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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남동뱀딸기 Apr 07. 2024

해파랑길 33코스, 추암해변에서 묵호역 입구까지

님이여, 한섬해변의 몽돌을 보지 마오_2024년 4월 7일 완주

아침 6시 알람이 울렸다.

비실비실 눈을 뜨고 엄마에게 일어날 건지 묻자 좀 더 자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7시 20분쯤 일어나 외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쿠팡에서 주문한 각종 물건이 오지 않아서 무거운 노트북 가방을 사용했다.

트래킹화를 따로 싸왔고, 휴지와 물티슈, 선크림, 폼클렌저, 수분크림, 립밤, 무선이어폰, 종이(해파랑길 스탬프를 위함), 빗, 잠옷 반팔반바지, 충전기, 보조배터리 2개, 돗자리로 쓸 신문지

이렇게 챙기고 중간 페트 이온음료는 손에 들었다.


아침밥은 꼭 든든히!

그리고 아침으로 미리 사 둔 편의점 제품을 차려 먹었다.

닭곰탕에 햇반을 말고, 비비고 볶음김치랑 동파육을 먹으니 상당히 든든하다.

설거지까지 말끔히 마친 후 파랑길 33코스의 스탬프가 있는 시작 지점, 추암해변 오징어해우소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출발 직전, 삼척해변에서 기운찬 출발 포즈

아침 8시 13분에 출발 사진을 찍고, 추암해변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척 쏠비치를 지나 증산해변으로 진입하자 '해가사의 터'가 보인다.


이곳은 삼국유사의 수로부인전에서 전하는 <해가>라는 설화를 토대로 복원된 곳이다.


해가(海歌)
龜乎龜乎出水路(구호구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약인부녀죄하극)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汝若悖逆不出獻(여약패역불출현)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략번지끽)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어릴 적 학교 교재에 나온 구지가의 배경장소를 뜻밖에 마주치니 반가웠다.


해가사의 터를 지나 증산해변을 가로질러 해안가 데크길을 걸어가면 추암해변이 나온다. 해변을 지나 추암역까지 나와서 추암역 표지를 좌측에 두고 공원 쪽을 바라보면 스탬프를 찍는 곳이 있다.


가져온 종이에 스탬프를 찍고, 두루누비 어플 QR인증으로 모바일 스탬프까지 받았다.

종이 스탬프는 나중에 해파랑길 여권이 배송완료되면, 여권에 붙이려 한다.

종이 스탬프를 가방에 잘 넣어두고 두루누비로 해파랑길 33코스 따라가기를 실행하고, 트랭글 어플 해파랑길 33코스 따라가기도 동시에 실행했다.


우선은 추암해변에서 동해역까지 이동했다. 동해역으로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봄 꽃이 무척 많았다.

기운이 100%였던 우리는 뒷 일이 어찌 될지 상상도 못 한 채 그저 즐거워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꽃길을 지나면 산업단지와 동해하수종말처리장이 나온다.


워낙 밝은 아침이고, 꽃도 화사해서 무섭진 않았다.

하수종말처리장 바로 옆을 지날 땐 악취가 심하긴 했다. 가는 길 곳곳에 해파랑길 표지와 스티커가 붙어있어 안심됐다.


다만 하수종말처리장을 지나가다 보면 길이 끝나고 바다가 나오는데 이때 조금 당황했다. 찬찬히 주변을 살피자 추암지구 지진해일 대피 안내판 뒤편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산으로 난 계단을 헉헉대며 오르다가 맞은편으로 내려가면 호해정이 나오고, 호해정 앞으로 평화로운 평지가 등장한다. 길가에 미역을 말리는 모습이 정겨웠다.


이 길로 쭉 가면 낚시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다만 물이 깨끗해 보이진 않았다.

이곳은 '전천'이라 부르는데, 임진왜란 때 치열했던 두타산성 싸움에서 화살이 가득 떠내려와 이때부터 화살 전 자를 사용해 전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화살 대신 물 밑에 죽어서 허연 물고기들이 잔뜩 떠내려 와 있다.



전천을 한참 걷다 보면 돌다리가 나온다. 돌다리를 지나 LS전선(좌측 사진의 거대한 빌딩) 방향으로 가다 보면 동해역 가는 표지가 나온다.


표지를 따라가면 좌측은 철로, 우측은 LS전선 부지이다. 그리고 이 길의 끝인 동해역에서 20분 간 1차 휴식을 가졌다.

화장실도 해결하고, 동해역 앞 편의점에서 마실 것도 보충했다.

아쿠아제로보다 링티제로가 덜 달고 맛있다. 복숭아맛을 추천한다

휴식 후 감추사로 향했다.

