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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Feb 17. 2016

송림동의 크리스마스 7

세월의 더미 속에 묻혀 있더라도, 그 두터운 지층을 뚫고 새어나오는 향기가 있다. 돌연한 바람처럼 뒤를 덮치는 감정으로 시작되어, 영문 모를 감정을 단서 삼아 되짚어 간 막다른 담벼락에 붙여 놓은, 빛바랜 필름사진과 같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기억들이 있다.     


어느 비 오는 오후, 분홍색 표딱지를 붙인 채, 수거업체를 기다리던 낡은 자개장, 빗방울에 반짝이던 자개로 수놓아진 공작의 자태를 본 순간 나는 기억해냈다. 내 안의 어떠한 곳에서 울컥 올라온 연민, 그리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냄새들. 검은 벨벳의 공주님. 팔을 타고 오르는 축축한 한기. 귀퉁이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버려진 자개장처럼 화려하고 애처로운 기억.      


이렇게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그녀를 연민하였다. 그녀의 부자유와 좁은 세계, 그리고 장애보다 더욱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을 어른들의 무지로 인한 처분. 십 수 년이 지나서야 겨우 보이기 시작했던 그러한 사실들을 당시의 내가 깨닫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외톨이였던 나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작은 세계와 그곳의 주인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으로 환심을 사려고 했을 뿐이다.     


다만 방문하여 주고, 함께 과자를 먹고 딱딱한 인형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몇 평 방안이 세계의 전부인 그녀에게 바깥의 물건을 날라다 주는 것이 주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은 길가의 도깨비 풀, 꽁지에 실을 매단 잠자리, 손바닥 안에서 시름시름 생기를 잃은 코스모스, 말라서 그 선명한 노란 빛을 잃어버린 해바라기 꽃 같은 잡동사니가 전부였다.

공주님은 반짝 그것을 반기다가도 금세 흥미를 잃었다. 파리한 낯빛에 그나마 화기를 돌게 했던 것은 살아 움직이는 무엇이었다. 그러나 작은 곤충들은 쉽게 망가졌고, 무생물과 마찬가지로 온기라고는 없었다.

싫증이 역력한 공주님의 얼굴을 보며 지금껏 가지고 오던 것들 보다 더 굉장한 것이 필요하단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큰 생명을 가진 것.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당시 어린 아이들의 큰 유희 중 하나는 참새 잡이였다. 동네의 공터, 수풀이 우거진 빈 땅에는 참새둥지가 많았고, 그 속에서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 참새들은 비교적 손쉬운 표적이었다.

나는 학교가 파하면 긴 장대를 들고 수풀을 휘저으며 새끼 참새 잡기에 몰두했다. 단 한 마리만 잡았으면, 간절한 소망으로 날카로운 가시 관목에 손과 발에 생채기가 나는 것도 모른 채 참새 둥지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나 같은 얼뜨기의 손에 호락호락 잡혀줄 짐승은 없었다. 참새새끼는 고사하고 둥지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남들에게는 손쉬운 오락이 왜 나에게는 항상 넘볼 수 없는 장벽이었을까, 게다가 근방의 사내아이들은 자신들의 놀이터에 끼어든 이방인을 용서할 수 없었는지 욕설과 난폭한 행동으로 나를 쫓아냈다. 결국 그들이 사라진 어둑한 늦저녁이 내가 참새 잡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두운 덤불 속에서 시간도 잊은 채 상처투성이로 헤매던 나는 결국 깨달았다. 이것이 내게 불가능 한 일임을.     


한 번, 딱 한 번 참새를 만졌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새끼가 아닌 다 큰, 내 손에는 제법 넘치도록 큰 참새였다. 그 팔딱거리는 심장과 온기. 뿌듯하게 차오르던 흥분.  

그 참새는 대추나무 집의 주인 할머니가 키우던 참새였다.     


대추나무 집은 우리 집이었다. 아니 정확히 우리 가족이 세를 들어 살던 이층 양옥집이었다. 근면한 어머니의 노력으로 마침내 달동네를 벗어난 우리 가족은 큰 대추나무가 심어진 양옥집의 아래층으로 이사를 갔다. 이층에는 주인집 할머니가 혼자 기거하였다.

가을이 되어 대추들의 알이 굵어질 대로 굵어지고, 초록의 과실이 윤기 있는 적갈색으로 물들면, 우리 가족과 주인 할머니는 나무를 흔들고 가지를 쳐서 대추 열매를 수확하였다. 나무는 충분히 컸고, 주인 할머니의 몫은 당연하고 우리 가족들 한가위 제사에 쓸 대추까지 넉넉히 나오고도 남았다.


주인 할머니에게 가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우편물이 주인집으로 오곤 하였고, 하루는 주인집에 온 우편물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

언제나 잠기지 않는 현관문을 열고 주인집의 거실에 들어서니, 그 중앙에 따뜻한 햇볕을 쪼이며 참새 한 마리가 졸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총총거리며 뛰어 도망가는게 아닌가.


“참새다.”     


나는 외쳤고, 주인할머니가 그 목소리를 듣고 나왔다.  우편물을 받아든 그녀가 나를 보고 웃으며 참새를 만져 보고 싶냐고 물었다.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위해 주인할머니는 참새가 도망간 쪽으로 가더니 손쉽게 그 놈을 잡아 내게로 가져왔다.     


나는 의아했다. 왜 이 녀석은 날아서 도망가지 않았을까. 노인의 서툰 손짓에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잡히는 가. 

조심스럽게 참새를 받아든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참새는 두 날개가 잘려있었다. 참새는 날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날 수 없었던 것이다.

주인 할머니는 어떻게 했는지 참새를 잡게 되었고,  도망가지 못하고 애완으로 삼기 위해 날개를 잘라버렸다. 그 참혹한 모습에 소름이 돋은 나는 손 안에 참새를 놓쳤고, 주인 할머니는 친절하게 다시 잡아 내 손에 그 가련한 생물을 밀어 넣고 마치 견뎌보라는 듯이 내 손위에 그의 주름진 손을 포개 내가 어찌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끔찍한 감정은 잠시였고, 나는 곧 고 부드러운 털의 감촉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연약한 뼈들이 만져졌고, 그 안에서 펄떡이고 있는 작은 심장을 느끼며, 주인할머니가 날개를 잘라서라도 그 것을 곁에 두고 싶어 했던 심정을 어렴풋이 이해하였다.     

그래, 그것이라면 내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나의 공주님에게 전해 주고 싶었다. 감탄과 놀라움으로 빛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면 그녀는 나를 더욱 좋아해 줄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절대로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오직 나만이 유일한 기쁨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주인할머니의, 날개 잘린 참새가 필요했다. 그것을 훔쳐야 했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그 일을 실행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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