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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j Oct 07. 2019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영재는 만들어질 수 있다

슬로우 스타터였던 작은 아들 이야기


이 글이 속해있던 브런치 북  <AI 시대, 우리 아이 교육은?>을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https://wikibook.co.kr/aiedu/



지금도 작은 아들을 볼 때마다 놀라움과 감격스러운 감정이 앞섭니다. 항상 자라면서 자신보다 앞서 나아가는 자신의 형을 보며 느껴야 했던 열등감과 박탈감에서 이제는 벗어나 지금은 일취월장하였지만, 예전에 더 어렸을 때는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힘들어할 때마다 나는 작은 아들에게 “너는 대기만성형이라 나중에 형보다 더 잘할 거니 걱정하지 말고 성실히 차근차근해 나가면 돼”라고 말해 주곤 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종종 같이 대화하다가 보면 작은 아이의 가슴속에 이 말이 담겨 있음을 확인하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고는 합니다.


큰 대(大), 그릇 기(器), 늦을 만(晩), 이룰 성(成),
대기만성: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큰 인물이 될 사람은 늦게 성공함을 비유하는 말.


지난 글들에서도 종종 작은 아들이 언급되었었지만, 주로 큰 아들이 저희의 이야기의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슬로우 스타터였던 작은 아들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여러분께 공유해드리려고 합니다.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한 태권도를 6학년 때까지도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어린 아들은 용인대나 경희대 태권도학과를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러면 네가 체육 장학생이 되어 학비는 알아서 해결하며 다니면 되겠다!!”라고 가볍게 농담으로 받아쳤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작은 아들은 엄마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깊이 알 수 없는 눈치로 그저 해맑게 웃음 짓는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중간/기말고사를 치르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항상 저는 작은 아들과 거의 시험 한 달 전부터 준비를 시키고는 했습니다. 그래도 곧장 어느 정도 따라왔고 집에서 시험 예상 문제를 풀면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곧 잘하던 것을 꼭 시험만 치르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여러 번 반복되었습니다. 그때마다 엄마가 실망한 낯빛을 보이면 작은 아들은 “분명히 잘했는데 왜 이렇지!!” 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말았습니다. 당시 큰 아들이 학교 공부와 교외 활동인 컴퓨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때라, 우리 식구들은 작은 아이의 소위 공부머리가 그때까지 조금은 더디게 성장하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하고는 했습니다. 이후에도 작은 아이는 평범한 초등 시절을 보냈고, 어떠한 공부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경우도 없이 성장하였습니다.


중요한 하나의 계기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의 어느 날 학교에서 헐레벌떡 집으로 들어온 아이는 얼마 전 창의적 문제해결력 검사라는 것을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실시했는데 본인이 전교에서 3등을 하여서 의정부 과학고등학교에 가서 영재성 판별 시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특별한 시험이 실시되었는지도 몰랐던 상황이라서 꽤나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만약에 통과하면 그 과학고등학교에서 시행하는 영재 수업을 듣게 되는 좋은 기회라고 하니, 저는 나름의 준비를 시켜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학교 대표로 시험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작은 아들 본인 역시 신기한지,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준비를 같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평소에는 공부에 관심이 그다지 없던 아이의 마음속에는 잘 해내고 싶은 열망이 채워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전교 회장도 하며 공부를 원래 잘하던 친구와 함께 이런 시험을 치른다는 것 역시 본인에게 큰 자부심으로 다가갔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결과가 어떻든 이번 시험이 작은 아들에게 어쩌면 큰 인생의 전환점이 아닐까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로서 이 계기를 잘 활용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지요.