동해역을 지나, 굴다리 밑으로 이동해서 해파랑길 표지를 따라 걷다가 감추사 가는 길이 나오면 해변 쪽으로 내려간다.


맨 밑 사진을 보면 "감추사 바닷길로 가세요"라고 되어 있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감추사는 바닷가로 내려간 뒤 우측 편으로 난 길로 금세 갈 수 있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산으로 올라가 감추사를 본 뒤 바닷길을 통해 다시 올라왔다.


해수관음과 용왕각, 삼성각, 대웅전이 있는 자그마한 절이었고, 절 앞의 감추해변에서는 신선하고 깨끗한 미역내음이 풍겨왔다.


바닷물에 지친 발을 담그니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그저 시원했는데, 일 분 넘게 담그고 있자 바닷물이 얼음같이 차가웠다.

감추사에서 감추해변으로 내려오는 길에 물을 뿜는 거북이가 있어 손도 씻고 발도 헹군 뒤 다시 길을 나섰다.


그리고 이 즈음부터 해파랑길 33코스 걷기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것 같다.

사실 두루누비 어플은 처음 작동시켰을 때부터 계속 위치 인식을 제대로 못했다. 지도와 같은 경로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로를 이탈했다며 계속 경고안내를 울렸는데, 이러한 오작동 탓에 볼륨을 줄이는 등 안내를 불신했다.


그리고 두루누비 어플에 한섬해변이 주의구간이라고 뜨긴 했지만, 통행 제한 구간이 임시 재개되었다고 나와 있어서 믿고 걸은 것도 다.

여하튼...... 신나게 바다와 벚꽃을 감상하며 우리는 감추해변에서 한섬해변으로 진입했다.


한섬해변 가는 길은  이상한 조형물도 있고, 월 별 꽃을 어여쁘게 그려둔 구간도 있어서 눈이 즐겁다. 포토존도 제법 많다.

해변을 지나가면 세븐일레븐이 있고 세븐일레븐 측엔 굴다리가, 측 뒤편으론 해변 데크길이 있다.

양 방향 모두 해파랑길 표식이 있었다.

엄마는 바닷가로 가자고 했고 두루누비는 굴다리로 가자고 했다. 바닷가로 가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데크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좌측엔 관해정, 우측엔 한섬 몽돌해변이 나온다.

우측 사진의 흰 바닥이 동글동글 귀여운 몽돌이다. 아....... 우리는 이 몽돌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몽돌해변을 지나가면 곧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철채보존구간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가면 바로 고불개해변이다. 그리고 고불개를 지나면 하평해변이 나온다.

하지만 하평해변으로 넘어가는 길에 출입통제 현수막이 떡하니 걸려있다.

해파랑길을 걷던 여러 팀들이 현수막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두 팀은 고불개해변 바로 앞의 갯바위로 통과하는 것을 선택했고, 나중에 검색해 보니 일부 팀들은 저 출입통제 현수막을 무시하고 공사장을 통과해 나갔다.

나랑 엄마는 공사장을 통과할 생각도 못했고, 갯바위는 정식 길이 아닌 데다가 동네 어르신께서 길이 없다고 하셔서 다시 돌아갔다.

헌데 그 와중에 가는 시간을 단축해 보겠다고 네이버 지도를 켰다, 이게 두 번째 실수다.

뭔가 샛길이 표시되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따라가 보았는데 말 그대로 가시나무가 서식하는 가시밭길이었다.

그 길의 끝은 철도로 막아져 있었다.

게다가 음료도 똑 떨어졌다. 입이 마르자 실시간으로 신경이 예민해지는 게 느껴졌다.

결국 다시 뒤돌아서 한섬해변까지 갔고, 이 구간에서 한 시간을 소요했다.

시간도 시간이고 발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멘탈이 털렸다.

이 정도면 한섬해변 세븐일레븐 앞에 해파랑길 공사 중이라는 현수막이라도 있어야 했던 게 아닐까.

피눈물 나던 고불개해변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세븐일레븐에 들어가 얼음컵과 보리차를 샀다. 얼음컵 라지 사이즈 두 개에 보리차 중간페트 하나가 온전히 다 들어갔는데, 앉은자리에서 바로 원샷했다. 구운 계란도 사서 하나씩 먹었다.

엄마가

"애기야... 나 죽을 거 같아. 아이스크림 먹자"라고 하셔서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나는 메로나, 엄마는 부라보

아이스크림을 입가에 다 묻혀가며 살짝 눈물 고인 얼굴로 부라보콘을 탐하는 엄마의 사진을 올릴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아이스크림까지 해치운 다음,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길을 떠났다. 이번엔 곱게 세븐일레븐 좌측의 굴다리로 들어가 대로로 나섰다.

