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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꽁치 Sep 07. 2016

세계 여러 나라의 시간

나, 거기에 있었어요!


폭신한 침대에 눕자 좀처럼 움직이기가 싫어졌다. 물 한 잔을 마시고는 들어오는 남편을 다급히 불러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으로 충전 중인 핸드폰을 가리켰다.

"내일 알람 맞춰줄까?"

의도를 파악했다는 듯 묻고는 핸드폰을 들어 올린다. 알람을 맞추던 남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핸드폰에 왜 이렇게 다른 나라 시간들도 같이 보게 해뒀어?"




나는 핸드폰에 '대한민국, 서울'의 시계뿐 아니라 몇 군대의 다른 나라의 시간도 함께 가리키도록 설정을 해두었다. 저마다 가리키는 시간도, 낮과 밤도 다른 모습으로 째깍째깍 흘러간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설정해 둔 다른 나라들은 내가 여행지로 방문했던 곳 이거나 혹 대학 시절 해외봉사를 위해 갔던 곳들이다. 왜인지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나, 봉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다른 기념품이나 사진처럼 그곳을 떠올리고 추억할 만한 무언가가 있었을 텐데도 가장 간편히, 그리고 언제든 꺼내어 추억할 수 있는 것이 나에게는 그 나라의 시간이었다.


흘러가는 시계를 바라보고 있으면, 지금 쯤 그곳에서는 닭들이 분주히 울어대며 아침을 알리고 있겠구나 싶고,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들락거렸던 미술관은 오늘도 같은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겠구나 하며 이내 그곳에 모습들이 떠올랐다. 아침이면 걸으며 산책하던 숙소 앞 산책로의 향긋한 풀내음이 떠오르기도 하고, 함께 울고 웃으며 땀을 흘리던 봉사하던 학교의 모습도 생생하게 그려지곤 했다. 마주 앉아 나누어 먹고 마시던 음식들이 떠올라 침을 꼴깍 삼키기도, 또 함께 식탁에 마주하던 사람들이 떠올라 그리움이 번지기도 했다.

동시에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그 나라의 다른 모습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이를테면 계절이 바뀐 동네의 모습이나 훌쩍 커 버렸을 아이들- 이러한 상상들은 그리움과 동시에 언젠가 다시 그곳을 방문하고 싶다는 소소한 행복을 안겨다 주곤 했다.



알람을 맞추고는 침대에 눕는 남편에게,

"왠지 저 시계들을 설정에서 지워버리면,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거 같아서!"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날 나는 왠지 좋은 꿈을 꿀 것 만 같아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 곳곳을 누비는, 그런 꿈을 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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