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동네에서 돌잔치가 있는데...
후추와 나는 2006년 10월 쯤 부터 연락은 자주 했었지만, 12월이 되고 방학을 하게되면서 만나지 않고 온라인 친구처럼 메신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다.
10년 여전에는 카톡은 당연히 없었고, 문자 메시지도 한 통당 20원씩 꼬박꼬박 전화비에 포함돼 나오던 때라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서로 긴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평소와 같이 친구들 여럿이 모여 네이트온에서 수다를 떨고 스타크래프트를 한판 끝내고 쉬고 있는데 개인 쪽지가 한 통 도착했다.
"다음 주에 너희 동네에서 돌잔치가 있는데 시간되면 볼까?"
우리는 사는 동네가 가까운 게 아니었다. 후추는 경기도 나는 충청도에 산다. 그런데 돌잔치 때문에 우연히 우리 동네에 온다니 친구로서 만나더라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고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후추가 말했던 다음주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생일에 이어 크리스마스 데이트라니..' 라고 3초 정도는 생각했었지만 사실 나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쓸쓸한 성탄절을 보내야했으므로, 내심 기쁜 마음으로 그 데이트신청을 수락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됐고, 돌잔치가 끝나면 전화하려나 하고 머리도 삼일 째 안 감은 상태로 누워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후추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나 서대전역이야 나와^^"
아... 우리집에서 서대전역까지 버스로 1시간이고, 씻고 화장하면 1시간이니까 2시간 기다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후추는 여자의 준비가 한 시간씩 걸리는 줄도 몰랐던 연애 초보 스무 살이었다.
난 할 수 없이 그날 처음으로 KTX를 탔다.
서대전역에 서있던 후추는 벨벳마이(상의 자켓)을 입고 긴장된 표정으로 서있었다.
보자마자 웃음이 픽 터졌다. 그 날의 후추는 누가 봐도 돌잔치보다는 여자를 만나러 온 사람이었다.
모든 자리가 매진인 영화관에서 운 좋게 두 자리를 잡았다.
예매를 하고 나서 영화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크리스마스 캐롤이 나오는 대전 시내를 돌아다녔다.
후추는 사람 많은 곳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며 내 코트 끝자락을 잡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첫 스킨십. 옷깃 잡기.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에선 내 옷깃을 잡아당기는 후추를 보면 그때 그 이야기가 나와 스킨십을 하기 위한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날 본 영화는 주드로와 카메론디아즈가 사랑하는 내용의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였다.
그리고 그 날은 우리의 첫 번째 로맨틱 홀리데이가 되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날 돌잔치는 있었으나 나와의 데이트를 하다가 시간을 놓쳐 정작 돌잔치에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그 때 이야길 하면서 벨벳마이가 하도 주변 공기에 떠다니는 먼지를 빨아드려 스카치 테이프를 사서 나를 기다리는 동안 먼지를 떼었다고 얘기했다.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나.
벨벳마이에 붙은 먼지를 하나하나 떼고 있을 후추를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울렁한다. 스무살의 후추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순수해서. 그 마음이 따듯해서. 고마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