대로를 따라 한참 가다 보니 여전히 경로 이탈상태였다.

대로와 해변 사이 어느 길로 가야 하는 모양인데,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적당히 계속 걷다가 해변방향으로 빠지는 길이 나올 때쯤 한 칸 안쪽 길로 진입했다. 그러자 경로가 일치됐으니 결론은 잘 된 일이다.

이지무인텔 쪽으로 갔다.

자그마하고 허름하지만 단정한 동네를 지나 계속 걷자, 유흥업소가 조금씩 나오더니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34코스 도장을 미리 찍어두었다.


아침 8시 13분 삼척해변에서부터 오후 2시 37분 묵호까지.

총 6시간 20분 정도 걸린 셈이고, 동해역과 감추해변, 한섬해변 편의점에서 각각 20분씩 1시간 쉬었다. 그리고 1시간 길을 잃었다.

위 어플은 좌측이 트랭글, 우측이 두루누비이다.

둘 다 삼척해변이 아니라 해파랑길 33코스 시작인 추암역에서부터 켠 결과이다. 총 걸음 수는 삼만 보가 나왔다.


뿌듯하게 캡처하고 나서 무거운 발을 움직여 점심을 먹으러 떠났다.

원래는 도째비골 근처에서 먹으려 했는데 도저히 못 가겠어서 중간에 보이는 곳에서 물회를 먹었다.

묵호대게하우스의 물회는 1인분 16,000원이다. 가자미 회랑 전복이 들어가는데 양이 많았다. 반찬도 모두 맛있었다. 다만 난 남들보다 심심하게 먹는 편이라 육수가 너무 달고시큼해 자극적이었다.

그래도 거뜬히 한 그릇 해치우곤 기운을 얻었다.


기차 시간이 오후 6시 이후라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길래 검색해 보니 동해에서 태백 가는 버스가 4시 50분에 있었다. 택시로 묵호에서 동해터미널에 간 뒤, 태백행 버스 두 장을 끊었다.

엄마는 태백에서 집으로 들어가시고, 난 다시 태백에서 고한 가는 버스표를 끊어 기숙사로 돌아왔다.




해파랑길 33코스 완주를 통해 깨달은 것

1. 물을 인당 1.5L 마셨다. 물 확보에 주의해야 한다. 의외로 배는 안고팠다.

2. 발이 아프다! 양쪽 발가락 하나씩 물집이 잡혔다. 바셀린과 밴드형 무릎/발목보호대, 반창고를 추가구매 해야겠다. 그리고 숙박하면서 2일 이상 걸을 땐 휴족시간과 유기괄사, 압박스타킹을 챙겨야 할 것 같다.

3. 햇빛이 강해서 선크림을 덧발라야 하는데, 미백이나 커버기능 없는 기본선크림으로 선스틱을 챙겨야 할 것 같다. 일반 색조 선크림은 땀과 함께 흘러내린 자국이 남는다.

4. 너무 힘들면 웃음이 나온다. 아마 더 힘들었으면 눈물이 나왔을 것 같다. 이제 두루누비 어플 코스에 충성할 것이다.


그래도 걷기는 즐겁다! 5월 연휴기간의 해파랑길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4월 7일 지출

동해역 편의점 2,900원 - 엄마지출

한섬해변 편의점 9,500원 - 엄마지출

점심 (묵호대게하우스 물회) 32,000원

교통 (묵호> 동해터미널 택시) 5,200원

교통 (동해> 태백 버스 2인) 19,800원 - 엄마지출

교통 (태백> 고한사북공영 버스 1인) 3,900원

교통 (고한사북공영> 기숙사 택시) 6,000원

총 합 79,300원



해파랑길 33코스 2024.4.6.~4.7. 지출 전체 정리

숙박: 90,000원

(4.6. 1박, 삼일민박) 90,000원
교통: 76,800원

(4.6. 대전> 삼척 버스) 36,400원
(4.6. 삼척터미널> 삼척해변 택시) 5,500원

(4.7. 묵호> 동해터미널 택시) 5,200원

(4.7. 동해> 태백 버스 2인) 19,800원 - 엄마지출

(4.7. 태백> 고한사북공영 버스 1인) 3,900원

(4.7. 고한사북공영> 기숙사 택시) 6,000원

식사: 57,600원

(4.6.) 삼척해변 편의점 25,600원

(4.7.) 묵호대게하우스 물회 32,000원

편의점 물 등 간식:12,400원

(4.7.) 동해역 편의점 2,900원 - 엄마지출

(4.7.) 한섬해변 편의점 9,500원 - 엄마지출

총 합 236,800원 중 엄마지출 제외, 204,600원


(동해> 태백 2인 기차예매) 8,900원 예매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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