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IBS Dec 12. 2022

장난감 오픈런 가는 사람들

RG 가오가이가 오픈런 체험기

RG가오가이가. 가오가이가는 과거 '사자왕 가오가이거'라는 이름으로 국내 방영했던 만화의 주역 로봇이다. 그 시절 나왔던 로봇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인기가 많다. 그만큼 여태 출시된 장난감의 가짓수도 많다.


머시쩌

이번에 나온 RG가오가이가는 이 제품화된 장난감 중 정점에 서 있다고 봐도 될 만큼의 압도적인 퀄리티와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장난감은 나온 시기가 깡패다. 최근에 나온 게 무조건 좋다. 2022년의 기술력으로 만든 인기 변신합체로봇의 퀄리티는 굉장히 높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물건이었다. 나도 사진과 커뮤니티 글들을 보며 이게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모른다. 예약구매 오픈하면 바로 사려고 알람 맞춰 놓고 대기까지 했다.


근데 망해씀


내 손가락이 그때 클릭만 조금 빨리 했어도 오픈런을 가진 않았을텐데. 하기사 이건 내 손가락을 탓하기엔 그냥 인기가 너무 많은 제품이었던 게 문제였다. 그간 내 손가락이 각종 명절 기차표와 수강신청에서 큰 손해를 끼친 적이 없었던 걸 기억한다면 더더욱 손가락 탓을 할 순 없는 노릇.


시간을 맞춰놓고 정각 땡!하자마자 클릭했는데 무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가 뻑이 나는 걸 목격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한국 최대의 IT기업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인데 이게 이래도 되는건가? 어이가 없었으나 잠시 후 정상화된 페이지는 이미 물량이 다 나갔다는 설명과 함께 비활성화된 구매버튼으로 날 비웃었다. 하나도 못 샀다고? 기계의 개입이 있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클릭은 암묵적으로 '손'으로 하는 경쟁 아니었나? 매크로를 돌리는 놈에 대한 분노가 올라왔다. 


얼마간의 날짜가 지나고 기회가 한 번 더 왔다. 이 제품을 예약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에서 추가 물량이 풀린다는 얘기었다. 저번에도 라이브 커머스로 선가드를 샀으니 이번엔 잘 하면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접속한 화면에서 동접자 13만명이라는 숫자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 잘난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가 맛이 가는 걸 또 보고야 말았다. 헛된 새로고침과 클릭을 몇 번 거듭하고 다시 라이브 커머스로 돌아왔다. 채팅창의 여론은 최악이었고, 출연한 쇼호스트 등은 애써 올라오는 욕설을 외면하며 당혹감을 감추는 중이었다. 나는 채팅창에 가득 올라오는 한국 총판이 물량을 적게 떼 왔다는 불만에 공감하기보다 '이거 인기가 대체 어느 정도인거지' 하는 불안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오가이가]의 인기가 가늠이 안 됐다. [PG 언리시드 건담]이나 [RG 하이뉴 건담]처럼 탑 레벨이 인기 제품은 발매 후 일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 정도 급일까? 아닐까? 혹시 넘을까? 만약 후자라면 이번 시기를 놓칠 경우 한참은 못 만난다는 얘기였다.





대망의 정식 발매일이 확정되고. 생전 처음 오픈런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간 고민했다. 갖고 싶긴한데, 그렇다고 금 같은 주말 새벽에 일어나서 갈 일인가? 하지만 역시 언제 갖게 될 지 모른다는 우려가 더 컸다. 또 굿즈 오픈런은 해 봤어도 프라모델 오픈런은 처음 해 보는 것이기도 해서 약간 궁금한 부분도 있었다. 혹시 재밌을수도? 뭔가 지금 작업하는 책에 에피소드로 쓸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과 옆지기의 응원(= 야 한 번 가보자~)에 힘입어 7시쯤 출발해보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일곱시쯤 눈을 떴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상황파악을 먼저 해봤다. 전날 저녁부터 줄 서있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6시 반 기준 이미 백 명이 넘게 줄을 섰다는 게시글을 봤다. 어떤 사람은 오지 말라는 얘길 하더라. 이미 끝났다는 거다. 이게 뭐지? 이 정도라고? 아 이미 망했나? 어쩌지? 침대에 누워 고민을 좀 했다. 커뮤니티에서 매장 당 수백개 수준의 물량을 가지고 왔다는 '썰'을 봤다. 안 가고 후회하느니 가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용산으로 향했다.



용산에 도착하니 불 꺼진 아이파크로 들어가는 경쟁자들이 보였다. 경쟁심에 종종걸음을 쳤다. 건담베이스가 위치한 대망의 6층에 도착했고, CGV 끝 부분에서 꺾어져 줄이 돌아가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여덟시였고, 매장 오픈 두시간 반 전이었다. 어림잡아 세어도 내 앞에 족히 200명은 있어보였다. 돗자리를 가지고 온 사람, 의자를 갖고 온 경력자들도 수두룩했다. 태블릿을 갖고 와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도 많았다. 대체로는 남자 혼자 왔고, 간혹 둘이 온 사람이 있었으며, 나처럼 여자친구나 와이프를 데려온 사람은 극히 드물게, 아주 희귀한 확률로 혼자 온 여성이 있는 그런 인적 구성이었다. 과연 프라모델 오픈런 줄이다 싶은게, 아직 불도 안 켠 복도에 프라모델 부품을 깔아놓고 헤드랜턴 켠 채로 조립하는 사람이 있더라니까. 하여간에 좀 신기했던 건, 사회생활하면서는 내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던 '가오가이가'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는 것이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걸 처음 봤어서 생경했달까. 그 외에 소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어 음성이 자주 들렸다. 


