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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IBS Dec 12. 2022

장난감 오픈런 가는 사람들

RG 가오가이가 오픈런 체험기

RG가오가이가. 가오가이가는 과거 '사자왕 가오가이거'라는 이름으로 국내 방영했던 만화의 주역 로봇이다. 그 시절 나왔던 로봇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인기가 많다. 그만큼 여태 출시된 장난감의 가짓수도 많다.


머시쩌

이번에 나온 RG가오가이가는 이 제품화된 장난감 중 정점에 서 있다고 봐도 될 만큼의 압도적인 퀄리티와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장난감은 나온 시기가 깡패다. 최근에 나온 게 무조건 좋다. 2022년의 기술력으로 만든 인기 변신합체로봇의 퀄리티는 굉장히 높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물건이었다. 나도 사진과 커뮤니티 글들을 보며 이게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모른다. 예약구매 오픈하면 바로 사려고 알람 맞춰 놓고 대기까지 했다.


근데 망해씀


내 손가락이 그때 클릭만 조금 빨리 했어도 오픈런을 가진 않았을텐데. 하기사 이건 내 손가락을 탓하기엔 그냥 인기가 너무 많은 제품이었던 게 문제였다. 그간 내 손가락이 각종 명절 기차표와 수강신청에서 큰 손해를 끼친 적이 없었던 걸 기억한다면 더더욱 손가락 탓을 할 순 없는 노릇.


시간을 맞춰놓고 정각 땡!하자마자 클릭했는데 무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가 뻑이 나는 걸 목격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한국 최대의 IT기업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인데 이게 이래도 되는건가? 어이가 없었으나 잠시 후 정상화된 페이지는 이미 물량이 다 나갔다는 설명과 함께 비활성화된 구매버튼으로 날 비웃었다. 하나도 못 샀다고? 기계의 개입이 있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클릭은 암묵적으로 '손'으로 하는 경쟁 아니었나? 매크로를 돌리는 놈에 대한 분노가 올라왔다. 


얼마간의 날짜가 지나고 기회가 한 번 더 왔다. 이 제품을 예약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에서 추가 물량이 풀린다는 얘기었다. 저번에도 라이브 커머스로 선가드를 샀으니 이번엔 잘 하면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접속한 화면에서 동접자 13만명이라는 숫자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 잘난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가 맛이 가는 걸 또 보고야 말았다. 헛된 새로고침과 클릭을 몇 번 거듭하고 다시 라이브 커머스로 돌아왔다. 채팅창의 여론은 최악이었고, 출연한 쇼호스트 등은 애써 올라오는 욕설을 외면하며 당혹감을 감추는 중이었다. 나는 채팅창에 가득 올라오는 한국 총판이 물량을 적게 떼 왔다는 불만에 공감하기보다 '이거 인기가 대체 어느 정도인거지' 하는 불안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오가이가]의 인기가 가늠이 안 됐다. [PG 언리시드 건담]이나 [RG 하이뉴 건담]처럼 탑 레벨이 인기 제품은 발매 후 일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 정도 급일까? 아닐까? 혹시 넘을까? 만약 후자라면 이번 시기를 놓칠 경우 한참은 못 만난다는 얘기였다.





대망의 정식 발매일이 확정되고. 생전 처음 오픈런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간 고민했다. 갖고 싶긴한데, 그렇다고 금 같은 주말 새벽에 일어나서 갈 일인가? 하지만 역시 언제 갖게 될 지 모른다는 우려가 더 컸다. 또 굿즈 오픈런은 해 봤어도 프라모델 오픈런은 처음 해 보는 것이기도 해서 약간 궁금한 부분도 있었다. 혹시 재밌을수도? 뭔가 지금 작업하는 책에 에피소드로 쓸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과 옆지기의 응원(= 야 한 번 가보자~)에 힘입어 7시쯤 출발해보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일곱시쯤 눈을 떴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상황파악을 먼저 해봤다. 전날 저녁부터 줄 서있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6시 반 기준 이미 백 명이 넘게 줄을 섰다는 게시글을 봤다. 어떤 사람은 오지 말라는 얘길 하더라. 이미 끝났다는 거다. 이게 뭐지? 이 정도라고? 아 이미 망했나? 어쩌지? 침대에 누워 고민을 좀 했다. 커뮤니티에서 매장 당 수백개 수준의 물량을 가지고 왔다는 '썰'을 봤다. 안 가고 후회하느니 가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용산으로 향했다.



용산에 도착하니 불 꺼진 아이파크로 들어가는 경쟁자들이 보였다. 경쟁심에 종종걸음을 쳤다. 건담베이스가 위치한 대망의 6층에 도착했고, CGV 끝 부분에서 꺾어져 줄이 돌아가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여덟시였고, 매장 오픈 두시간 반 전이었다. 어림잡아 세어도 내 앞에 족히 200명은 있어보였다. 돗자리를 가지고 온 사람, 의자를 갖고 온 경력자들도 수두룩했다. 태블릿을 갖고 와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도 많았다. 대체로는 남자 혼자 왔고, 간혹 둘이 온 사람이 있었으며, 나처럼 여자친구나 와이프를 데려온 사람은 극히 드물게, 아주 희귀한 확률로 혼자 온 여성이 있는 그런 인적 구성이었다. 과연 프라모델 오픈런 줄이다 싶은게, 아직 불도 안 켠 복도에 프라모델 부품을 깔아놓고 헤드랜턴 켠 채로 조립하는 사람이 있더라니까. 하여간에 좀 신기했던 건, 사회생활하면서는 내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던 '가오가이가'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는 것이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걸 처음 봤어서 생경했달까. 그 외에 소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어 음성이 자주 들렸다. 


