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Ep.4
당신만의 블루스는 무엇인가
대치동은 경기가 좋든 부동산 분위기가 나빠지든 아파트 시세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전세가는 꾸준히 유지되며 수요와 공급이 조화를 이룬다. 이유는 단 하나다. 대치동 학원가가 일 년 365일 성업 중이기 때문이다. 서울 한강 위쪽에서부터 경기도 남쪽까지 모두 학원을 찾아 대치동으로 몰려든다. 주말이면 대구, 부산은 물론 천안, 대전, 세종시에서 KTX나 차를 타고 전 학년 아이들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대치동을 찾는다. 유동 인구가 많으니 학원가는 활기가 넘친다. 동시에 우울하기도 하다. 학원수업에 힘든 아이들이 내뿜는 한숨 때문인지, 아니면 라이드에 지친 엄마들의 짜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슬프고 우울한 블루스가 떠오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교육 열기가 들끓는 곳인 동시에 과열된 경쟁 속에서 여유와 웃음을 찾기 힘든, 차갑고 냉정한 곳이기도 하다.
나는 대치동 변두리에서 살았다. 결혼하고 임신했을 때는 회사 가까운 곳 아파트에 전세를 살았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내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최대한 무리하게 담보대출을 받아 잠실 쪽에 국민평수 아파트를 샀다. 국민학교 때부터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때까지 소위 강남 8학군 한가운데 살았지만, 내 힘으로 그 안의 아파트를 매수해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모님이 자리 잡으셨던 대치동은 예전에 전형적인 중산층 동네였는데, 내가 어른이 된 후에는 상류층 동네가 되어버렸다. 전세로 산다면 들어가 살 수는 있었겠지만, 마흔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왠지 ‘내 집’에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은 재산이 아닌 학벌뿐인지라, 나와 남편이 번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대치동 변두리였다. 그때 대치동은 내게 손 닿으면 닿을 거리에 있지만 아직 내 것은 아니었다. 차로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어도 심리적인 거리는 꽤 멀었다.
대치동에 미리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은 아이가 영어유치원을 다니면서 커졌다. 유치원을 비롯해 모든 학원은 대치동에 있었고, 나는 아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여기저기 차로 ‘라이드’를 했다. 그 시점에 제일 부러운 사람은 학원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 살아서 도보로 학원을 보내거나 아이가 학원 간 동안 집에 있을 수 있는 엄마였다. 회사 일이 바빠지고 아이 학원이 서너 개에서 열 개를 넘어가던 시점에는 나와 남편, 육아 도우미 이모만으로 부족해서 라이드만 해주는 파트타임을 따로 구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분은 이미 아이를 다 키워 대학교에 보낸 대치동 엄마였는데, 나같이 바쁜 워킹맘들을 대신해 대치동 학원가를 누비며 초등생들의 이동을 책임졌다. ‘라이드 이모님’은 아이 둘을 대치동에서 키운 만큼 각종 정보도 많았다. 나도 나중에 은퇴하면 저런 일 한번 해볼까 할 정도로 짭짤한 부업이었다.
라이드 이모님 대신 내가 직접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는 날이면 나는 근처 카페나 식당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연애할 때는 단 십 분도 질색하며 못 기다렸지만 아들에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잘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카페, 다음 날은 피부 마사지실, 또 어떤 날은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며 아이가 학원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대치동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은 근처 주차장이나 카페, 식당, 헬스장까지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정보를 필수로 확보해야 한다. 대치동에서 엄마들의 미덕은 기다림과 주차 능력이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니 너무 힘들어서 또 한 번 무리해서 전세를 끼고 대치동 학원가 안의 아파트를 매수했다. 살고 있는 잠실 아파트를 팔고 또 대출을 억지로 받아서 아들이 중학교 가기 전에는 반드시 입성하겠다는 나만의 꿈을 꾸면서.
내가 어릴 적 살던 대치동은 학원 때문에 유명한 곳이 아니었다. 80년대에는 과외가 불법이었고, 사교육은 극소수만 몰래 하던 것이었다. 단지 8학군 내 특정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 대다수가 서울의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데다, 지은 지 10년 안팎의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몰려 있다 보니 살기에 편하고 안전하다는 분위기였다. 학원이래 봤자 각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영업하던 미술, 피아노, 태권도 학원에 학생들이 다녔다. 가끔 웅변 학원이나 주산 학원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의 선행이나 내신과는 완전히 다른 용도였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8학군 동네는 은마 아파트 상가 지하의 떡볶이집, 미도 아파트 상가 1층의 문구점, 그리고 국내에서 처음 생긴 몇 안 되는 선경 아파트 건너편 패스트푸드 치킨 정도로 기억되었다. 그 외에는 봄이면 개나리가 흐드러지고, 여름에는 양재천 시냇물이 보기 좋고, 가을에는 길가 은행나무의 노란색이 좋은 동네였다.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와보니, 대치동은 내 아이가 제일 싫어하는 학원이 몰려있는, 24시간 차가 막히고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불쌍한 동네가 되어 있었다. 80년대 중반 서울의 신흥동네에 풍기던 여유나 한적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학교에서 배울 것을 미리 다 배우고,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될 것을 앞장서서 배우는 온갖 종류의 학원들이 그득한 곳이었다. 이제 명실공히 대한민국 사교육의 메카였다.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도 국내 지역별 학원 및 교습소 수는 강남 대치동이 1,609개로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대치동은 2019년 1,381개였던 학원 수가 4년 사이 228개가 늘었다. 학교가 수업을 정상적으로 못하고 주춤하는 동안,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호황기를 맞았다. 오전에 조용하던 대치동 학원가는 오후 2시가 넘어가면 유치원에 갔던 어린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러한 사교육 불패의 배경에는 점점 무너져 가고 있는 공교육과 기존 교육시스템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치동 학원가가 사교육의 요새처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집어삼킨 현재, 대치동은 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 욕망, 경쟁심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계속 북적이는 동네가 되었다. 사교육 없이 내 아이의 12년 교육을 잘 이끌어갈 방법만 있다면 그게 최고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교육 없는 학업은 한국에서 생각하기 어렵다. 대치동에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고, 그 변두리에서라도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강사들과 커리큘럼의 혜택을 보고 싶다 생각하는 엄마들이 많다. 나처럼 좋다더라 유명하다더라 미확인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일단 직접 상담을 받고 수업료를 확인하며 실제 그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분위기를 챙겨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주위 엄마들의 말만 듣고 덜썩 학원을 등록하고 실망하고 실패했었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아들의 한국 교육을 포기하고 제주도를 거쳐 해외에서 아이를 교육시키게 됐는지도 모른다.
대치동 블루스는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진행형이다.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지만, 아직도 매일 수많은 부모들과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꿈을 꾸며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가겠다, 의대에 가겠다며 몰려든다. 어떤 선택을 내릴지, 어떻게 블루스를 버텨낼 지, 어떤 블루스를 연주할지는 모두 엄마인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