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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섯 Aug 27. 2017

잔, 그때 그 순간

2015년 2월 플레인에 쓴 글

0. 2015년 겨울쯔음 나왔던 플레인이라는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가 최근에 종료되었다. 사내 서비스이기도 하고 그즈음 무언가 주제를 정하고 연속성 있게 글을 써보고 싶어서 '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블로그를 만들었었는데, 돌이켜보면 잔에 담기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만든 블로그였던것 같다. 


1. 칵테일이나 술. 엄밀히 말하자면 '위스키 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싱글 몰트 바. 처음 방문하면 무지가 나를 반기는 곳. 그 세계에 나도 원래 존재했던 것처럼 한편을 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의 무지를 경외로 바꾸는 그곳. 한 동안 깊이 있게 빠져 들고 싶었고 실제로도 많은 밤과 돈을 써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무지렁이를 탈출한 자만감에 지적 자산을 조금이라도 뽐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 2년 반쯤 흘러서 그런지. 과거의 내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량한 잰 채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쓴 글이니까. 그대로 옮겨 본다. 



0. 시작하기 전에. 모든 글과 사진은 원본이다. 글은 과거 순으로 옮겨져 있고 경박스러울 만큼 많은 해시태그는 해당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 특성에 기인한다. 어떤 글들은 사진별로 문단이 들어있고, 어떤 글들은 여러 사진에 하나의 문단만 들어있었으나. 하나로 다 붙여버렸다. 하이고...




1. 글렌리벳과 글렌캐런 글라스

2. 놉 크릭이라는 버번위스키 버번은 대체로 향이 풍부하고 끝 맛이 없는데 이 녀석은 끝 맛도 풍부한 편 #위스키 #버번위스키 #knobcreek


3. 많이 좋아하고, 가장 많이 마신 위스키는 라프로익 쿼터 케스크이다. 아일레이에서 생산돼서 피트 향이 강하고 짠맛도 많이 난다. 그래도 그 뒤에는 달콤하고 스모키 한 특유의 부드러운 맛이 있지! 쿼터 캐스크는 일반적인 캐스크보다 1/4 이하의 크기를 가지는 캐스크에서 생산한 위스키라는 뜻이다. 캐스크가 작으면 위스키가 캐스크에 닿는 면적이 많아 숙성이 당연히 빠르다. (아마 다들 6년 정도- 버번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위스키 #라프로익 #쿼터캐스크


4. 멕기본에서 나온 프로방스 시리즈. 봄 여름 가을 겨울 에디션으로 판매했는데 운 좋게 여름 빼고는 모두 마셔보았다. 수입은커녕 구하기도 어렵지만 부드럽고 다양한 향이 있어서 기회가 있다면 또 마셔보고 싶다. #멕기본 #위스키 #싱글몰트


5. 칵테일을 만들 때는 때론 연기도 활용한다. 다양한 촉매제를 기본으로(가루로 되어있고 다양한 향을 낼 수 있다. 허브부터 스모키 한 칠면조 향까지) 스모킹건으로 연기를 만들어서 병에 넣고 가니쉬로 활용한다. 그리고 별미는 이런 메이킹을 하는 바텐더를 바라보는 자체가 큰 즐거움이 된다는 것. 맛에 큰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칵테일 #스모킹건


6. 차례로 소피텔소 시그니처 칵테일(이름이 트로피컬 뭐였는데), 깔루아 밀크(추억ㅋㅋ), 쿠바 리브레(잭콕이나 다름없다.) 빌드 칵테일을 좋아한다. 빌드 칵테일은 쉐이킹 없이, 차례로 리큐르를 넣어서 만든다. 주로 도수가 높은 술이 먼저 들어가고 그 뒤에 토닉이나 진저에일, 리큐르 등이 들어간다.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미묘한 비율의 차로 비주얼이나 맛이 크게 변하기 때문에 누구나 맛있을 수는 없는ㅎ 추억의 시절 종종 마시던 롱아일랜드 티(무려 4가지의 술이 들어간다.. 죽음) 깔루아 밀크, 블랙러시안, 잭콕 등이 해당한다. 갓파더(위스키 베이스)나 프렌치 커넥션(코냑 베이스)을 나는 주로 마시는데, 두 칵테일 모두 디사르노 아말레토라는 달콤한 리큐르가 들어간다. 빌드 칵테일은 별 것 아니여 보이지만 실제로는 얼음의 녹는 속도, 리큐르의 비율에 따라 맛이 크게 갈려서 바텐더만의 노하우에 따라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다. #칵테일 #빌드칵테일 #갓파더 #깔루아밀크 #쿠바리브레 #프렌치커넥션


7. Bar에 가서 언더락스의 얼음을 보면 그 바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많은 바텐더와 바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가 '얼음'이다. 투명한 얼음을 쓰는 것은 이제는 거의 당연한 것이 되었고, 가게에서 쓰는 잔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방법으로 얼음을 깎아서 제공한다. (투명한 얼음은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과 적절한 냉동 온도에 따라 얻을 수 있고, 대부분의 바에서는 얼음을 구입하여 사용한다.. 동그란 구체 모양의 얼음도 판매 중) 얼음은 '징'으로 쳐서 동그란 구체를 만들기도 하고, 얼음칼로 잘라내어 동그란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적당히 잘라내어 면체의 모양을 만드는 곳도 있다. 언더락스에 얼음을 신경 쓰는 것은 얼음이 술에 닿는 면적과 얼음의 강직도에 따라서 얼음이 녹는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심미적인 요소도 포함된다. #얼음 #언더락스 #위스키 #싱글몰트 #바


8. 칵테일을 위한 기능성 잔이 있습니다. 모스코뮬이라는 칵테일에는 전통적으로 동잔을 쓰는데, 동으로 만든 잔은 열전도율 때문에 얼음이 천천히 녹는 효과가 있습니다. 진저에일과 보드카로 만드는 모스코뮬에는 차가움이 핵심이어서 그런 걸 지도요.

9. 두 번째 사진은 얼음으로 만든 잔을 활용하는 칵테일에 모습인데요. (클라우드라는 방콕 바의 시그니쳐 메뉴인 클라우드 마티니를 만들 때 사용하고요) 얼음잔은 생각보다 문제가 많습니다. 잔이 녹기 전에 마셔야 하고, 녹는 잔을 감당하기 어렵더라고요. 물론 시각적인 효과는 최고입니다.


10. 마지막은 마가리타입니다. 마가리타에는 가니쉬로 잔 둘레에 소금을 뿌려주는데요. 그래서인지 둘레가 넓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도 라임을 잔 둘레를 활용해서 짜 넣는 바텐더들도 많고요. 시그니처 잔은 멕시코헷을 상징화해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칵테일 #잔 #마가리타 #모스코뮬



3. 요즘은 바에 잘 다니지 않는다. 바텐더들은 사업가가 되었고 서울은 마치 홍콩이나 도쿄처럼 바로 넘쳐나는 아시아의 한 도시가 되어버렸다. 유행은 새로운 유행을 불러오고 나는 금세 몰려들어온 인파 속에서 모든 의지를 잃어버렸다.


4. 위스키는 여전히 좋아하며 취향은 변하고 있다. 가벼운 위스키로 시작해서 피트 향이 강하고 개성이 있는 스타일을 추구하다가 현재는 밸런스를 추구하는 자연스럽고 일반적이고 지루한 아재 스타일로 한 걸을 씩 다가가고 있다.


5. 뭐 다 때가 있는 법이다.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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