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안대!
ㄴ 1편
대차게 까였다. 다다음 날 아침에 수영 다녀와서 맥모닝을 씹는 동안 도착한 몇 줄 가량의 거절 메일을 몇 번 곱씹으며 봐야만 했다. 이 주제론 관심 가지고 잘 만들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럴 수 있겠다 뇌까리면서 다른 곳에도 넣어봐야겠다 다짐은 했지만 불안감이 엄습했다. 세상에 나와 30년 살짝 넘게 살아본 감으로 이런 쎄한 느낌이 그대로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예감은 적중했고, 다른 출판사도 거절의 의사를 친절하게 밝혀왔다.
소재가 문제였을까?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이 문제였을까? 출판사랑 너무 안 맞았을까? 아님 내가 유명하지 않아서? 예전에 같은 팀에서 일했던 동료가 해 준 말이 떠올랐다. 편집자 출신이었는데, 브런치에 글 쓴다니까 한 번 살펴보더니 책 내면 좋겠다고 하더라. 근데 좀 더 유명해지긴 해야한다고 덧붙였었다. 이런 생각이 드니 이제 또 세상이 야속한거지. 따지고 보자면 소재도 많이 마이너했고, 글도 후루룩 썼으니 거칠었을테고, 기획안도 쓰는 데 한 시간 안 걸렸는데. 고민이 너무 짧았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니까. "하 책은 뭐 유명한 사람만 내냐!" 이렇게만 생각했던거다.
왜 그 전에 말했던 거북알 아이스크림. 그거 한 번 꼭지를 따면 정말 빠르게 쏟아내지만 그만큼 금방 없어져버린다. 글을 후루룩 썼지만 거절 메일과 함께 좌절감에 더 이상 뭘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곱씹어보면서 출간의 어려움이 눈에 훅훅 들어왔다. 책을 만든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이 한 권을 빼가지고 최소한 출판사에 손해를 안 끼치려면 몇 권을 팔아야 하는 걸까. 대충 계산해보니까 천 만원 조금 넘게 매출이 나와야 손익 분기를 맞출 것 같았다. 한 권에 만 원 정도 잡고 천 권 이상.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까 자신감이 마저 떨어졌다. 시장에 풀린 수많은 책 중에 내 것 하나 못 내겠냐는 자만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내가 이런 주제로 책을 낸다고 천 권이 팔릴까? 차라리 천 권을 세로로 쌓아서 뜀틀을 뛰는 게 쉽겠다. 생각이 드니까 출판에 대한 미련이 떨어졌다.
출간을 못 하는거야 못 하는건데, 나는 이미 해 둔 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는 성격이다. 냉장고에 조금씩 남은 재료들이 있다면 기어이 볶음밥이라도 해서 꼭 털어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책으로 낼 순 없지만 해 놓은 건 어떻게든 털어서 비워야겠다. 이걸 해야 깔끔하게 다음의 무엇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침표를 잘 찍는 건 언제나 중요하니까. 게다가 와디즈에서 펀딩 걸어둔 기계식 블루투스 키보드도 취소하기 싫었거든. 그래 까짓거 뭐 쓰고 브런치에라도 올려서 털자. 다시 한 편 씩 적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