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의 번화가를 뽑자면 바로 여기다. 텐진 다이묘 거리. 후쿠오카 여행객들이 텐진을 가는 이유는 대부분 쇼핑이다. 텐진역 근처에는 여러 백화점들과 스트릿 브랜드샵이 즐비한 다이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압구정 로데오, 가로수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평소 사야 할 물건만 딱 사고 빠르게 쇼핑을 끝내는 나, 오래 걷는 게 싫어서 쇼핑을 즐겨하지 않는 나지만 텐진에 왔으니 쇼핑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는 '후쿠오카 사고오카 훑고오카' 편이다.
후덥지근한 열기를 손부채로 날리며 텐진역에 도착했다. 텐진역 근처에는 파르코 백화점, 이와타야 백화점, 다이마루 백화점이 있다. 먼저 이와타야 백화점부터 가기로 했다. 그 이유는 꼼데가르송에 가기 위해서였다. 꼼데가르송 가디건과 티셔츠를 사볼까 하고 방문했는데 웬걸, 벌써 방문 예약이 끝났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는데 말이다. 우리가 알아보지 않고 즉흥적으로 여행을 온 것이 티가 났다. 이와타야 백화점의 꼼데가르송은 워낙 찾는 사람들이 많고, 웨이팅이 필수라고 한다. 어쩔 수 없지 뭐. 필요한 건 한국에서 사도 된다. 안 되는 것은 포기가 빠르고, 잘 잊어버리는 우리는 바로 발걸음을 돌려 다른 브랜드로 향했다.
파르코 백화점은 고급스러운 백화점이기보다는 다양한 샵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굿즈나 소품샵들이 많아서 남녀노소 가보기 좋은 곳이었다. 나는 짱구에 눈이 팔리고 남편은 축구 유니폼에 꽂혀서 나오기 힘들었다. 남편이 가보고 싶어 했던 빅카메라도 들리고, 텐진 지하가를 쭉 둘러보기까지 1~2시간은 훌쩍 흐른 것 같았다. 우리가 갔던 여름에는 엔저 시기였고 택스 리펀 덕에 조금 저렴하게 살 수 있었던 기회이긴 했지만 우리의 후쿠오카 여행 컨셉은 부유한 쇼핑이 아니다. 생각해 온 것만 사고, 힐링 겸 맛집 투어가 목적이었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까 이곳저곳 다 둘러봤다. 나와 반대로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고 오래 둘러보는 편인 남편에는 즐거운 쇼핑이었기를.
백화점들을 다 둘러보고 다이묘 거리로 향했다. 여러 브랜드 샵들이 줄지어 있다. 맨투맨이나 후드티를 사볼까 하고 즉흥적으로 들어간 노스페이스. 일본에만 있는 퍼플라벨을 공략하기로 했다. 남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도톰한 맨투맨을 샀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나도 똑같은 걸로 하나 사고 말이다. 겨울 쿨톤인 나와 여름 쿨톤인 남편에게 그레이와 퍼플의 조화는 찰떡이었다.
다른 샵도 더 가볼까 하던 찰나 쇼핑 체력이 약한 나에게 한계가 왔다. 별로 산 것도 없는데 훑는 것만으로도 체력 소모가 되다니. 당장 커피라도 수혈받아야 한다. 스타벅스 초록색 양산을 착 펼치고 구글맵에 저장해 둔 카페로 갔다.
입구부터 일본 느낌이 물씬 나는 카페 '유우'. 토토로가 생각나기도 하는 외관이다.
카페 유우는 라떼 아트랑 도자기 공방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갔을 때 한국인은 없었지만 좌석이 모두 찼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와글와글 북적북적 수다가 가득했다. 땀을 뻘뻘 흘리던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갸또 초콜릿을 시켰다. 라떼보다는 아메리카노만이 텁텁한 입 속을 잠재워줄 것 같았다.
아기자기하게 나온 메뉴. 커피를 다 마시니 귀여운 고양이 모습이 나왔다. 귀여운 도자기 커피잔에 달달한 디저트까지 입에 넣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나던 카페 유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사진 정리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후쿠오카 사고오카 훑고오카 달성! 평소 내가 못하던 것을 하게 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 여행이다. 오래 걷는 것이 싫어서 최단거리, 최소 시간을 투자하던 쇼핑을 여유롭게 하게 되었고, 매우 더웠지만 비가 오지 않아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늘 여행은 나를 새롭게 만든다. 새로워지고 싶어서, 새로운 것에 동화되고 싶어서 여행을 자주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낯섦에 대한 설렘이 좋다. 나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열심히 여행하고 싶다. 우리가 가진 역마살에 고마움을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