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새해에 빚이 생겼다

2024년 1월 새해, 빚으로 신년을 맞이한 한 청년의 회상.

by 도묵

1년 전인 2024년 1월, 새해를 5,000 만원의 빚으로 시작했다.

이 글은 2024년 1-6월 중 짬짬이 시간을 내어 쓴 글을 수정한 것으로, 생동감을 위해 현재 진행형인 어투로 작성되었습니다.

인생 난이도 급상승, 그 시작


2023년 말, 나는 운이 좋아 투자한 암호화폐가 50배 상승하는 경험을 했고 여유 자금이 있어 이를 활용해 내 자산을 더 불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선물 마진 거래에 대해 잘 몰랐지만, 초심자의 행운이었는지 선물 거래로 내 자산의 20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한 달 안에 버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암호화폐 투자로 100만 원에서 5000만 원을 6개월 만에 만들 수 있었고, 선물 마진 거래로 300만 원에서 1억 원을 1달 안에 만들 수 있었다.


시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절한 시기에 매도했다면 원금 400만 원으로 약 8천만 원 이상의 수익을 굉장히 단기간 안에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칭찬의 독, 자만의 씨앗을 심다

나는 선물 마진 거래를 할 때, 시드가 별로 없을 때는 고마진을 사용했고 시드가 점점 커질 때는 저마진으로 수익을 냈었다. 한 날, 아는 형님과의 술자리를 가졌을 때였는데, 그 형님이 자신의 지인 얘기를 들려주면서 그 친구들은 몇 백억 단위로 얼마 전 엑싯(exit)을 했는데, 진짜 큰돈 만지는 친구들은 시드 금액이 커졌을 때도 배율을 줄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선 나보고 트레이딩을 잘하는 것 같다며 생각하는 방식을 들어보니 나중에 돈 많이 벌 것 같다고 칭찬을 했다.


나는 칭찬이 독이 된다는 것을 체감한 해본 적이 없었다. 실제 칭찬을 들었더래도 내가 무엇을 중도에 그만둔다던가 성장의 욕구가 더뎌진다던가 하는 것을 경험해 본 것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물론, 내가 체감을 잘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자만으로 삭은 줄을 잡기를 선택했다.


그 형님과의 술자리 이후 나는 수익을 내왔던 내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그 형님의 말대로 방식의 변경을 꾀하는 선택을 했다. 여태껏 수익을 냈던 내 방식으로 계속 수익이 발생했으니 레버리지를 높이더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전혀 달랐다.


고 시드, 고마진은 내가 여태껏 수익을 냈던 방식을 "조금"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가장 고수했던 철칙인 "심리적인 안전이 느껴지는 범위에서 매수하라."를 크게 벗어나는 범주의 변화였다.


고시드, 고마진으로 평소의 포지션을 오픈/클로즈할 때, 심리적인 안전망의 경계가 크게 줄어든 것을, 손실을 지속적으로 보고 있는 와중에 느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고시드, 저마진으로 승부를 보던 때와는 달리 조급함과 불안감이 급증했고, 흔히 기도매매라고 불리는 매매를 하는 지경에까지 갔다. 그리고 마진 거래와는 별개로 수익을 내고 있던 암호화폐 투자 수익에까지 안전망을 넓혀 생각하는 지경이 되자, 걷잡을 수 없이 체감할 수 없는 안전망 경계가 형성이 되었다.


"이번 매매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좀 더 레버리지를 높여 다시 회복하면 된다."
"이번 매매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암호화폐 수익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


이런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었다. 안전망의 경계가 완전히 흐트러져 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밤낮이 바뀌고 삶의 패턴이 점점 피폐해져만 갔다.


선순환의 고리에서 가속화시키는 경험은 해보았지만,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르게 버리고 탈출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던 나는, 매매로 번 것을 거의 다 잃게 되었고 원금만이 남았다. 때는 23년 12월이었다.


나는 내가 벌 수 있었던 금액을 뇌리에서 지우지 못한 채, 빚을 써서 현물로 보유하고 있던 암호화폐(4000만 원가량)를 마진 거래에 사용해버리고 말았다.


