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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노 Jan 25. 2023

시티뷰는 여기, 호텔 센츄리 서던 타워

백퍼센트의 영화여행 ep.1

백퍼센트의 영화여행 ep.1

판데믹 이후 첫 해외여행은 도쿄다. 워낙 좋아하는 도시이기도 하고. 회사 다닐 때는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해외 출장을 다녔다. 직업 특성상 취재를 갈 일이 종종 있었고 물론 여행 목적으로 다니기도 했다. 이번 일본행은 3년 만이다. 2022년 9월, 기시다 총리가 무비자 해외 여행객 입국 허용을 발표하자마자, 다음 날 10월 비행기 티켓과 숙소 예약을 마쳤다. 평소에 눈여겨보고 있던 신주쿠의 호텔 센츄리 서던 타워가 마침 할인을 하고 있기에 덥석 예약부터 했다.

 

예전에는 1박에 5-8만 원 수준으로 저렴한 호텔 마이스테이 같은 곳에서 자주 묵었는데 (대개 저렴한 숙소 위치는 역에서 10분 이상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드니 짐을 끌고 걸어가야 하는 숙소보다는 최대한 역과 가까운 숙소를 선호하게 된다. 센츄리 서던 타워 호텔은 신주쿠역, 공항버스 터미널과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캐리어를 끌고 길에서 헤맬 필요가 없다.


또 이곳은 ‘신주쿠 서던 테라스 광장’과 호텔 건물이 붙어 있기 때문에 쉑쉑버거, 팀호완, 스타벅스, 블루보틀을 비롯해 타카시마야 백화점, 신주쿠역과 연결된 루미네, 오다큐 등의 쇼핑몰 등을 동네 마실 다니듯 다닐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만 숙박비가 문제다. 지금은 내가 예약했던 가격보다 2배 이상 비싸기 때문에 비성수기, 혹은 할인가를 노려야 한다. 여유가 있으시다면 언제든 강추.


저기 보이는 쉑쉑버거 건물이 바로 센츄리 서던 타워 호텔.


여행 예산을 짤 때 우린 종종 숙박비를 아끼곤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밖에서 보내고 대충 잠만 잘 거니까 캡슐 호텔... 까진 아니더라도 비좁고 창이 없는 저렴한 숙소를 고를 때가 있다. 막상 저렴한 숙소를 몇 번 경험하고 보니 숙소는 여행 일정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란 걸 깨달았다.


특히 도쿄의 경우는 도시 특성상 녹초가 되도록 많이 걸어야 하기 때문에 (버스보다 지하철이 편리하고, 역마다 지하에서 무지하게 걸어야 하므로 항상 피곤한 상태...) 숙소에서 받게 될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 푹신한 침대, 탁 트인 창 밖 도시 풍경, 무엇보다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챙겨주는 객실 청소 서비스는 나의 지친 육체를 신속하고 보다 편안하게 회복시켜 준다. 그래야 다음 날 또 돌아다니지.

 

내가 숙소 위치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사실 또 있다. 나의 도시 여행 패턴은 아침에 채비해서 나가면 저녁때 돌아오는 게 아니다. 숙소를 거점으로 삼고 오전 오후 타임을 나눠서 호텔에 돌아왔다 다시 나가기도 한다. 이유는 쇼핑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살지 모르는데, 만약 무거운 제품을 쇼핑한다면 그걸 들고 다니지 않고 호텔에 돌아와 놔두고 다시 나간다. 그래서 숙소 위치를 중시하는 것. ㅎㅎ


신주쿠 역 주변에 머물러보니까 이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여행 내내 이것저것 사서 짐이 많아졌다? 근데 그걸 전부 끌고 나중에 집에 돌아갈 때 공항으로 가는 비용을 줄여 보겠다며 지하철을 타거나 하면? 소싯적에 이런 루트와 패턴의 여행 많이 해봤는데 피곤해서 죽는다. 그런 면에서 이번 호텔은 위치상 참 좋은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이 호텔을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도코모 빌딩과 신주쿠 교엔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맑은 날엔 도쿄 스카이트리까지 내다보이는, 도쿄 시내 호텔 중에서도 가성비 최고의 시티뷰를 자랑하는 호텔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막상 도착하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좋을 줄 몰랐지. ㅎㅎ

 

내가 도쿄 시티뷰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 계기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덕분이다. 이 영화의 주요 배경은 호텔 파크 하얏트. (이번 생에 내 돈 내고 가기는 어려운 호텔이지.) 주인공 샬롯(스칼렛 요한슨)이 여행자/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외로운 도시의 전경. 그 시티뷰를 언젠가는 나도 한 번 느껴보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소원 성취했다.

