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생각할 때 별난 학생이었다.
무엇보다 말이 많고. 말이 많았으며 말이 많았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면서 궁금한 것도 아는 것도 많아서 나는 내가 말을 다 해야 했다. 지금 1학년때 선생님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두가지다. 첫번째는 성함. 박화자(김화자였나?) 선생님이셨고 두번째는 나를 김박사라고 불러주셨다. 항상 궁금한 것도 아는 것도 많았던 나를 그닥 밀치시지는 않았던 듯 하다.
2학년의 교실은 지하였다. 비가오면 그릇을 깔아두고 수업을 받고는 했다.
3학년때는 처음으로 남자선생님이 담임이셨다. 양현종 선생님이셨나? 그냥 기억은 그게 다다.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한상록 선생님이셨다. 이분에 대해 정말 많이 기억나는 것은 매일 일기를 썼다는 것이다. 매일 일기를 쓰고 일기를 검사받고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5학년때는 여자 담임선생님이셨다. 그런데 나는 이 분을 정말 많이 의심했나보다. 사실 그때의 나는 내 것을 남에게 넘겨주는 것을 상당히 싫어했었는데 선생님이 아마도 숙제 같은 걸 검사하려고 가져가셨는데 나는 일기에 선생님이 안돌려주면 어쩌지? 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당연히 선생님의 답장은 어떻게 선생님을 의심할 수 있냐는 내용이셨다.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5학년 2학기에는 전학을 갔다. 전학을 간 학교에는 운동회가 이미 끝났고 더욱 신기한 것은 내가 전학가는 그 반에 담임선생님도 전근을 오셨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복직하시는 선생님이 아니셨을까 싶기도 하다.)
담임선생님이 먼저 교실에 들어가시고 조금 있다 내 소개를 하러 들어갔는데 전부 울고 있었다. 나는 눈물의 전입식을 마쳤다.
6학년이 되었다.
6학년때 선생님은 박제우 선생님이시다. 이 선생님께서는 평교사로 퇴임을 하신 분이다.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분인데 사실 내가 교실에서 활용하는 것은 이분의 방식을 변형한 것들이 많다. 학생들과 하는 게임도, 일기를 통한 지도도 이 선생님의 카피캣이 아닌 것이 없었다.
하지만 1년 내내 정말 나는 힘들었다. 칭찬받는 것도 좋아하는데 칭찬도 못받고 무엇보다 매일 혼났다. 크게 혼난 것은 아니지만 매일 매일 선생님께 들었던 말이 있다.
"욱하지 마라"
그 말을 듣고 또 욱하고 그러면 또 그 말을 듣고 엄청난 반복이었다. 그런데 1년동안 그 말을 들으면서 내 성격에 대해 시나브로 알게 되었던 듯 하다. 사실 바로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중학교를 거치고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나는 둥글둥글 해져 갔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를 가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친구가 이 선생님을 때가 되면 뵈러 가자고 자꾸 이야기했다. 나는 그 분이 그닥 좋지는 않았지만 계속 가게 되었고 교대를 입학하고 실습을 가면서부터는 내가 먼저 찾아가는 쪽으로 바뀌었다.
26인가 27살일 때 친구와 선생님 댁을 방문했는데 우연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 선생님이 얼마 뒤면 제자들 때문에 칠순을 부페에서 한다. 너네도 올 수 있으면 와라. 원래 생일 같은 건 말 안하는데 어쩌다 들켜버려서 이녀석들이 잔치를 한다네"
그래서 초등학교 동창과 그 자리를 찾아갔다. 그 자리에는 수많은 어르신들이 있었다. 선생님의 첫제자부터 마지막 제자는 아니지만 우리까지 60대부터 20대까지 빠짐없이 있었다. 또한 구성원도 다양했다. 사업가, 현재 SBS 아나운서, 일반 직장인들 등등.
