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시골집은 쓸쓸하다
갱남댁. 고향집에 들르면 고래고래 소리가 들리던 앞집에 사시던 분. 아버지보다 한 살 많으니까 올해로 85세. 지난달에 죽었다고 했다. 폐암 4기로 요양병원에 있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경남 어디에서 경북 이곳으로 시집을 왔기에 경(갱)남댁으로 불렸던 분.
성격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어른 아이 없이 싸우자고 덤비던 사나웠던 분. 동네에서 싸우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유일하게 동네에서 싸우지 않은 사람이 우리 아버지였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아버지와는 싸운 기억이 없고, 어머니에게 물어도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 비결이 뭐예요?" 아버지가 어느 현자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바보와는 논쟁하지 않는다.'
"시비 걸어와도 내가 얼른 피해 버렸지. 잘 못한 것이 없어도, 내가 옳다 캐도 일단 상대 해가 싸우마 덕댈게 하나도 없는 거라. 그래가 내가 얼른 미안타 알것다 하면서 얼른 자리를 떠 뿌랬지!"
젊어서 후처로 들어와 형재 둘을 낳았는데 그 두 형제는 그의 어머니와 반대로 너그럽고 순한 사람들이었다. 나보다 3살이 많은 첫째는 어머니를 닮아 키가 작았다. 공장 보일러 설비 엔지니어였는데, 간혹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자꾸 그러면 자식들 앞길에 안 좋다. 그만해라'. 그랬던 그 형은 작업 중 사고로 일찍 죽고 말았다.
나보다 1살이 많은 둘째는 일찍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를 닮아 키가 컸다. 나와 잘 어울리곤 했는데,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토지'를 읽고 있었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손해 보는 것을 마다치 않았던 말이 적었든 둘째는 성질 고약한 어머니를 건사하며 병 수발을 끝까지 도맡아 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착한 그 형은 분명 그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올라간 옥상에서 불 꺼진 앞집을 보니 조금 쓸쓸했다. 추석날, 고향마을에 불 꺼진 집들은 쓸쓸하다.
<2022년 추석 고향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