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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Jun 07. 2016

체벌. 폭력과 훈육 사이

# Prologue 


 1. 나는 초중고를 2000년 이전에 마쳤다. 이 시기는 체벌이 엄연히 훈육이라는 이름 하에 존재하던 시기였고 많이 맞고 자랐다. 그리고 맞는 아이들을 보면 맞을 만 해서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들이 훨씬 많았다.


 2. 저번주 주말 <그것이 알고싶다>를 봤다. 


 이 프로그램은 꽤 유명한 사회고발프로그램이다. 저번주에는 '목회자를 꿈꾸는 젊은 전도사'가 미국 유학시절 벌인 사건에 대해서 취재를 하고 방송을 해주었다. 저번주 방송은 교사로서의 나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큰 충격을 주었다. 




#1.살짝의 방송 리뷰. 

 15살 건우라는 아이가 미국에 유학을 간다. 아는 목사의 집으로 갔는데 건우는 아직 영어실력이 부족하다.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던 20대 전도사가 건우를 귀여워하던 차에 '방학동안 자신의 집에서 영어공부를 같이 봐주마'라고 이야기 한다. 건우는 Ok를 하고 전도사의 집으로 간다. 전도사의 집에는 전도사와 전도사의 동생, 그리고 다른 영어공부를 하러 온 학생 이렇게 있었다. 영어공부를 시작한 건우는 전도사가 하루동안 준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전도사는 벌로 체벌을 하고 금식을 시킨다. 벌은 점정 강도가 세어지고 다른 대학생(가명 : 배철민)이 집에 종종 놀러오면서 또 다른 폭력과 괴롭힘이 유발된다. (미국의 여름방학은 거의 두세달이다.) 방학동안 건우는 배철민의 집에도 끌려가고 그들 앞에서 개보고 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강제로 틀어놓은 야동을 보며 자위행위도 했어야 했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전도사에게 성폭행도 당했다는 것이다. 

 방학이 끝나고 건우를 본 누나가 한국에 연락을 하고 어머님이 오셔서 건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미국 경찰에 신고하고 법으로 다 처벌을 받을 줄 알았으나 전도사는 영국으로 떠나고 전도사의 동생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고 다른 배철민 한명은 보석으로 풀려난 후 행방묘연. 

 방송에서 어렵게 찾아보니 전도사는 현재 한국에서 목사를 하고 전도사의 동생은 미국에 있고 배철민 또한 한국에 있었다. 방송에서 이들과 인터뷰를 하니 전도사는 그런 일이 전혀 없다 하고 동생은 배철민이 모든 걸 너무 심하게 했지만 그건 널 위해서였다고 한다. 미국 법정까지 끌려갔던 배철민은 이미 오래전 일을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이야기 했다.

 피해자는 고통 받고 있는데 가해자는 떳떳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한 그 배철민의 이야기는 정말 뻔뻔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카드뉴스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604720)




#2. 저렇게 진행된 이유는 말이야.


 사실 저건 하나의 주장일 수도 있다.(방송상으로는 거의 확실한 일이라고 보지만)  저 사건을 교사로서 분석을 해보자면 저 사건이 진행된 경위는 이렇다고 보였다..


 1. 건우를 가르치려고 전도사가 데려왔다.(이미 이 집에는 건우처럼 공부하러 온 학생이 하나 더 있다.)

 2. 건우가 의외로 진도를 따라오지 못한다.

 3. 진도는 밀리고 건우에게 간단한 체벌을 한다.. 

 4. 간단한 체벌로는 건우가 따라오지 못한다. 

 5. 그렇다면 더 강한 체벌을 가한다..

 6. 건우가 아직도 따라오지 못하는데 그건 덜 맞아봐서 그렇다.

 방송을 보면 대학생(가명 : 배철민)이 오고 나서는 아주 많이 변질이 되어 버리는 시점처럼 나왔다. 그걸 가지고 본다면.


 7. 배철민이 등장하며 체벌하는(괴롭히는) 모습만 봄.

 8.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철민이 더해줌. 

 9. 배철민이 건우를 괴롭히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면서 부터는 이미 교육을 위한 체벌이 아닌 그냥 가혹행위만 남음.




#3. 신규였던 나..


 건우가 미국에 유학을 간 시절은 (방송에서 나온 건우의 나이와 비교해본다면) 대략 내가 고등학생때이다. 그때는 사실 체벌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던 시절이었고  2005년 체벌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에서 많이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체벌이 그 후로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신규에 고학년 담임을 맡게 된 나는 몇가지 결심을 했는데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때리는 건 최후의 수단이고 되도록 안때릴 거지만 때리게 되면 학생이 억울하게 맞는다고 생각하게 하지는 않겠다.'