그 자리에서 교사로서 내가 받은 충격과 동기부여가 생겼다. 사실 학교를 다닐 때의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어떠한 이해 관계가 얽혀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는 그런게 보이지 않았다. 정말 선생님이 감사하고 선생님께 무언가를 해드리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있지 않을까?(물론 눈치때문에 오기도 했겠지만)
제자로서는 선생님이 참 존경스러웠지만 교사로서는 엄청 부러운 자리였다.
집에 오고나서 그 기분이 가시지 않아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다. 두군데를 보냈는데 한군데서 가죽지갑과 벨트를 보내주어서 선생님을 팔아서 쓴 글이니 선생님께 선물로 드린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이후로는 내 개인적인 교사로서의 목표기도 하다. 칠순잔치를 하는게 아니라 모든 제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걸 말하는 거다...
중학교를 들어갔다.
중1때 담임선생님은 이강구 선생님이신데 도덕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잘 모으셨다.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 공부를 하고 있었고 같이 놀았고 같이 웃었다. 1년내내 큰 다툼없이 아이들은 담임선생님과도 잘지내고 건의사항도 하고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으며 나는 1년동안 성적이 쭉쭉 올랐다.
중2가 되었다. 거친 인생과 질풍노도의 시기. 담임선생님 성함은 김상규 선생님.
(이럴려고 폼을 잡는 중이었으나..)
담임선생님이 특이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재미있으신 분일 수도 있겠으나 그당시의 느낌으로는 특이하셨다. 매일매일 무언가 생각하게 하셨다. (그때는 그 생각이 참 싫었지만.) 제일 큰 기억으로는 전교8등을 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칭찬을 한마디도 안하셨고 오히려 성적이 안좋은 과목을 지적하시며 혼내셨다.(그 이후로 공부는 좀 등한시 하게 되었지만..)
어느날 CA를 하는데 볼링부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내가 아무리 손을 들어도 넣어주지 않는다. 계쏙해서 다른 부서에도 손을 드니 한마디를 하셨다.
"김진영, 손내려!! 넌 문학부야."
그렇게 나는 문학부가 되었다. 문학부가 되어서 앉아서 책만 읽어야 하나 하는 암울함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흡사 위의 그림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앉아서 문학을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때로는 시도 만들고 때로는 등산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많이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그 선생님은 생각하는 것을 많이 키워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내가 많이 부족해 보였을까?)
중3이 되면서 우리학교에서 제일 무서웠던 분 중 한분이 담임선생님이 되셨다. 그리고는 우리반은 점점 한명씩 사람이 늘어나고 바뀌어 갔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긴 한데 우리반에 있던 학생 한명(기억에는 도움반)을 다른 반으로 보내고 우리학교에서 제일 문제를 일으키던 친구 한명을 데려오셨다. 또한 전학생들이라고 오는데 보면 전학생이 아니라 복학생이었다. 점점 우리반은 거친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은 정말 불편했으나 이윽고 평화는 찾아왔다. 교실 내에서 다툼이 생기면 그 녀석들 뿐 아니라 반 전체가 줄초상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혹독하게 혼났다. 그런데 또 의외의 분위기들이 있었다. 서로 형제처럼 친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를 인정하게 되는 분위기랄까?
나중에 선생님께 여쭈어 봤다.
"왜 우리반에 그런 학생들만 데리고 오셨어요?"
"그때는 말야. 그렇게 생각을 했어. 그 녀석이 아예 학교를 안오는 거야. 그러면 안될거 같아서 그런 아이들을 우리반으로 다 데리고 왔지. 너는 잘 모르겠지만 중간중간에 구치소에 가서 애도 데려오고 그랬어. "
교사가 되고 나서 돌이켜 보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에 분위기를 어그러뜨리는 학생이 한명이 있으면 반 전체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선생님은 다른 반에서 받지 않는 학생들을 하나둘씩 데려오셨던 거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우리반 선생님은 홍종구 선생님이셨고 가르마가 2대8이셨다. 그래서 별명도 이대팔이셨다.