약을 먹어야 해서(코로나 아님, 약한 인후염 수준으로 거의 낫던 중이었음, 코로나는 그로부터 이주 뒤에 걸림) CGV에서 밥 될 걸 좀 사와서 먹고 같이 게임을 하면서 조금 더 기다렸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는데 다리가 좀 아팠다. 돗자리를 가져왔으면 좋았겠다. 다음에 혹시나 또 올 일이 있다면 꼭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물건을 챙겨야지. 게임을 한시간쯤 하고 나니 어둡던 복도가 밝아지면서 식당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들어왔다. 대체 얘들은 뭐지 하는 눈이었다. 사람들은 엉덩이를 움직혀 식당에 들어가는 입구 쪽을 비웠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건담베이스 직원이 등장했고, 사람들은 바지를 털며 일어났다. 


직원의 안내는 이런 내용이었다. 열시 반이 되면 신상품(가오가이가 등) 구매 줄을 줄을 서서 구매를 시작하겠다. 다른 매장 영업 방해 안 되게 줄 잘 서달라. 구매를 하려면 앱을 다운 받아 멤버십 카드를 보여줘야 하고, 1인 1개 구매이기 때문에 신분증(사진 안 됨)이 필요하다. 한정판도 아니고 그냥 인기있는 공산품 장난감인데 구매 절차가 굉장히 까다롭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중복구매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용산 건베에서만 중복으로 못 사는 게 아니고, 전국 어느 건베를 가도 못 사게 하기 위해서 이런 조치를 한다. 프라모델 품귀도 원인이지만, 되팔이(리셀러)의 영향도 크다.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책에 잘 소개되어 있다(뻔뻔)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4864592

이 책의 챕터 중 <중고가 훨씬 비싼 이상한 시장> 참고바람


아무튼 이런저런 안내 뒤에는 가장 중요한 말. 여기 있는 사람은 다 사실 수 있을거라는 말이 붙었다. 한숨 놨다. 대충 봐도 4~500명 가까이 서 있었는데 다 된다니. 500개 정도 들여왔다는 얼핏 본 소문이 맞았던 듯 하다. 


이후로는 열시 반이 넘어서는 달팽이 기어가듯 천천히 구매줄을 향해 간 것 밖에 없다. 중간에 건프라 유튜버 하나가 방송을 켜서 지나가는 것 말고는 이벤트도 없었다. 신분을 확인하고 구매하는 절차 때문에 구매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백미터는 되려나? 그 줄이 줄어드는 데 무려 두시간 반이 걸렸다. 처음엔 한 시간쯤 기다리니 매장 끝이 보여서 '아 다왔나' 했더니, 거기서 구매 줄 까지 한시간 이상이 추가로 소요됐다. 아 참고로 함께 기다려준 옆지기는 매장입구에서 헤어지고 다른 곳에 가서 기다렸다. 커뮤니티에서 가족을 동원해 하나 사야할 물건을 두 개 사서 되판다고 비난하는 글을 많이 봐서 괜히 구설에 오르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행여나 오해로 인해 "되팔이 새X들 가족까지 동원한다더니 진짜네요;;"라는 글에 사진으로 첨부되고 싶지도 않았다. 사십 분 정도는 혼자 줄에서 기다렸다. 그래도 가는 길에 프라모델이 많아서 눈이 심심하진 않았다. 사실 구매가 가까워온다는 생각에 두근두근해서 그랬던 듯도 싶음.



네시간 반 넘게 기다린 게 살짝 허망할 정도로 구매는 아주 간단하게 끝이 났다. 줄 착착 잘 서 있었으니 뭐 어렵게 될래야 될 수가 없었기도 했다. 미리 신분증과 앱 멤버십 카드 등을 준비했고, 냈고, 안내를 듣고, 결제를 하고 물건을 수령했다. 꽤 묵직했다. 역시 이런 종류의 물건은 묵직해야 기분이 좋지.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봉투를 자랑스럽게 흔들면서 삼백은 족히 되어 보이는 줄을 거슬러 올라가 식당가를 향해 갔다. 새삼 장난감 하나 사자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온다는 게 신기했다. 그 다음엔 아비꼬에서 가라아게동 먹고 이마트에서 장보고 돌아옴. 끗.



덧+ 이때 획득한 물건은 2주 뒤 코로나에 걸린 후 격리기간 동안 조립했다.

덧++ 오픈런이 굉장히 안전하게 이뤄진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수집하기 위해 이런 일까지도 감수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는 있겠다. 개중에 물건에 눈이 돌아가서 인간으로 할 일과 아닌 일을 못 가리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임 ㅇㅇ 물량이 적은 경우 사겠다고 난리치는 사람 때문에 사달이 나기도 한다. 심지어 내가 방문한 뒤 2주 후에 벌어진 일임.


덧+++ 정가에 샀지만 이후 부품을 몇 개 해먹는(?) 바람에 추가 지출이 있어서 결과적으로 웃돈 주고 산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어버렸다 쏘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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