 

사진작가 남편의 해외 출장에 함께 한 샬롯은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그녀는 작은 호텔 방에 갇혀 매일 창 밖을 내다보는데 그 장면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혼자 여행 가면 이렇게 '값비싼' 청승 한 번 떨어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멋진 시티뷰는 나만의 청승 여행 최고의 BGM이 되어준다. 이번 여행은 내게 이런 뷰를 선사했다.  

내가 묵었던 호텔 31층 객실에서 바라본 도쿄 시내. 저 멀리 스카이트리가 보인다.
왼쪽 뷰도 좋고.
매일 아침 이런 하늘을 보며 눈을 떴다.

공교롭게도 영화 속 샬롯이 묵던 객실과 내가 묵었던 호텔 객실의 전경 방향이 같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얏트 전경 못지 않은, 아름다운 도쿄의 시티뷰였다고 자부한다. ㅎㅎ

또 이곳의 장점은 야경도 멋지다는 것. 일정을 마치고 밤에 숙소로 돌아오면 이렇게 근사한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다음 일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방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 그렇게 좋더라.



그리고 새벽마다 그림 같은 일출도 볼 수 있었다.




객실에 들어서면 이런 시티뷰 안내문이 있어서 도심 곳곳의 위치를 확인할 수도 있다. 참고로 모든 객실의 뷰가 좋은 건 아니니 체크인할 때 시티뷰가 가능한지를 물어봐야 한다. 보통 체크인 시간이 3시인데 너무 늦게 가면 당연히 좋은 객실 배정이 어렵다. 미리 도착해서 기다렸다가 체크인을 하게 되면 대개 좋은 객실로 배정해 준다. 또 재미있는 건 이 호텔에 윈도 클리닝 서비스라는 게 있다. 객실 창을 깨끗하게 닦아주는 객실 서비스다. 디테일한 서비스까지 챙기는 게 매력적이더라.



신주쿠 역 주변에 숙소를 잡고 싶었던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센츄리 서던 타워 호텔이 위치해 있는 서던 테라스 광장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의 주요 배경 장소이기 때문. (숙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신주쿠 교엔은 <언어의 정원>에 등장했던 곳이기도 하고.)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은 모두 무너져버린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게 되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주인공이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어떤 미래를 꿈꾸며 살아야 하는가, 내지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누가 이 세계를 구할 것인가! 뭐, 그런 거창하고 낯 간지러운 질문을 아주 뜨겁고 우렁차게 그리고 예쁘게 외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작화 터치와 세계관의 힘을 빌려 (상대적으로 무력한) 젊음을 우상화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 때로 영화는 그런 머리 복잡한 고민도 한 순간에 휘발시켜 버릴 수 있는 감동을 선사한다. 호다카가 권총 소지 혐의로 형사들에게 붙잡혀 이케부쿠로 경찰서로 잡혀갔다가 요요기 회관까지 질주하는 후반부 장면에 신주쿠역 기찻길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이란, 일본을 향한 나의 복잡 미묘한 애증의 시선을 잠시 잊게 해준다. 신주쿠 서던 테라스 광장에서 영화 속 그 길을 내려다볼 수 있다.


호다카가 뛰어가는 저 길이 이 길.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있어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활약 이후 가장 놀라운 열품을 불러 일으켰던 <너의 이름은.> 엔딩에서 성인이 된 타키가 미츠하의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는 스타벅스도 바로 이곳 서던 테라스 광장점이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젊은이들로 늘 가득해서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서던 테라스 광장 주변만 맴돌아도 반나절은 그냥 흘러갈 만큼 먹거리, 쇼핑 스폿이 많다. <날씨의 아이>에 등장하는,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진 요요기 회관도 다 이 근처다. 나를 홀리게 만든 각종 먹거리는 다음 회에서도 차차 소개할 수 있겠지. 아무튼 호텔 센츄리 서던 타워는 여러모로 내겐 더할 나위 없는 백 퍼센트의 숙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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