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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Feb 04. 2023

“You are holding my hands!”

뮤지컬 영화 •마틸다• 대사 중



잠깐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산 중턱에 있던 보리 유치원으로 가고 싶다. 점심을 먹고 재잘재잘 떠들며 놀던 그날, 거대한 내 단짝이 찾아왔던 그때로.



나는 그날 “안 돼요.”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되게 좋았으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으면서. 한껏 들뜬 마음을 목구멍부터 배꼽까지 꾸욱 눌러 내렸다. 왜인지 겨우 다섯 살이었던 나는 너무 좋아도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규칙을 어기면 안 될 것 같은 하찮은 기분 따위를. 나의 거대한 단짝은 그날 홀로 산을 터벅터벅 내려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가 재가하여 잠실 신축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까진. 할아버지와 나는 매일 산보를 했다. 어느 날은 대공원으로, 어느 날은 그냥 하염없이 골목을 걸었다. 트림을 꺼억하는 할아버지 옆에서 나는 정말이지 너무 나불댔다. 딱히 그 누구에게도 다정하지 않은 할아버지였지만, 그런 분(소위 지독한 노인네) 옆에서 유일하게 조잘대는 꼬마가 있었으니. 그건 나였다. 나는 감히 많이 말해도 되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단짝이었으니까. 우리 할아버지 귀는 부처님 귀처럼 참 컸다. 내 이야기가 쏙쏙 잘도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어느 날 부러 산을 탔다. 내가 다니는 유치원은 산 중턱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하산하던 중에 나를 데리러 왔다. “집에 가자.”

작은 신발이 가득 놓인 유치원 현관 앞에 거대한 할아버지 실루엣이 보이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나에게 집에 먼저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친구들은 동물원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를 구경하듯 우리 할아버지를 구경했다. 집에 가자면서 웃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고 우뚝 서 있는 그 자태를.



나는 할아버지가 저기 앞에 보여서 좋았고, 지금도 할아버지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러면 “할아버지!” 하고 오도도도 뛰어가도 되었을 텐데. 대신 나는 꾹 침을 삼켰다. 그리고 미간에 힘을 줬다. 그때 나는 정해진 시간, 즉 하원 시간이 아닌 때에 집에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규칙 따위를 어기면 하늘 위에 먹구름이 가득 끼고 나를 혼내는 기분이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다소 허탈하고 서운한 표정으로 하산해야 했다. 그때 나는 정말 다섯 살이었고, 할머니 가 소천하신 해였다.



나도 할아버지도 가장 소중한 이와 헤어졌을 때였다. 내가 처음 슬픈 감정을 배운 것은 그 시절이었다. 할아버지가 소천하신 할머니를 뒤로하고 집에 돌아와 열쇠 꾸러미를 던지며 말했다. “하, 갔어, 가버렸어.” 난 그때 죽음은 한숨이라고 생각했다.



수영장을 갔던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다.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바로 물에 들어갔던 할머니는 심장에 무리가 와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수영 전엔 꼭 준비운동을 해야 해, 물 온도를 미리 가늠해야 해, 물로 가슴부터 적시고 서서히 들어가야 해.” 따위의 경고를 매일 들어야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 손을 전보다 더 꽉 잡았다.



“You are holding my hands!” _ 영화 「마틸다」  

영화 말미에 마틸다와 선생님이 손을 꼭 잡고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줄 때 나의 거대한 단짝,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 시절 손의 온기가, 목적 없는 재잘거림이 나와 할아버지를 안전하게 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랬던 우리의 세계는 아마도 다섯 살인 나와 일흔에 가까운 노인 사이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최근 종일 대화할 상대 없이 지내다 입이 폭발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말할 상대가 없으니 자연스레 말수가 적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도면밀하게 말을 쌓아두는 나란 사람은... 대체 왜... 이럴까? 피곤에 지친 남편 옆에 매미처럼 붙어 조잘대는 나를 발견하고 약간의 수치심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다 글을 쓰고, 새삼 내 수다의 발상지가 또렷해지며. 이건 아무래도 나의 거대한 단짝 덕분이 아닌지.

이런... 할아버지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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