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햇빛이 땅을 데우면 그 위의 공기는 뜨거워지며 부피가 팽창하고 밀도가 낮아져 위로 상승합니다. 반대로 기온이 낮은 곳의 공기는 밀도가 높아지며 아래로 내려가죠.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 익숙한 이런 대류 현상이 바로 바람이 부는 근본 원리입니다.
바다에서도 태양은 쉼 없이 작용합니다. 태양이 바다를 데우면,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가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바람은 그 구름을 실어 나릅니다. 이렇게 이동하던 구름이 산에 부딪히면 비가 되어 나무 위로 떨어집니다. 나무는 물과 햇빛, 그리고 토양의 영양분을 받아 다시 자라납니다. 바람은 바람이 아닌 것들로 인해 생겨나고, 나무는 나무가 아닌 것들에 의해 태어납니다.
나무는 바람에 의해 흔들리고, 바람은 나무를 통해 드러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기대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이러한 유기적 관계를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기에, 바람이 불고 나무가 움직이는 일에 대해 굳이 질문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설명만으로 나무와 바람이 움직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왜 나무도, 바람도 아니라 오직 ‘마음’만이 움직인다고 말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 해답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은 화자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저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아무 의미도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꽃이면서도 꽃이 아니었고,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화자가 그 대상을 인식해 ‘꽃’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둘 사이에는 특별한 인연이 생겨납니다. 이름표를 붙여준 뒤 화자는 꽃의 모양, 빛깔, 향기와 같은 속성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고, 그 특성들을 바탕으로 ‘아름다움’, ‘사랑’, ‘가치’와 같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렇게 꽃은 비로소 실체를 지닌 존재로 탄생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는 것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이름 붙이고 해석 것들입니다.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분다고 생각한 것이고, 나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움직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나무도 바람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사라지면 세상도 나도 사라집니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