이미 뇌는 도박에 절여져 있던지도 모른다. 그때는 굉장히 긍정적인 미래만 보이는 듯했다.

"이 금액으로 레버리지 조금만 당겨서 사용하면, 금방 다시 재기할 수 있어."

빚내서 투자했던 빚투 자산에, 레버리지 10배, 20배를 사용해 거래를 했다. 총 레버리지 규모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다는 것을 생각지 못한 채.


해당 빚투 자산은 내가 무리한 투자 방법 변경 이전에 설정했던, 심리적 안정권에 충분히 들어왔던 자산으로 구성했었던 것이었다. 나는 자만의 씨앗을 내 손으로 싹 틔우기 시작했다.


인생 난이도 최상으로 상승 시작


2024년 신년이 되고 약 10일 뒤, 내 전재산 탕진 + 5000만 원이라는 빚이 생겼다. 나는 2시간 남짓 자고, 자기 전까지 손절하지 못했던 $2에 가까워진 채로 청산된 내 자산을 봤다.


여자친구한테 그랬다. 나 이제 빚이 거의 4천만 원이나 있어.


그때 내 여자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너는 너한테 돈이 전부야? 돈이 네 자존심이고 자존감이었나 보네. 돈이 없어졌을 때 이렇게 한없이 작아지는 걸 보면."
"그래도 성공한 사람들한테도 시련이 있었잖아. 네가 그런 고통스러운 시련을 안 겪고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너는 그런 길을 안 가고도 부자가 되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그건 네가 여태껏 큰 자만을 한 거고, 그걸 이제 깨달으면 앞으로 그 고통을 감내하고 나아가면 되는 거지."

나는 머리가 하얘졌었다.


청산 당일은 주말이었는데, 주변에 비슷한 힘듦을 겪은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거의 3억을 26살 때 잃었는데, 지금은 3년 만에 빚을 거의 다 갚고 자영업 사장직에 오른 친구였다.


그 친구는 일단 차분하게 계획부터 세우고, 빚 다 갚을 때까지는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네 여자친구를 봐서라도 힘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전화를 끊고, 엑셀을 켜서 내 총 자산, 내가 갚아야 할 빚들을 기간별로 정리했다.


근데 총 빚 + 기타 손해 비용을 계산해 보니 내가 빚을 다 갚고 손실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회초년생인 나로서는 큰 좌절감이 느껴지는 기간이었고, 이걸 어떻게 서든 단축하고 싶은 마음에 당장 투잡을 할 수 있는 일자리부터 알아봤다.


2024년 1월 중순, 나는 세차장에 일자리를 구했고 본업 퇴근 후 매일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세차장으로 출근했다. 집에 돌아오면 밤 12시 반 남짓, 씻고 배고픔을 달래고 자면 7시간 뒤 출근이었다.


평일에는 출퇴근 시간까지 포함하면 15시간, 주말에는 8시간씩 매일같이 반복했다. 그렇게 일을 1년 가까이해야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이 되었다.


세차장에서 일하던 어느 날, 나에게 조언을 해줬던 친구가 뜬금없이 연락 와 강원도에서 나를 보러 온다고 했다. 그날 차를 끌고 온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3억에 인생의 지혜를 깨우쳤지만, 넌 5000만 원에 깨우칠 수 있다. 나는 3억에 지금의 나를 샀지만, 너는 5000만 원에 더 성장하고 발전한 너를 사는 거다."

나는 그 말에 머리가 띵했고, "맞다"를 중얼거렸다.


다른 친구는 이런 말도 해줬다.

"야 너는 그 돈 잃어도 네 주변에 좋은 친구, 좋은 파트너가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좋은 것도 있네."

그 말도 굉장히 나에게 힘이 되었다. 설익은 위로가 아닌, 인생을 관통하는,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많이 반성하게 되지만, 또다시 감사하게 된다.


또 다른 자만의 씨앗

세차장에서 근무를 한 지 1달 반, 매일 같이 15시간 이상 일하다 보니 몸도 상해갔다. 군대에서 다쳤던 어깨는 세차를 하며 매번 찢어지는 고통을 유발했고, 피로는 극에 달해 본업에 지장이 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그래도 운동은 일주일에 두 번씩은 꼭 하려고 했다.


