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언제 엄마랑 집에서 에펠탑을 보겠어?’
시내에서 좀 멀지만 가성비 좋고, 시설 깔끔하고 무엇보다 석식을 상다리 흐드러지게 차려준다는 숙소를 뒤로했다. 대신 시내에 좀더 가깝고, 살짝 도도하면서 대놓고 세련된 방을 예약했다. 이 방이 이전 숙소보다 비싼 이유는 새끼손가락만 한 에펠탑이 보이기 때문이다. 죽상을 하고 고민만 며칠을 했으나 막상 지르고 나니 별것 아니었다. 이제 무릎에 물 차는 게 예삿일인, 얼마 전엔 여행 대비 침을 맡고 왔다는 엄마와 가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겐 지름의 영이 임했다.
‘런던 지하철이 안타깝게도 세계 최초 지하철이라고?’
유랑 카페에서 런던과 파리의 대중교통 상황을 묻는 글 아래 달린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냄새나고, 더럽고, 에스컬레이터는 거의 없다는. 게다가 런던 지하철은 안타깝게도 세계 최초 지하철이라는 글. 무거운 캐리어와 배낭을 멘 내가 에스컬레이터를 애타게 찾을 모습이, 그러나 없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뽀글뽀글하게 했다. 엄마는 내 짐을 맡고, 나는 엄마 짐을 먼저 올린 후, 엄마가 빠르게 계단 위로 올라와 짐을 지킨다. 동시에 나는 빠르게 내려가 비로소 내 짐을 들고 올라오는 상상. 심지어 지금 마음은 이런데 현실에선 내 짐도 제대로 못 끄는 무용한 존재가 바로 나다. 여행이 가능하긴 한 건가?
마침 그때,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나 캐리어 끌고 대중교통 오갈 자신이 없어. 우리 택시 타자.” 택시비가 돈 십만 원은 될 텐데. 내가 잡은 숙소는 무려 공항에서 직행인데. 뽀글뽀글, 뽀글. 한인 택시를 예약했다. 살며 내가 이렇게 플렉스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 근데 해보니 좋았다. 돈을 쓰니 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한인 택시 아저씨와 안전한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 새해 덕담을 나눴다.
“파리에 간다면 당연히 스위스는 가야지! 부모님이랑 가면 스위스지!”
친한 언니가 확언하는 말에 귀가 열렸다. ‘더 지르면 끝이야!’ 하면서도 내 손은 어느새 언니가 콕 집어 말한 스위스 도시 중 하나를 검색하고 있었다.
한 번뿐인 여행이니까.
자꾸 이 여행이 나의 첫 유럽 여행이기도 하지만 엄마와의 첫 유럽 여행이자 마지막 여행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현실적으로 많은 돈과 시간을 내서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나만 해도 유럽을 가는 데 무려 36년, 엄마는 64년이 걸렸으니까. 내 플렉스에 지지를 보태는 남편에게선 ‘네가 언제 또 장모님이랑 유럽을 가겠니’ 싶은 적잖이 짠한 감정이 흐른다. 얼마 전 절친 하나는 용돈을 줬다. ‘조영신 유럽가기’ 자기 소원이 성취되었다며. 윗집 사모님은 깡통김치와 미역국 키트를 싸줬다. 아주 유용할 것이라며. 새언니는 구글 지도를 켜고 주소를 복붙, 복붙, 복붙해줬다. 이건 마치 온 세상 사람이 나와 엄마의 유럽 여행을 염원하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여행 출발 일주일 전. 2월에 예정된 여행을 지난해 11월부터 계획하고, 예약/취소/변경/환불의 늪에서 이제야 겨우 빠져나왔다. 첫 유럽 여행을 자유여행으로 도시 여러 곳을 돌다 보니 가기 전부터 기진맥진한 기분을 살짝 느낀다. 대부분 티켓을 싸게 예약한 만큼 환불 불가 상품이 많은데, 캐리어 크기를 잘못 재서 티켓을 잘못 구매하고, 2등석 예매해도 될 유람선 티켓을(2등석은 실내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정보를 맹신하는 바람에) 1등석을 예매했다. 차액을 떠올리며 며칠 밤 괴롭다가 메일이며 전화며 더듬거리며 환불하고, 변경하고, 휴. 진작에 다녀왔으면 엄마 모시고 가는 여행에서 이런 실수도 없었을 텐데. 어쩐지 엄마는 내가 예약 완료 메시지를 보내면 ‘예약된 거 맞겠지요.’ 하고 끝도 없이 의심한다. 배낭여행은 고사하고 신혼여행마저 왜 제주도로 가서 이 나이에 이 사달을 내나 싶다가도…. 그런데 다음 주 오늘, 눈앞에 존 싱어 사전트 그림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허공에 대고 허세롭게 물질을 한다.
그래, 지르자! 언제 엄마랑 또 유럽 여행을 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