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글을 썼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에게 있어서 '조어'의 카타르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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