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페드로우소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줄을 서고 알베르게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은 가방으로 자신의 위치를 표시해 뒀었고 맨 마지막 사람만이 직접 자리를 깔고 바닥에 앉아있었다. 보아하니 그 순례자도 이글거리는 날씨에 꽤나 지쳐있는 듯 보였다. 이제 덥다는 말도 거의 지겨움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그 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말도 없어 상투적인 인사말을 건네며 나도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알베르게 입구 위 쪽이 처마처럼 되어있어 다행히 살짝 햇빛을 피할 수 있었다. 6월도 이 정도인데 7,8월에 순례길을 걸었다면 그야말로 일사병을 예약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뻔했다.
오 페드로우소 공립알베르게는 시설이 상당히 신식이어서 내부 이곳저곳이 상당히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의자와 테이블이며 식당, 욕실, 화장실, 선반, 침대 등 어디 하나 음침하거나 낡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러한 환경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숙소로서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폰세바돈의 그 열악했던 알베르게와 비교하면 천국과도 다름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페드로우소의 공립알베르게도 여느 갈라시아 지방의 알베르게들처럼 식당에서 식기를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 좋으나 싫으나 밖에 나가서 식사를 챙겨 먹어야 했다. 잘된 일이었다. 어차피 마지막 날이라 빨래도 다음날의 숙소에서 모두 한 번에 해결할 참이었는데 이래 저래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샤워를 마친 뒤 구글맵으로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을 찾아보았다. 마을은 또 좁고 길게 뻗어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식당이 그 초입에 위치하고 있었다. 알베르게는 마을의 중간 즈음이었기 때문에 걸어온 길을 잠시나마 되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아 그리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걸음은 날씨와 다르게 가볍고 상쾌했다. 가진 짐을 다 내려놓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얼마 큼이나 짊어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생각도 마찬가지 아닐까? 견뎌낼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짊어져야 하는 것처럼 감당하고 실천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생각은 유효한 듯하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깨달음들은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한 당위를 계속해서 제공하였다. 비워낸다는 것의 의미. 삶이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쌓이고 쌓이는 유무형의 짐들을 계속해서 정리하고 버리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에 모두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고 내부에는 말 그대로인 기다란 바(bar)가 있었다. 외부에는 4,5명 정도 되는 한 그룹이 테이블에 함께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여유로워 보였다. 식당의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준비된 음식을 그들에게 서빙하고 있었다. 내부의 바에는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또 다른 남자가 혼자 앉아있었다. 식당은 전반적으로 그렇게 붐비지도 한산하지도 않은 적당한 긴장과 여유가 공존하고 있었다.
형태와 종류가 서로 조금씩 다른 여러 테이블 중에서 나는 창문 쪽에 붙어 있는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의자가 높아서 두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았지만 햇빛이 들어오는 야외의 자리가 더 끌리는 느낌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음식을 주문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가게에 들어가면 종종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다. 주문을 하려면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될까, 아니면 직접 바에 가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보통의 서양 식당들은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주문을 받으러 온다지만 순례길에는 그만의 특수성이 있었다. 애초에 워낙 사람들이 붐비기 때문에 주인들이 일일이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보통 바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 다음 주문, 결제, 음료 수령을 동시에 했다. 물론 대부분의 메뉴들이 바로 준비되는 캐주얼한 바들과 일반적인 식당은 개념이 조금 다르겠지만 이곳의 식당은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기준점이 없었다. 모두가 이미 자신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직접 바 쪽으로 걸어가 주인에게 주문을 시도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남자는 잠시간 나를 기다리게 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바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주문과 관련한 이런저런 일처리를 어느 정도하고 나서야 내 주문을 받아주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묘한 긴장이 있었고 그래서 시간이 꽤 더디게 흘렀다. 여느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들처럼 흔한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여하간 주문은 완료했고 나는 자리에 돌아가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나름의 고민을 하다 주문을 했던 메뉴는 뭐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구운 고기와 샐러드, 감자튀김이 함께 나오는 메뉴였다. 순례길을 걸으며 고기를 먹은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그나마 먹었던 것은 KFC 햄버거 속 치킨 패티, 수제버거에 들어있던 소고기, 그리고 샐러드를 먹을 때 들어있던 닭가슴살 정도였다. 모두 고기 자체가 주인공이 되지는 못하는 음식들이었다. 내일이면 마무리되는 이 길고 긴 여정의 끝에서 나는 순수한 고기 자체가 먹고 싶었다. 주로 샐러드나 빵, 과일이 주된 식사 메뉴로 점철되었던 이 여행의 끝에서 고기는 최후의 만찬으로 제격일 만한 선택이었다.
음식은 사전에 먼저 제공된 식전 빵을 반 즈음이나 먹고 난 뒤에 서빙이 되었다. 비주얼 상 군더더기 없어 보이는 메뉴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그리고 섬유질 그 자체의 조합이라고 봐도 무방할 모습이었다. 샐러드에 뿌려진 약간의 드레싱을 제외하고는 따로 소스라고 할 것이 그릇 위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바싹 구워진 듯 보이는 소고기 표면에는 약간의 기름기가 흐르고 있었다.
양념이 없는 음식이란 식량의 형태에 가깝다. 수많은 한국 요리의 음식으로서의 정체성은 그 깊고 풍부한 수많은 종류의 양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김치만 해도 지방마다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와 양념 자체의 진함이 다르지 않은가. 음식에는 스토리와 정서가 담긴다. 좋든 나쁘든 양념이 없는 음식이란 그만큼 어떤 종류의 정서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에 놓인 이 삼각의 영양소 덩어리들은 어떠한 형태의 느낌이나 감동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그 모습으로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나이프로 쓱싹쓱싹 조각을 내어 입안으로 넣은 고기의 느낌은 맛으로는 담백하며 식감으로는 뻣뻣했다. 불에 구워 익히기만 한 한 조미되지 않은 고기를 이전에 과연 먹어본 일이 있었을까 싶었다. 원재료의 신선도나 질을 느껴보기 위해 일부러 먹어보는 한 조각의 고기, 또는 그것이 제대로 익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식사에 앞서 먹어보는 테스터로서의 고기를 제외한다면 한 덩이의 단백질을 처음부터 끝까지 육향에만 기대어 섭취한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일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기억에서는 그런 경험이 존재하지 않았다.
식사는 지금까지 순례길을 걸어온 자신에게 선물하는 최후의 만찬이라기보다 아직 하루 더 남은 최종의 일정에 만전을 가하는 최후의 영양정도가 되었다. 그 장면을 상상하면 아직도 그 고기의 고소함과 담백함, 그리고 탱탱한 식감이 꽤나 사실적으로 떠오른다. 약 2주일 동안의 수많은 경험 중 그 사실과 감각이 계속 기억나고 있다는 것을 보면 별 것 없던 그날의 식사는 오히려 나에게 특별함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반복되는 사건은 기억에 남기지 않는 게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기억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특별한 일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