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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꽁치 Dec 18. 2018

우유 마시기 싫은 날

아니, 마실 수 없는 날

  

  승훈이의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분명 아침에 등원할 때만 해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인사를 나눴었다. 겉옷과 가방을 정리하는 모습 말고는 특별히 이렇다 할 사건(?)도 없었는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승훈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니, 거울을 봤는데 머리가 너무 길잖아요.”

퍽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승훈이 딴에는 정말 신경 쓰였나 싶어 양 손 엄지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지금 머리도 멋지다고 이야기를 건넸다.




우유 간식 시간이 되어 한 아이들이 손을 씻고 우유를 가지고는 제자리에 한 둘씩 앉기 시작했다. 손을 씻고 온 승훈이가 다가왔다.

“선생님 오늘은 우유 마시기 싫어요.”

요 며칠 감기로 감기약을 먹고 있는 터라 감기 기운에 우유를 마시기가 불편했나 싶어 물었더니,

“아니요, 우유 마시면 머리가 빨리 자라잖아요.”
라고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을 한다.

우유를 마시면 머리가 빨리 자랄까 봐 심각하게 걱정하는 승훈이를 어떻게 안심시켜주어야 할까 싶어 고민하는 사이 정적이 흘렀다. 진정성 가득한 승훈이의 대답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유와 머리카락의 상관관계까지도 진지하게 생각했던 내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승훈이는 결국 그날 우유를 마시지 않았다. 그날 나는 승훈이에게 위로도, 안심도 무엇하나 제대로 건네질 못했나 보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
밤톨처럼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으로 승훈이가 웃으며 등원했다. 가지런한 모습이 멋져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제 승훈이는 걱정 없이 우유도 마실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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