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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수다

by 조이풀 Apr 01. 2025


"아, 날씨 너무 좋다. 봄이다 봄."

"벚꽃 폈다. 오늘 반차 내자."

"이대로 못 있어. 놀러 가자."


추운 겨울이 지나고 휘파람이 절로 나오는 봄이 올 때면 사람들은 저마다 설렘을 느낀다. 따뜻하고 기분 좋은 공기가 코 끝에 닿고, 예쁜 벚꽃이 피고, 꽃이 만개한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일 년 동안 꺼내 먹고 살 추억을 가득 만든다. 연분홍색 볼터치에 복숭아향을 한 껏 뿌린 봄의 꼬드김에 넘어가 모든 것을 멈추고 놀고만 싶어지는 때다. 사람들이 매번 알면서도 속게 되는 계절이 봄이다.


생각해 보면 봄은 나에게 그리 달디 단 계절은 아니었다. 세상 위 모든 생명력이 돋아나 꽃을 피우는 이 계절에 유독 많은 일들을 겪었다. 외로워지기도 했고, 죽을 고비도 넘겼으며, 도전하는 것들이 어그러지곤 했다. 봄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일들은 일어날 때가 되어서 일어난 것뿐일 텐데, 자꾸 봄을 원망하게 되더라.


몸이 잊어도 머리가 기억하다 보니 봄이 될 때마다 불안함이 찾아오곤 한다. 무엇을 할 때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소심해졌다. 어리석게도 여름이 되어서야 봄에 놓친 것들이 아쉬워진다. '뭐가 또 안되려나' 지레짐작하는 버릇이 나오는 이 계절이 올해도 역시나 힘들다. 내 탓이 아닌데, 봄을 마주하기 편하지 않은 것은 내 탓이 아닌데 말이다.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잠시 스치는 바람에도 속절없이 흔들리니 잡을 길이 없다.


엊그제 봄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은 봄의 생명력 덕분이었고, 외로워졌던 것은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도전하는 것들이 무너졌던 것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힘듦의 이면에 존재하던 또 하나의 뜻을 봄눈이 내리는 날 알게 되었다.


따뜻한 봄에도 차가운 눈이 내릴 수 있고, 분홍빛 봄에도 회색의 눈구름이 낄 수 있다.

봄이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그저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바람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결국에는 다 지나가지 않는가.


봄은 봄일 뿐이다. 분홍빛 발그스레한 볼, 풀빛 새싹을 문 입술, 꽃 같이 여리여리한 눈웃음을 가진 봄에게 너를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혼자 되뇌다 잠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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