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인 지난주 토요일 드디어! 대망의 연주회를 마쳤다. 내가 연주한 곡은 쇼팽의 즉흥환상곡. 2달 반 전에는 이 곡을 연주회에서 연주하게 된다면, 그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2달 반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아 힘들 때도, 마음속 부담이 커져서 또는 그냥 갑자기 지겨워져서 하기 싫어졌을 때도 묵묵히 해나갔더니 자연스레 기적이 일어나 버린 것이다.
(독주로썬) 첫 연주회였다. 성인이 되고 나선 말이다. 20년 전 초등학생 때 연주했을 때 이후로 무대에서의 독주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땐 넓은 홀에 관객들이 멀리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관람객들도 아주 가까이 위치해 있는 환경이었다.
리허설을 시작했다. 순서가 다가올수록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속으로 애써 '괜찮아~'라고 외치며 안절부절 손에서 나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다 보니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다.
이번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무대공포증이 어김없이 또 발동했다. 내게 무대공포증은 단순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과 발이 달달달 떨리는 수준의 것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로 집중되어 있는 그 환경에 가기만 하면 의식이 미처 침투할 틈도 없이,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것이다. 위에 음식물이 들어가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화효소가 저절로 분비되는 것처럼, 생리적인 반응이었다. 내가 의지로써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발표 같은 것은 괜찮다. 그런데 꼭 악기 연주를 하려고만 하면 무대공포증이 찾아온다. 나 이번에도 극복을 못 하는 건가? 그토록 열심히 연습해 왔는데...
하, 어떡하지?
페달을 밟아야 하는데 이럴 수가, 다리가 덜덜덜 떨렸다. 즉흥환상곡의 빠른 부분을 연주해 내야 하는데, 손가락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고 있는 손으로 어떻게 연주를 하겠는가. "정말... 이건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렇게 혼자 연습할 때는 들어본 적조차 없는 아주 괴상한 터치를 마치고, 당혹감을 느끼며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내가 앉아있는 자리로 다가오셨다.
"떨려요?"
"네... 하..."
"주눅 들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요. '여기서 내가 즉흥환상곡 제일 잘 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선생님... 이건 자신감 문제가 아니에요ㅠ 제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자기 마음대로 반응해 버린단 말이에요.
"네 ㅠ 저 연습 더 해도 되죠?"
비어있는 옆 방 연습실로 달려가 연주를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혼자 연습실에서 연주를 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 너무!!! 연주가 잘 되는 거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이건 연습이 문제가 아니었다. 연습은 충분했다. 그냥 '무대공포증'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그나저나, 선생님이 하신 말 중에 '주눅 들지 말고'라는 말이 마음에 꽂혔다. '선생님이 볼 때 내가 주눅 들어 보이는 거야? 그게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잘 느껴지는 거야? 그거 정말 숨기고 싶은 건데...' 그런 모습은 감추고 싶었다. 남들한테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한테조차 말이다. 하... 들켰다고 생각하니 수치스럽고 절망스러웠다.
그래. 주눅 들어 있는 것. 사실 그게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주눅 들어 있었을까. 심지어 나도 모르게 말이다. 그리고 도대체 왜 주눅 들어 있는 거지?
떠올리기도 싫은, 아빠한테 비난받았던 기억들 때문일까? 약대 입시 실패했던 기간들 때문에? 우울증 때문에? 궁금하긴 했지만 그 근원을 찾는 일이 직면하기엔 괴로운 일이 될 것만 같아 두려워 회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이건 원인을 찾아내야만 하는 문제 같은데?'라는 목소리가 자꾸만 들려왔다.
이번 연주회를 소재로 앞으로 글을 3편 이상은 더 쓸 것 같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는 스토리는 정말 짜릿하다. 나 역시 그걸 원했고. 그러나 현실은 어찌 보면 야속하게도, 그런 드라마나 영화 속 극적 연출과는 조금 다르더라. 무자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온전히 느낀 뒤에 얻는 성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되겠지? 그 순간을 기대해 보며, 연주회 경험을 통한 나의 자아 성찰, 심리적 장애물과의 부딪힘 등의 이야기는 이 글 이후로 이어서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