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기 위해서 비워야 할 때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비대위원장의 행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박지현 비대위원장의 행동을 은근히 반기는 분위기이며 언론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내부 총질'이란 키워드를 앞세워 여러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도 좋지 않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 이야기로 시끄러워지는 페이스북 뉴스피드에는 박지현 비대위원장을 비판하는 민주당계 인사들이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대표적으로 황교익씨는 몇 달 안된 정치 신인이 개혁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당을 말아먹는다며 지역에서 노력하는 분들을 위해 표를 갉아먹는 짓들을 그만두라고 한다.
박지현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지지 선언을 하며 정치권에 합류하게 된 시민단체 '추적단불꽃'의 활동가이자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원내 당대표이다. 활동가 시절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최초로 제보하며 공론화시킨 인물로 기존의 청년 정치인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며 주목받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박지현 비대위원장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분명 있겠지만 그런 목소리는 언론을 통해서도, SNS에서도 보기 어렵다. 언론 입장에서 보면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기사로 만들기에 재미없을 것이고,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나는 그가 욕을 먹는 이유가 어린 여성, 정치 신인이라는 이유라기보다 기존의 질서를 따르지 않아서라고 본다. 박지현이 이전의 청년 정치인과 다른 점은 기성 정치인들의 우산 속에 들어가 그들의 목소리만 대변하다가 결국 소모되어버리는 것과 달리 당의 변화를 위한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하지만 변화는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아무도 변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조직이든 변화를 시도하는 인물은 100프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걸 견디고 지속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개인으로서 큰 부담이지만 결국 그런 행위가 조직의 다음 행보를 만들어 낸다.
7년 전쯤 그 당시 내가 속한 마을공동체의 조직 개편 과정을 맡아서 진행한 적이 있다. 조직 개편을 해야 했던 이유는 단체가 설립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마을공동체의 조직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마을 구성원들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처음부터 잘못 설정된 조직 구조, 가치와 지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현실 콘텐츠에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공론화하지 못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의 일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런 분들 대부분은 조직을 처음 만들 때 많은 노력을 했던 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가 필요했기에 바꾸자고 했고 조직의 10년의 기록을 돌아보면서 정관부터 다시 썼다. 다 합쳐봤자 200명 정도 규모의 공동체였지만 정관, 조직도, 일의 내용과 방식까지 바꾸는데 3년 걸렸다. 3년이나 걸린 이유는 반대의 목소리가 많아서 설득의 과정이 길어졌기 때문인데 그 당시에는 매우 답답했지만 지나고 보니 결국 필요했던 일이었다.
이번에 박지현 비대위원장에게 쏟아지는 여러 가지 비판의 목소리를 보며 공동체 개편했던 일이 떠올랐던 이유는 그 당시 내가 들었던 비판의 목소리들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200명 규모의 조직에서도 그 정도였는데 민주당은 당원이 400만 명이 넘는 거대 정당이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내가 먹은 욕에 비해 2만 배는 더 먹을 것이고 비판의 강도도 훨씬 셀 것이다.
내가 그를 응원하는 이유는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과정과 결과가 지방 선거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기에 당연히 그가 가려는 길은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다.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배신자, 내부 총질이라는 키워드는 그를 끝까지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민주당이 선거에서 지더라도 내부 이슈가 된 문제들에 대해서 확실하게 점검하고 챙길 것은 챙기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지금 지더라도 오랫동안 지지 않을 수 있다. 혁신을 위해서, 새로운 기운으로 조직을 채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버리는 것이다.
P.S
박지현 비대위원장을 비판하는 분들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변화의 과정은 당연히 갈등을 수반한다. 변화를 시도하는 인물이든 기존의 가치를 고수하든 인물이든 결국 조직의 건강한 성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과정이기에 비판을 하더라도 서로의 행위를 수용하면서 선을 넘는 일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