약을 먹어야 해서(코로나 아님, 약한 인후염 수준으로 거의 낫던 중이었음, 코로나는 그로부터 이주 뒤에 걸림) CGV에서 밥 될 걸 좀 사와서 먹고 같이 게임을 하면서 조금 더 기다렸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는데 다리가 좀 아팠다. 돗자리를 가져왔으면 좋았겠다. 다음에 혹시나 또 올 일이 있다면 꼭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물건을 챙겨야지. 게임을 한시간쯤 하고 나니 어둡던 복도가 밝아지면서 식당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들어왔다. 대체 얘들은 뭐지 하는 눈이었다. 사람들은 엉덩이를 움직혀 식당에 들어가는 입구 쪽을 비웠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건담베이스 직원이 등장했고, 사람들은 바지를 털며 일어났다. 


직원의 안내는 이런 내용이었다. 열시 반이 되면 신상품(가오가이가 등) 구매 줄을 줄을 서서 구매를 시작하겠다. 다른 매장 영업 방해 안 되게 줄 잘 서달라. 구매를 하려면 앱을 다운 받아 멤버십 카드를 보여줘야 하고, 1인 1개 구매이기 때문에 신분증(사진 안 됨)이 필요하다. 한정판도 아니고 그냥 인기있는 공산품 장난감인데 구매 절차가 굉장히 까다롭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중복구매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용산 건베에서만 중복으로 못 사는 게 아니고, 전국 어느 건베를 가도 못 사게 하기 위해서 이런 조치를 한다. 프라모델 품귀도 원인이지만, 되팔이(리셀러)의 영향도 크다.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책에 잘 소개되어 있다(뻔뻔)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4864592

이 책의 챕터 중 <중고가 훨씬 비싼 이상한 시장> 참고바람


아무튼 이런저런 안내 뒤에는 가장 중요한 말. 여기 있는 사람은 다 사실 수 있을거라는 말이 붙었다. 한숨 놨다. 대충 봐도 4~500명 가까이 서 있었는데 다 된다니. 500개 정도 들여왔다는 얼핏 본 소문이 맞았던 듯 하다. 


이후로는 열시 반이 넘어서는 달팽이 기어가듯 천천히 구매줄을 향해 간 것 밖에 없다. 중간에 건프라 유튜버 하나가 방송을 켜서 지나가는 것 말고는 이벤트도 없었다. 신분을 확인하고 구매하는 절차 때문에 구매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백미터는 되려나? 그 줄이 줄어드는 데 무려 두시간 반이 걸렸다. 처음엔 한 시간쯤 기다리니 매장 끝이 보여서 '아 다왔나' 했더니, 거기서 구매 줄 까지 한시간 이상이 추가로 소요됐다. 아 참고로 함께 기다려준 옆지기는 매장입구에서 헤어지고 다른 곳에 가서 기다렸다. 커뮤니티에서 가족을 동원해 하나 사야할 물건을 두 개 사서 되판다고 비난하는 글을 많이 봐서 괜히 구설에 오르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행여나 오해로 인해 "되팔이 새X들 가족까지 동원한다더니 진짜네요;;"라는 글에 사진으로 첨부되고 싶지도 않았다. 사십 분 정도는 혼자 줄에서 기다렸다. 그래도 가는 길에 프라모델이 많아서 눈이 심심하진 않았다. 사실 구매가 가까워온다는 생각에 두근두근해서 그랬던 듯도 싶음.



네시간 반 넘게 기다린 게 살짝 허망할 정도로 구매는 아주 간단하게 끝이 났다. 줄 착착 잘 서 있었으니 뭐 어렵게 될래야 될 수가 없었기도 했다. 미리 신분증과 앱 멤버십 카드 등을 준비했고, 냈고, 안내를 듣고, 결제를 하고 물건을 수령했다. 꽤 묵직했다. 역시 이런 종류의 물건은 묵직해야 기분이 좋지.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봉투를 자랑스럽게 흔들면서 삼백은 족히 되어 보이는 줄을 거슬러 올라가 식당가를 향해 갔다. 새삼 장난감 하나 사자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온다는 게 신기했다. 그 다음엔 아비꼬에서 가라아게동 먹고 이마트에서 장보고 돌아옴. 끗.



덧+ 이때 획득한 물건은 2주 뒤 코로나에 걸린 후 격리기간 동안 조립했다.

덧++ 오픈런이 굉장히 안전하게 이뤄진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수집하기 위해 이런 일까지도 감수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는 있겠다. 개중에 물건에 눈이 돌아가서 인간으로 할 일과 아닌 일을 못 가리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임 ㅇㅇ 물량이 적은 경우 사겠다고 난리치는 사람 때문에 사달이 나기도 한다. 심지어 내가 방문한 뒤 2주 후에 벌어진 일임.


덧+++ 정가에 샀지만 이후 부품을 몇 개 해먹는(?) 바람에 추가 지출이 있어서 결과적으로 웃돈 주고 산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어버렸다 쏘쌔드..



매거진의 이전글 [슈퍼미니프라] 슈퍼 파이어 다그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