세차를 하면서도 깨달은 게 있는데, 나와는 다른 환경,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얼마나 복된 사람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많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이건 추후 글로 다루겠다.)

또, 이런 일을 하면서도 내가 세상에 무엇을 기여하고 있는지도 여태껏 생각해 본 적 없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옛날에 유명했던 인류를 달에 보내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다고 말한 NASA의 청소부 이야기처럼, 나도 세차를 함으로써 차량에서 발생되는 먼지를 줄이며 세상의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일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일하다, 문득 내가 투자해 놓은 암호화폐 자산을 보니 이게 내 빚을 다 탕감할 수 있을 정도로 수익이 나 있었다.


나에게 조언을 해줬던 친구는 자신은 모든 희망의 씨앗을 다 던져버리고 다시 시작하니, 인생을 바꿀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믿음과 내가 투자한 자산에 대한 리서치를 근거로 한 과거의 의사 결정이 있었기에, 판매를 유예한 지 한 달이 지났음이었다.


5천만 원 이상에 그 자산을 매도할 수 있었지만, 나는 안 하고 다른 투잡 거리를 찾아 2번째 직장을 이동했다. 빚을 갚을 수 있을 정도의 자산이 있으니 투잡을 안 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고, 그래서 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일식집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직했다.


하지만, 이 또한 금방 하기 싫어졌다. 이게 또 내가 발견한 나라는 인간의 본성이었는데, 간절할 때는 누구보다도 생존본능이 활발해지지만 또 그렇지 않을 때는 긴장의 끈이 느슨해진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주의해야 할 포인트로 삼을 것이지만, 정말 나도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통이 트이는 것도 잠시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본업을 하면서 원격으로 근무할 수 있는 다른 투잡을 찾았다. 이전에 다녔던 회사의 대표분이 나를 기억해 주시고 투잡 거리를 주셨다.


근데 그때 당시의 자산은 빚이 아직 2000만 원이나 있었다. 다 탕감할 수 있었던 자산이 또 급격한 하락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투잡을 하면서 나는 버는 돈 족족 암호화폐에 투자했다. 투기도 했다. 밈코인에 넣고, 난생처음 보는 코인에도 넣고 그러다 거의 1000만 원은 잃은 것 같다. 도중에 해킹도 당해서 400만 원가량을 잃었다.


빚은 그대로, 아니 더 불어났다.


현재(2024년 6월 초)


곧 급여를 더 많이 주는 곳으로 이직한다. 빚은 더 불어났지만, 투자는 계속할 계획이다. 전처럼 이상한 밈코인 이런 데다가 투기는 안 할 생각이다. 선물 마진 거래 또한 유혹은 아직까지 생겨나지만 그것 또한 안 할 것이다.


내가 본업을 하면서 암호화폐에 대한 리서치도 하는데, 괜찮다고 생각하는 암호화폐에는 투자를 안 하고 빠르게 수익을 크게 낼 수 있는 곳에 다시 집중했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실망이지만, 언제까지고 실망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급여를 받으면 일정 금액은 빚을 갚는 데에 쓸 것이다. 상여금, 퇴직금 또한 일정 금액은 빚을 갚는 데에 쓸 것이다. 투자를 아예 안 한다면 빚 탕감의 시기가 더 뒤로 미뤄질 것 같아 내린 결정이다.


아마 나에게 조언을 해준 그 친구는 내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도 그렇게 말했고.. 그런데 나는 그래도 아직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이제는 방향을 제대로 잡은 희망이고, 앞으로 빚에 짓눌려 살지라도 희망을 붙잡으며 빚 갚고 일정 부분 투자하면서 정신 차리고 살 예정이다.


오늘 명상도 했다. 내일도 할 거고, 다음 날도 할 거다. 운동도 할 거고, 더 열심히 공부도 할 거다.


여자친구한테도 떳떳한 남자가 될 거고, 부모님한테 효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동생한테 베풀 수 있는 인재가 될 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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