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
연애를 시작할 때, 후추와 나는 친구사이에서 발전한 사이였기 때문에 이미 내 맨 얼굴을 몇 번 보기도 했었고, 화장하지 않은 얼굴도 예쁘다 해주는 후추였기 때문에 언제나 편하게 데이트를 했다.
굳이 나를 꾸며내지 않고 만날 수 있는 후추가 좋았고, 편했다.
그런 만남이 계속되면서 나는 언젠가는 눈곱이 낀 상태로 후추를 만나러 나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머리를 며칠 째 감지 않고도, 양치를 하지 않고도 뽀뽀를 해달라고 했다.
그러면 후추는 언제나 같은 얼굴로 같은 표정으로 나를 오래 바라봐준다.
씻지 않고 팅팅 부은 얼굴로 마주하고 앉아있어도 늘 같은 눈빛을 내게 준다.
왜 그렇게 봐? 하고 물으면, 언제나 대답은 한결같다.
"예뻐서."
나를 왜 사랑해?
라고 물어도 후추는 언제나 같은 답을 해준다.
"예뻐서."
내가 한껏 꾸미고 멋을 낸 날에는 멀리서부터 나를 보며 입을 벌리고 이제 처음 본 여자에게 반한 것처럼 나에게 걸어온다.
"예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연애가 9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데에 나의 노력은 1%도 들지 않았다.
처음 만나던 2007년 봄부터 언제나 한결같이 어떤 모습의 나도 예뻐해 주는 후추가 9년을 혼자, 이고 왔다.
어디가 제일 예쁘냐고 물으면 어느 날엔 눈이라고 해주고, 어느 날엔 코라고 해주고 어느 날엔 다 예쁘다고 해주는 후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9년 간의 연애 동안 단 한 번의 이벤트도 받지 못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예뻐서 좋다고, 퉁퉁부은 눈이 사랑스럽다고 해주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이벤트다.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