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01

by 무명

10년 만에 브런치로 돌아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를 멈춘 이유로는 전문성 부족, 소재 고갈, 한정된 어휘력과 문장력 등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고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 마치 길 한가운데에서 발가벗겨진 채 서 있는 듯한 기분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의 글은 저렇게 훌륭한데 내 글은 왜 이렇게 초라한가.‘


’내 생각이 초라한 것은 내 빈약한 정신세계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닐까.‘


‘내 빈약한 정신세계가 행여 다른 이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건 아닐까.’


화면 속에서 커서가 깜빡, 깜빡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머리와 손은 커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굳어버려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글은 이제 나에게 죄가 되었고, 쓰기는 벌이 되어버렸습니다. 언제나 포기가 빨랐던 나는 피아노를 배울 때 그랬듯이, 서예를 배울 때 그랬듯이 이번에도 글쓰기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재능이 없어서, 이번에도 안 될 것 같아.’



글쓰기는 사실 아주 작은 문제에 불과했습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휴학 기간 동안 뚜렷한 성과를 낸 일이 없었고 나이는 어느덧 삼십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성적도 엉망이고 가진 스펙이나 자격증도 없다 보니, 취업은 꿈도 꾸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의 자기소개서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지원자를 채용하지 마시오.”


문득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멈출 줄 몰랐습니다. 반복적으로 생각을 곱씹다 보니 생각은 조금씩 견고해지더니 결국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생각은 또다시 생각을 먹고 자라더니 망상과 번뇌가 되어버려 손 쓸 수없 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병은 몸의 병으로 번져갔습니다. 섭식 장애가 생겨 밥을 먹고 소화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눈을 뜨면 온몸을 바위가 누르고 있는 것 같아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온종일 머리는 희뿌연 안개가 낀 듯이 몽롱했습니다. 차를 타면 자꾸만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치솟아났습니다.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불안함에 잠을 이룰수 없어 술을 마십니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이 계속 반복됩니다.


방금 들은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아 조기 치매가 아닐까 우려되어 뇌신경외과를 찾아가 MRI까지 찍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매일 이렇게 살면 안된다고 되뇌이면서 동시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양립할 수 없는 마음이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답은 결코 찾을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