아쉽지만 영재성 판별 시험의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후로 작은 아들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자기도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본인 스스로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6학년 겨울방학기간부터 중학교 입학 이후의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큰 아들의 경우로 이미 경험한지라 지금이 강하게 공부에 매진시켜야 할 때 임을 알기에 앞으로 어떻게 지원을 해줄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우선은 뒤쳐져 있는 수학 과목에서의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대형 학원보다는 소규모이지만 아이에게 좀 더 집중해줄 수 있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계신 학원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학원 선생님의 열정에 발맞추어 열심이었고, 당시 같이 다니던 아이들도 성실한 아이들이 많아 보고 배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작은 아들에게 생애 처음으로 공부에 열과 성을 다하는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정말 머리에 열이 나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큰 이상은 없다는 소견이 나와, 가족들은 "안 쓰던 두뇌를 갑자기 너무 쓰니깐 과부하가 된 모양이다"하고 웃었습니다. 워낙 학원에 뛰어난 친구들이 많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그렇게 성실하게 정성스럽게 방학을 보내니 작은 아이는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 어느 정도의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영재과학고등학교 진학 준비


작은 아들은 중학교로 진학하고 형의 영향인지 자연스럽게 특목고 준비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일단 수학을 꾸준히 공부해왔기에 중학교 1, 2학년 때 수학올림피아드(KMO)에 응시했습니다. 전국 중학생들이 모여 4시간 동안 수학 문제와 사투를 벌이는 긴장감이 한편에 마련된 학부모 대기실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결과는 아쉽게 입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응시한 시험에서 선전한 것이라 그동안 열심히 한 수학 공부가 헛되게 느껴지기보다는 이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 아이의 사기가 꽤 높았습니다.


이후 작은 아들은 영재과학고 진학에 필요한 과학 과목인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천문학을 공부했는데 그중에 화학이 재미있다고 더 열심이었습니다. 아이가 화학을 좋아하게 된 것은 중학교 2~3학년 담임 선생님이 과학 담당이었고 학원에서 만난 화학 선생님과의 케미스트리가 잘 이루어진 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화학 올림피아드에도 도전했습니다. 당시 시험을 보기 전에 작은 아들이 얘기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연금술사의 내용처럼 내가 바라는 온전한 마음이 이 우주를 거슬려 그 기운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며 성실히 공부하였고, 엄마가 해 주시는 맛있는 식사는 내 두뇌에 좋은 영양분이 되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가 준비해 온 것들이 잘 발휘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마음속으로 기도도 많이 했어요.”


그 간절함은 결국 화학올림피아드 은상 수상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영재과학고 입시는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전국에 수학과 과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지 놀라울 지경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전국에 4곳밖에 없었기에 그만큼 경쟁이 아주 심했습니다. 아이는 요구되는 사항이 많다 보니 중간중간 좌절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나, 어찌 되었든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이 되어 대구영재과학고등학교 1~3차 전형까지 모두 통과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남은 것은 마지막 전형, 1박 2일 동안 치러지는 시험을 참가하기 위해 온 가족이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작은 아들이 시험을 치르는 동안, 저는 영험하다는 대구 팔공산 갓바위의 기나긴 돌계단을 올라가 부처상 앞에 양초를 피우고 기도했습니다. 아이가 그동안 열심히 꾸준히 노력하여 공부한 것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간절히 빌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습니다.  마지막은 2대 1 정도의 경쟁률이라 더 아쉬운 상황이었습니다. 저 역시 제가 떨어진 것처럼 실망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하여 행여 아이가 너무 낙담하여 좌절을 하거나 우울한 모습으로 지내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만큼 몇 년 동안 매우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작은 아들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긍정적이고 강한 아이였습니다. 의젓하게도 아이는 “입학시험 실패는 나에게 또 다른 길이 있어서 그런 결과가 생긴 것 일거예요!!”라고 말하더군요. 마치 작은 아이가 나중에 본인이 겪게 될 특별한 다른 길을 알고 얘기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싶을 정도로 이후 작은 아들은 정~말로 남다른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이때 영재과학고를 탈락한 게 운명 같은 일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이 매거진은 브런치 작가 pj의 가족들이 함께 발행하는 가족 프로젝트입니다. 화자는 pj의 어머니로, 가족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풀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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