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란 Jan 05. 2016

송림동의 크리스마스 6

최초의 친구는 아주 작은 여자아이였다. 내 오랜 기억에 그녀는 생전 바깥 한번 나가는 일 없이 어두운 방구석에서 인형 등속을 벗 삼아 조용히 그의 긴 하루를 소일하였다.

나는 일곱살에서 여덟살 무렵, 그를 알았고 며칠에 한번 씩, 대낮에도 굴속같이 침침한 내 어린 친구의 집으로 놀러갔다.

이름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친구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 집의 분위기를 어제 다녀온 찻집에서 앉았던 까슬까슬한 소파의 감촉을 떠올리듯 떠올릴 수 있다.


육중한 나무문 앞에서 녹이 슨 초인종을 까치발을 딛고 누르고 있으면 그녀의 조모인지 외조모인지, 혹은 그의 집안에서 부리던 사람인지 모를 노파가 나와서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제 아무리 주변머리 없는 나라도 그렇게 연일 방문하다보면 노파와 안면을 트고 뜻 없는 인사라도 나눴음직 한데, 나는 그 노파와 한번 대화해 본 기억이 없다. 나이를 쉬 가늠하기 어려운 그 늙은 얼굴에는 그저 끝없는 권태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집의 분위기에 동화된 탓이리라. 대문 안의 집안 풍경은 송림동의 그 어떤 집과도 다른 점이 있었다. 유난히 너른 마당에는 관목이 우거졌고, 제법 몸뚱이가 굵은 나무들이 여럿 있어서 무성한 가지들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한 여름, 아무리 뙤약볕이 내리쬐는 때라도 그 곳에 한 발만 들어서면 드러난 맨 팔 위로 소름이 돋는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축축하고 서늘한 기운은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그 집에 머물렀다.     

이제 돌로 된 서너 개의 계단을 올라 구불구불 장식된 차가운 현관문 앞에서 문을 열면, 어두운 밤색 마루와 노상 켜있는 뿌연 샹들리에 불빛, 그리고 늙은 소처럼 엎어져 있는 소파가 눈에 들어온다.

노파는 여전히 일언반구도 없이 나를 안방으로 인도해준다. 그러면 거기에 나의 친구가 있다. 파리한 안색에 항시 공주 같은 무거운 벨벳 원피스를 입고 앉아서 나를 맞아 주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촛불을 백 개나 켜 놓는다고 해도 절대 이 이상 밝아지지 않을 것 같은 침침한 방안에는 으리번쩍한 자개장이 그 방의 주인인 양 뻐기고 앉아 있었다. 나는 갈 때마다 자개장에 수놓아진 공작의 마리 수를 세어보곤 하였다. 쌍둥이처럼 같은 자태로 서로를 바라보며 꼬리를 늘어뜨린 커다란 공작이 중앙에 있고, 그보다 작은 공작들이 곳곳에 서성거리며 꽃속에, 나무 밑에 숨어 있었는데, 인형놀이도 놀이지만 그 오묘한 빛깔의 짐승들에게 빠져있는 것도 내겐 굉장한 재미였다. 


그러고 있자면 소녀는 가만히 말도 없이 내 소매를 잡아끌어 새로 산 종이인형의 종이를 들이민다. 내가 그때 막 국민학교에 입학한 여덟 살 가량의 꼬마였다면 그 아이는 나보다 두어 살 정도 어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아이는 가위를 잘 쓰지 못하였고, 나는 그가 준 상당량의 종이인형을 건네받아 정성스럽게 오려주고 그게 사실 우리 둘이 하는 놀이의 거의 전부였다.      


우리는 별로 수다쟁이는 아니었다. 나는 당시 갓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집단이란 존재를 맞닥뜨리면서 그 안에서 나를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던 힘든 시기였다. 나는 제대로 숨겨지지 못하였고, 무리 속의 가장 약하고 혐오스런 존재가 되어 그러한 존재가 마땅히 당하는 처우를 경험해야 했던 그런 시기였다.

나는 하루 종일 누가 시키지 않으면 입 한번 벙긋 거리는 일 없이, 친구나 선생님, 하루 중 만나야 하는 많은 사람들 중 누구에게도 시선 한번 마주치지 않고 어서어서 이 고역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지냈다.

그래서 나는 집에만 붙어사는 나의 친구에게 이야기로 풀어서 그를 흥분시킬 어떤 바깥의 즐거움도 가지고 오질 못하였고, 그냥 도피처처럼 그 굴속에 조용히 들어가 약한 짐승들이 으레 그러듯이 몸을 웅크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만 찾아 놀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내 옆에서 내가 오려주는 종이인형들의 옷을 바꿔 입혀가며 즐거워 하다가 내키면 은 큰 골판지 상자에 들은 마루인형을 꺼내 내게 머리를 묶게 시키거나 하였다. 이런 늙은이 같기도 하고 어린애 같기도 한 무기력한 놀이에 빠져있다보면 노파가 보리차와 과자를 내어다 주었다. 

보리차는 시원하였고, 과자는 괴상한 맛이었다. 회색 빛깔의 그것은 달지도 쓰지도, 어떤 맛도 없이 물컹하고 약간 질긴 식감을 가진, 그냥 씹을 거리였다. 그것이 또 이상하게 감칠맛이 있어, 입에 물고 우물거리다 보면 어느새 접시의 마지막 하나가 아쉬워 지게 되는 그런 과자였다. 언젠가 머리가 더 크고, 기억 속에 가물가물한 그 맛이 그리워 한껏 그 비슷한 것들을 찾아보았지만 어는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소녀의 친구는 내가 유일했던가? 적어도 내가 그 집을 다니면서 나 이외의 방문객을 본 적은 없다. 노파와 소녀, 그 둘만이 내가 그 집에서 본 인간의 전부였다. 소녀도 어머니 아버지가 있을 텐데, 그의 부모를 본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근 일 년이 넘도록 수시로 소녀를 방문하였고, 날이 어두워 노파의 말없는 채근이 이어질 때까지 머물렀지만 그 집은 마치 처음부터 노파와 소녀 둘 만이 사는 것처럼 다른 누구의 기척이 전혀 없었다.

물론 낯을 가리는 나에게 그것이 그 집의 방문을 거리낌 없이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만일 누군가 낯선 이가 그 집안의 구성원으로서 나를 맞이하였다면 나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발길을 끊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한 것은 그것 하나만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 회상해 보면 소녀의 존재 역시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내 기억에 그녀는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단순히 바깥출입을 안 한다고 기억하였으나, 나는 안방에서 제 발로 나오던 소녀의 모습도 기억에 없다. 

그리고 그녀가 두 발로 서서 일어나는 것을 본 기억도 없다. 

몇 번, 화장실이 급하여 노파를 부르던 소녀의 목소리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인형들처럼, 마치 속이 빈 무엇처럼 가볍게 노인의 팔에 안겨 방문을 넘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어린 나이에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 여치처럼 가는 다리를 가졌구나.’     


한여름 풀숲에서 잡은 여치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똑 떨어질 것 같은 아주 가늘고 약한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서워서 차마 장난감으로 쓰지 못하고 여치를 풀숲에 다시 놓아주었던 일이 있다. 

소녀의 다리는 그런 두려움을 줄 만큼 아주 아주 가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송림동의 크리스마스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