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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남동뱀딸기 Apr 04. 2024

파도야 난 어쩌란 말이냐

프롤로그. 내가 걷게 된 이유

"파도야 난 어쩌란 말이냐"


2024년 4월 1일, 평범하게 출근했다가 반드시 끝내야 하는 업무만 처리하고 한 시간 만에 조퇴했다.

기차를 타고 무작정 동해에 가서 어달항 근처 한 카페를 들어갔는데, 창문에 쓰여 있던 문구이다. 그야말로 내 마음과 같았다.


북극곰은 내게 달린 스마트태그의 위치가 정말 동해라는 걸 확인한 후에야 갑작스러운 일탈을 믿었다. 공교롭게도 만우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걷는 걸 좋아한다.

목포에서 살던 때는 엄마와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유달산 일주도로를 한 바퀴 걸어 돌았다. 유달산 둘레길을 샅샅이 훑기도 했고, 삼학도를 다녀오기도 했고, 하당이나 목포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갔다 오기도 했다.

목포에선 내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골목 구석구석 전부 걸었다.


마냥 즐겁고 행복해서 걸은 것은 아니었다.

슬프고 괴로워서 그렇게나 걸어댔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길을 나선다.

직장인이 되어 더욱 스케일 크게 걸어 볼 작정이다.


93년생, 서른두 살의 나는 빚이 천만 원 넘게 있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며, 박사수료생이다. 모은 돈은 없으나 결혼이 하고 싶은 장거리연애중인 중생이며, 나와 북극곰의 결혼은 아버지가 목하 반대 중이다.

나는 언짢은 아버지 앞에선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설득을 해도 안 먹힐 상황이라 말을 꺼내길 포기했다. 악순환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런 갑갑한 상황에서 스트레스 수치가 정점을 찍은 순간, 회사를 뛰쳐나왔다.

어달해변의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북극곰이 보내준 용돈으로 억지로 점심밥을 사 먹고, 하평해변까지 무작정 걸어갔다.

그리곤 집에 돌아가는 마지막 기차를 타기 위해 저녁 6시쯤 택시를 타고 동해역에 갔다.


이 날 걸으면서 동해바다를 따라 계속 계속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미 코리아둘레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중 내가 걷고자 했던 동해바다는 해파랑길이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부터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총 50개 코스로 이뤄진 750km의 걷기 여행길.

아!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4월 1일의 일탈부터 정식 코스를 걸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부터 준비해 코리아둘레길을 모두 완주할 것이며, 우선 해파랑길부터 조져버리겠다.



나는 행동력이 빠르다.

당장 4월 6일 토요일에 삼척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인 4월 7일 일요일에 해파랑길 33코스를 걷기로 계획했다.

금~토 오후까진 대전의 북극곰집에 있다가 버스로 삼척에 가서 잔 뒤, 새벽부터 걷는 일정이다.

해파랑길 33코스 동행자로는 엄마를 선택했다. 엄마는 퇴근 후 기차를 타고 동해역으로 온 뒤, 숙소까지 택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당장 코 앞에 닥친 33코스는 대충 준비해서 길을 떠나지만, 이후 해파랑길 완주 및 다른 코리아둘레길 여행을 위해 준비물을 구입했다.


먼저 두루누비 어플을 깔았다. 무료 어플이고 코리아둘레길 지도와 QR스탬프를 찍는 등 기능이 있다. 나중에 해파랑길 완주 후 기념품 수령을 위한 증빙자료 제출을 위한 필수 기본템이다.


트랭글 어플에서 코리아둘레길 [아이더로드 4500]을 구매하기 위해 33,000원을 충전하고, 코리아둘레길 지도를 구매했다. 두루누비 무료어플이 오류날 때를 위해 동시 작동용으로 구입했다.


네이버스토어 한국의 길과 문화에서 해파랑길 스탬프북과 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 지도 구입했다.

 물건들은 사치템.. 바꿔 말하자면 낭만템으로 샀다.

지는 배낭가방에 해파랑길만 우선 달고, 다른 지는 남파랑길과 서해랑길 도전을 시작할 때 개봉할 것이다.


쿠팡에서는 등산배낭과 방수 피크닉매트, 보온병, 샌들을 구매했다.

보온병은 한 끼의 식사비용이라도 아끼기 위해 샀다. 뜨거운 물을 넣어서 컵라면과 함께 가지고 다닐 용도이다. 그 와중에 조금 절약해 보겠다고 반품상품(중간 상태)을 구매했다.

양면 방수 피크닉매트는 해변에서 바다멍을 때리며 가성비 있게 휴식하기 위해 샀다.

등산가방은 가진 게 없어서 구비했고 어떤 게 좋은지 몰라서 후기가 좋은 것 중 적당한 크기로 골랐다.

마지막으로 샌들은 바다에 발을 담그거나 편하게 다닐 때를 위해 저렴한 것으로 구매했다.


그리고 자외선차단을 위한 팔토시와 모자까지 주문 완료!


여기까지 초기 소비 비용을 정리하면


지도어플 33,000원

스탬프북 16,000원

기념뱃지 30,000원

보  온  병 21,690원

피크닉매트 16,900원

등산배낭 45,200원

여름샌들 5,180원

팔토시 15,900원

햇빛가리개모자 8,900원


총 합 192,770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내가 결혼을 하려면 얼른 빚을 갚고 돈을 모으는 게 합리적이겠지만,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길 위에 올라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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