우리반에는 이상한 녀석이 하나 있어서 매일 다른 반 학생들을 우리반으로 데려와서 때리고 괴롭히는 게 예사였다. 나는 그런 폭력에 내가 당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도 못했다.
그녀석이 어느날 학생부에 끌려갔다. 쉬는 시간에 교실에 오더니 자고 있던 내 짝을 갑자기 마구 때린다. 내 짝은 자다가 갑자기 맞는데 막지도 않고 그냥 맞고 있었다. 겨우 겨우 말리고 수업시간이 되고 그 녀석은 다시 학생부로 내려갔는데 내 짝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수업시간 동안 겨우 진정시키고 재웠는데 쉬는 시간이 되자 다시 올라와서 마구 때린다. 이번에는 맞던 짝이 맞으면서 경련을 일으킨다. 반의 모든 아이들이 말리고 수업시간이 되고 친구는 양호실로 갔다가 아마도 병원으로 이송된듯 했다.
저녁이 되고 야자시간인데 담임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거기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셨고 나는 그동안 본 것들을 악에 차서 마구 쏟아냈다. 그러자 아주머니 한분이 아주 안쓰런 표정으로
"아줌마가 미안해~" 라고 하셨고 나는 그 순간 그게 무슨 소린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신 후 약간의 화를 내시면서
"너에게는 그저 나쁜 학생이겠지만 선생님에게는 그 아이도 너랑 똑같은 한명의 학생이야!"
라고 하셨다. 그 순간 도저히 그 말은 나에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녀석은 정말 나쁜 놈인데 왜 나랑 똑같은거지?
교사가 되고 우리반에 사건사고가 생기면 제일 먼저 고1때 담임선생님의 그 말씀이 떠오른다.
'아.. 이 아이도 내 반 학생이지..'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이가 밉지 않다.
고2때 담임선생님은 김원정 선생님이셨다. 수학선생님이셨는데 수학을 틀리면 한대씩 맞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참 좋으신 담임선생님이셨다. 고1때는 정말 까칠한 교과 선생님이시며 우리반 부담임이셨는데 담임이 되서더니 조금은 다르셨다. 많은 상황에서 우리편이 되어주셨고 무엇보다 내가 제일 좋았던 것은 야자시간이나 시험이 끝나고 나면 포스트잇에 몇가지 메모를 적어서 응원을 해주셨던 거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 그 메모는 정말 큰 힘이 되었고 선생님이 큰 누나 같은 느낌이라 참 좋았다
고3이 될 때 문과 애들 가르치기 힘들다고 이과로 넘어가셨는데 이과 친구들은 그당시 꽤 거칠어 져서 선생님께 꽤 반항을 많이 했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중간에 그만두셨다. 선생님이 그만두신다는 날 그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교무실에서 짐을 가지고 나오시며 선생님은 짐을 차에 싣으시면서 이야기 하셨다.
"진영아. 세상 일은 마음대로 안될 수도 있는 것들이 있어."
나는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선생님이 가시는 게 슬펐을 뿐..
고3때 담임선생님은 아버지와 안면이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의 지도 스타일은 자율에 맡기시는 거였다. 어쩌면 방임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고3 생활은 그냥 무난히 만화책과 피씨방과 대학가서 할 것들을 친구들과 이야기 하며 보냈다.(성적을 다 까먹어서 교대를 갔....)
나는 수능을 보고 교대를 갔다. 실습을 했고 임용고시를 봤고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12년 정도가 지났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주고 신경을 써야 하는 아이는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며 어느 순간 담임선생님들이 나에게 하셨던 방식들을 나도 아이들에게 사용하고 있다.
나는 내 스스로 길을 개척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건데 내가 배웠던 분들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부정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신의 교사로서의 그 모습은 완전히 당신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학생들에게도 이어질 것이라는 것.
혹여 지금은 당신을 싫어하는 학생이 있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당신에게 고마워 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지금 힘드실 선생님들. 포기하지 마시길.
항상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