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2주 만에, 드디어 즉흥환상곡의 폴리리듬을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데에 성공했다. '2주 밖에 안 됐다고?'라고 느껴질 정도로, 길게만 느껴졌던 2주였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은 3:4 폴리리듬으로 구성된 곡이다. 왼손이 6개의 음을 연주하는 동안, 오른손은 8개의 멜로디를 연주해야 한다. 왼손과 오른손이 엇박이므로 그동안 쳤던 곡과는 달라 정말 헷갈린다.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연속으로 그리는 동시에 왼손으로는 세모를 연속으로 그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2주 동안 인고의 과정을 거쳤다. 열심히 연습해서 리듬을 어느 정도 익히긴 했는데, 도무지 속도가 빨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분명 계속 연습하면 어느 순간 된다고 했는데...? 제자리걸음으로 같은 연습을 반복하는 것은 고행과도 같았다.
왜냐고? 보장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 정도 연습하면 연주할 수 있을 거야'와 같은 보장이 없다. 될지 안 될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계속해야 한다. 너무 안 되니까, 차라리 선생님이 보고 '안 되겠네요. 다른 곡으로 넘어갑시다'라고 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은연중 생겨나기도 했었다.
즉흥환상곡을 시작하게 된 건 선생님의 권유였다. 베토벤의 비창 3악장을 완성하고, 다음 곡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에게 선생님이 먼저 이야기했다.
"즉흥 환상곡 해보셨어요?"
안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긴 했다. 그런데 폴리리듬이 악명 높다는 댓글을 보고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그러나 그 곡을 선생님이 먼저 제안해 주신 건 기회였다. 이때 아니면 언제 어떻게 도전해 볼 생각을 하겠는가? 욕심이 났다.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걱정도 됐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나 조차도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단순히 자신감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데이터 부족으로 인한 문제였다. 한 마디로 '각'이 안 보이는 문제였다. 공부였다면 그동안 내가 해 본 시도들과 이뤄본 성과들을 바탕으로 데이터들이 충분히 쌓여있고, 그걸 토대로 '이 정도로 하면 되겠는데?'라는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즉흥환상곡은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감히'라고 생각하며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었기에,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해보자'라는 것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 곡이 되게 가성비가 좋은 곡이에요. 상대적으로 연습을 덜 해도 티가 덜 나는. 처음의 고비만 넘기면 돼요."
어려워 보이기만 하는 즉흥환상곡이 '가성비곡'이라고..? 그러면서 선생님은 "1~2주 해보고 안 되면 빨리 접고 다른 곡으로 넘어갑시다"라고도 말했다. 이 말에 오기가 생겼다. '그럴 수는 없지!'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연습을 했다. 그런데 이후 2주 동안 내가 생각하는 만큼 속도가 붙지 않자, 불안하고 힘이 빠지게 되기도 한 것이다.
2주 후, 레슨을 받았다. 레슨에서 선생님이 인식을 교정해 주셨다. 엇박 리듬 자체에는 익숙해졌으니, 이제 양손 손가락을 교차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그럼 속도가 늘 수가 없다. 속도가 빨라지려면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여야 한다. 특히나 템포가 빠른 즉흥환상곡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묶음 단위로 생각하는 연습을 시켜주셨다.
'나도 생각해 봤는데, 안 됐다고!' 하지만 선생님이 옆에서 같이 보조해 주면서 코칭해 주시니, 신기하게 조금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마치 수영이나 자전거에서 감을 잡는 것과 비슷했다. 무의식적인 감을 잡으면 별 다른 의식 없이도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놀라웠다. 내겐 기적과도 같이 느껴졌다. 2주 동안 안 되던 게 한 순간에 풀리다니! '내가 그동안 연습을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선생님이 "이것도 그동안 엇박 리듬 천천히 연습해 왔기 때문에 될 수 있는 거예요"라고 말해주셨다.
'아, 그 시간들이 헛된것이아니었구나. 보이진 않아도 다 쌓이고 있었구나.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감을 잡자마자,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빨라졌다. 나조차도 믿기 어려운 변화였다.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즉흥환상곡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쉬운 곡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즉흥환상곡을 빠르게 연주하고 있는 내 모습, 꿈에서조차 상상 못 해본모습이었다. 2주간 느리게 연습을 하면서도 떠올려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과연, 뭐든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되는구나!'
나아지는 것 없이 반복해야 하는 연습은 너무 지겹다. 될지 안 될지, 또 된다 하더라도 언제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순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면,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성취가 내게 찾아온다.
아빠가 내게 주신 정신적 유산 중 하나가 있다. "뭐든 '될 때까지'야."라는 말씀을 아빠는 자주 하셨다. 아빠 말씀이 맞았다. 여기에 더해 하나 더 깨달은 사실은, '자신의 한계를 섣불리 규정짓지 말자'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조차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다 알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아니,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다. 당신은 당신의 잠재력에 대해 잘 모른다. 잠재된 능력은 무언가를 끝까지 시도해 보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1년 동안 피아노를 계속했을 때 내 모습을 기대해 보게 되었다. 또 어떤 놀라운 일이 펼쳐질지 말이다. 피아노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원리를 터득하고 적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될 수 있게 될까.
쟤는 겨우 자장가에 그쳤지만 진짜는 꿈을 찾아가게 만들지 놀라운 건 뇌의 일부밖에 사용 안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