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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IBS Sep 07. 2022

저는요, 책을 내고 싶었습니다

진심인뎅

“아니 이 사람아 그러니까 이걸 먼저 브런치에 내 보고 #%#$#%#^”

“아니 님아 그게 그거 쓴 사람은 다 유명한 사람이라니까”


예전에 같이 일 했고, 서로 다른 회사를 다니는 지금도 몇 달에 한 번 보는 친구인 K(1)과 K(2)가 있다. 추운 겨울날 코로나를 뚫어보고 간만에 모인 저녁 자리, 기름을 뚝뚝 흘리며 숯불 위를 굴러가는 양꼬치 앞에서 야심차게 올해는 출간을 하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출간 목표는 모 시리즈라고 밝히자 그 둘은 딱 저런 답을 돌려줬다. 거 참 평가 야박하다 증말로.


출간은 두어달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쇼핑을 하다가 우연히  에세이를 발견하고 생긴, 숯불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양꼬치처럼 따끈한 목표였다. 해당 에세이는 다양한 주제로 만들어지는 유명한 시리즈의 책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주제를 잡아서도 에세이를   있구나. 한때 책을 너무 좋아했고, 뭔가 써내려가는  업으로 삼으면서 에세이스트도 꿈꿔봤지만 어떻게 엮어서 만들어  방법을 찾지 못했었다.  에세이는 이런 상황을 한순간에 맑게 정리해줬다.  머리에 만화처럼 번개가 내려친 것만 같더라니까.


게다가 해당 시리즈엔 상대적으로  시장에서 이런 것도 된다고? 싶은 주제도 많았다.  이거  해볼만한 일이다. 껌이지! 집에 가자마자 한밤중에 노트북을 열고 목차를 구성했다. 소재는  취미 1번인 프라모델. 휘뚜루마뚜루 목차를 구성하곤 이내  하나를 뚝딱  버렸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글을 굉장히 빨리 쓰는 편인데, 평소보다  빠르게 썼다. 약간 거북알 아이스크림 아는지?  아이스크림은 풍선 같은 껍질(?) 들어있는데, 녹은 상태로 꼬다리를 잘라낼 경우 분수처럼 쏟아져나온다.   꼴이었다.   


출처 : 유튜브 '하루한끼'

 

친구들을 만났을 때는 이미 네 편 정도를 쓴 상태였다. 친구들은 인상을 가볍게 쓰며 영 안 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1. 그 주제로 2. 유명하지 않은 네가 과연? 이라는 이유였다. 과연 대중문화계에서 일하는 친구들답게 합리적이고 타당한 수요예측이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미 꽂혀버린 나에게 그런 잡음은 귓바퀴 언저리에서 튕겨나갈 뿐이었다. 거진 2-3년 만에 느끼는 작업의 설렘 앞엔 많은 것이 무의미했다. 이미 내 노션 페이지에는 목차가 있었고, 커버 이미지가 있었으며, 초고는 네 개나 마련되어 있었다. 심지어 글쓰는 재미를 위해 와디즈에 휴대용 기계식 키보드까지 펀딩을 해놨다.



아마 내 머리 속에선 이런 매커니즘이 돌아갔던 것 같다. ‘이런 마이너한 소재로도 책이 나온다 > 프라모델 정도면 대중적인 취미다 > 이걸(?)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많지 않다 > 나도 글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다 > 내가 빨리 한다고 하면 되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단계들과 연결고리엔 수많은 구멍이 있었지만, 당시의 나에겐 ‘양꼬치엔 칭따오 ㅇㅇ 당연’ 같은 사실과 같은 지위를 차지하고 머리 한 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말이나 휴가 땐 카페에 가서 자료가 될만한 책을 읽어보거나 초고를 만들어 채우는 일을 반복했다. 고향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도 (원래 가지고 있었던, 펀딩 종료 이전 시점이라 아직 못 받았다 ㅎ)블루투스 키보드를 붙잡고 글을 써봤다. 아직 출판사에서 해 준다고도 안 했는데, 꼭 하는 행동은 출간 계약을 한 사람 같았다.


워라밸이 훌륭한 회사에 다니면서 글을 꽤 빨리 쓰는 나는 일을 병행하면서 남는 시간을 쓰는 것 만으로도 3~40% 분량의 초고를 빠른 시일 내에 뚝딱 말아냈다. 2만5천자 가량을 쌓았다. ‘됐다. 이 정도면 출판사에 샘플 원고와 기획안을 드디어 보낼 수 있겠다.’ 생각하고 밤 열두시에 워드로 뽑은 기획안 하나와 피디에프로 뽑은 초고 네 벌을 한 데 합쳐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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