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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Sep 20. 2021

"무슨 일 하세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고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원제는 <Status Anxiety>로서, 불안 중 특히 지위 불안에 대하여 논하였다. 지위 불안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하여 주장하는데, 속물 snob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속물이라는 영단어 snob의 어원은 1820년대 영국 명문 대학의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옆에 작위가 없음을 뜻하는 sine nobilitate(줄여서 s.nob)를 적어놓던 관례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근대에 들어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 즉, 속물은 상대방의 작은 일부분을 가지고 상대의 사람됨 전체를 정의하는 사람을 뜻하며, 그중 현대에 두드러진 것은 직업에 대한 속물적 태도인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한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레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이 오고 간다. 그 대답에 따라 상대의 가치를 짐작하고 소위 '합리적'이라는' 계산적 행동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더욱 쓰라린 속물이 되어간다. 

알랭 드 보통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속물들의 세계에 함께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인물들의 행동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불안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친구나 연인은 우리가 파산을 하거나 수모를 당해도 우리를 모른 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우리가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속물들의 매우 조건적인 관심이다." - 알랭 드 보통, 불안(이하 인용구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 발췌)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주위에 비교적 속물이 적었던 어릴 적 학창 시절을 그리워한다. 속물의 반대말은 '어머니'(이상적인)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지, 자식에 대한 사랑의 조건으로 자식의 성취가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에 던져지며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기 어렵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랑받기 위해 그 사회가 갈망하는 지위를 갖기 위해 노력하며 불안을 느낀다.

"우리에게 솔로몬의 지혜가 있고 오디세우스의 책략과 꾀가 있다 해도, 우리의 자질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표지로 제시하지 못한다면 우리 존재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조건적인 면 때문에 괴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끼리 하는 사랑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원형으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력하고 벌거벗은 상태에서 부모의 돌봄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사랑을 경험했다." 


서점에 가면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와 '낮은 자존감 해결 방법'과 같은 두 종류의 자기 계발서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와 낮은 자존감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사회는 개인들에게 무엇이든 할(욕망하고, 소비하고, 될) 수 있다고 자아의 풍선을 끊임없이 부풀게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결국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과거보다 실제적 궁핍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에 대한 공포는 줄어들지 않고 외려 늘어났다. 특히 대중매체나 SNS를 통해 끊임없이 주입되는 다른 사람들의 오직 행복하고 잘 나가는 모습은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심리적 고뇌를 안겨주기도 한다. 우리나라 10대~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지위 불안의 수준이 심각하게 높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겨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질투할 사람도 늘어난다. 18세기와 19세기의 위대한 정치 혁명과 소비자 혁명은 인류의 물질적 운명을 크게 개선시키는 동시에 심리적 고뇌도 안겨줬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특별하고 새로운 이상, 즉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누구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에 반해 변화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 사이의 간극 때문에 불안이 초래된다고 보며, 성공과 행복에 대한 관점을 바꾸길 제안한다.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많은 것을 기대하여 불안했다면, 그 해결책으로는 반대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성공 중 하나가 마음의 평화이기 때문이다.

"부유하다고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와 같다고 여겼지만 우리보다 더 큰 부자가 된 사람과 실제로나 감정적으로나 거리를 두면 된다. 더 큰 물고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대신, 옆에 있어도 우리 자신의 크기를 의식하며 괴로울 일이 없는 작은 벗들을 주위에 모으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면 된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인간은 영원히 끝이 없는 불안 속에서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실존의 위기 속 우리는 결코 다 가질 수는 없으며 단지 그 바위를 굴려 올리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정의하는 성공을 찾아서 이루어 나가야 함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하여 원하는 바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방법이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인생은 결국 운칠기삼임을 잊지 말자. 나의 성공도, 너의 성공도, 나의 실패도, 너의 실패도, 결국 우연성이라는 운이 상당 부분 작용했음을 이해해야 한다. 누구를 만나든 간에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들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에는 우연성이 상당 부분 차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자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지위 불안의 해법 여러 가지를 제시하였는데, 그중 인상적인 해결책은 '철학'과 '예술'이었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함께 모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닌데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라고 권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

실제로 철학 책을 읽으면 나 자신과 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내 안에서부터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으로 자신의 삶을 직접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실패할 때 두려워하곤 했던 남들의 판단과 비웃음'을 예술을 통해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 속 수많은 개인들의 삶은 다양하고 다사다난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터질 것 같이 커진 자아를 중심으로 주위의 시선과 기준에 민감히 반응하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비극 예술을 접하면서 겪는 교훈은 타인의 실패에 대하여 공감하고 연민할 수 있게 해 주며 자신의 실패는 초연히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소설의 독자나 비극의 관객으로서 우리는 ‘쇼핑 중독자인 간통녀 비소를 삼키다’라는 머리기사의 정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비극은 실패나 패배에 대한 단순화된 관점을 버리게 하고, 우리 본성의 풍토병과 같은 우둔과 일탈을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사람들이 비극 예술에 담긴 교훈을 받아들인 세계에서는 실패의 결과가 우리를 그렇게 심하게 짓누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예술 및 독서 관련 모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들게 되었다. 일상 속 우리들은 주위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속물적이며 현실적인 이야기만을 계속해서 하며, 이러한 책의 내용 같은 새로운 시각과 초월적인 관점에 대해서는 논할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예술 및 독서 모임과 같은 성격의 모임에서는 나 자신을 새로이 알게 되고 타자에 대한 공감을 통해 지위 불안과 속물근성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삶,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하다… 보통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 그들의 금고 자물쇠만큼이나 부유하지 못하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부유할 수 없다.” - 존 러스킨 < 이 최후의 사람에게> -


타이틀 그림 :  'Eleven a.m.'  Edward H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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