 이 생각은 기본 전제가 어쨌든 때리겠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최후의 수단이 너무 잦았다.

 저번에 쓴 [딩크의 학교문제집] 5. 내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http://goo.gl/8su51Z)에서도 때렸던 이야기들을 적었고 다양한 체벌이라는 이름하에 폭력들을 저질렀다. 단순히 그것 뿐일까? 지금 기억나는 것들 몇가지가 있다.


                    

 하나. 학생들 앞에서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시봉을 전 날 칼로 반 정도 금을 그어놨다. 그리고 다음날 그 지시봉을 아이들 앞에서 반으로 부수었다.

 둘. A4용지를 앞에 쌓아놓고 아이들이 떠들거나 잘못하면 그 종이 뭉치를 '팍'하고 쳐버렸다. 그러면 종이가 펄럭이며 내가 등장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된다.

 셋. 한참을 혼내도 변하지 않기에 쓰레받기를 내리친다는게 손에서 놓쳐서 내가 혼내던 학생 코 앞으로 날라갔다. 

 넷. 학부모 총회때 아이들을 때리지 않고 코를 잡아 땡긴다 했더니 차라리 때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실 저것들보다 훨씬 많이 있었을 거다. 




#4. 사실은 나도 그랬다.

 Public Agent 생활을 하고 나서 복직을 했다. 내가 맡은 6학년은 쉽지 않았다. 우리반에는 여럿 문제아라 불리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은 전교2짱이라 불리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우리반의 많은 아이들 뿐 아니라 다른 반의 아이들도 쉬이 때렸다. 

 처음에는 말로 달래다가 점점 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당시 6학년은 일진그룹 비슷하게 있었다. 그걸 해결하고 싶었다. 내 아이는 거기서 빼내고 싶었고 때마침 그녀석도 사고를 한번 쳐서 벌로 아침 8시 전에 학교에 와서 청소를 시켰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은 못가게 했다. 화장실은 허락만 받고 갈 수 있었다.(학교 끝나고도 집에 바로 가지 못하게 한 거 같다.) 물론 그 일을 하면서 그 아이의 어머님과는 정말 많은 대화를 했었고 어머님은 나를 따라주셨다. 

 그렇게 아이는 착해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동학년 협의를 마치고 교실로 내려오는 데 그녀석이 다른 아이를 복도에서 때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순간 나는 날라서 그녀석을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그리고 나서 교실로 끌고 들어온 후 책상에 무릎을 꿇리게 하고 엄청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며 이녀석에게 한번이라도 맞은 아이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니 대략 17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남학생들은 한번씩은 다 맞았고 여학생들도 몇명이 맞았다. 이 순간 너무 화가 가라앉지 못해서 말했다.

 "나는 지금 너를 때릴거야. 너에게 맞은 아이들의 수만큼 때릴거야. 그러니까 너는 이걸 맞으면서 반성해. 반성안할거면 맞지 말고."

 그 아이는 맞겠다고 했고 나는 정말 모든 힘을 다 해 때렸다. 그리고 다른 반을 돌며 다른 반에도 맞은 아이들이 있는지 물어봤다. 다른 아이들도 맞은 아이들이 한둘 있었고 나는 그녀석을 다른 반 아이들에게 전부 사과를 시켰던거 같다.(그 아이들 것만큼도 때렸던가?)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날의 나는 수업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취조하고 반성문을 쓰게 하고 계속 벌을 주었다, 그 벌이 지금 생각해보면 성인도 하기 힘든 것들이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한번 죽을 만큼 혼나봐야 다름에 안그러지.'라는 굳은 신념이 있었던거다. 


 방과후 그녀석과 각서를 썼다. 다름에 또 이런 일이 있을 경우 지금처럼 일찍 오는 것 이외에 더욱 많은 벌칙들을 받게 할 것이었다. 청소도 혼자 하는 것 말고도 몇대를 맞고 창에 다리를 올린 채 엎드려 뻗쳐를 하고 등... 

 그리고 나서 각서를 하나 복사해서 집으로 보냈다. 아이는 모든 힘이 빠진 채 집으로 갔고 저녁에 퇴근할 때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도 그래요. 하지만 아이는 더 나아질 거에요"

 다음날 어머니는 찾아오셨고 나에게 엄청 많이 따지셨다. 우리 아이가 잘못한 것은 알지만 선생님도 우리 아이를 그렇게 대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셨다. 


 그날 밤 나는 자책과 원망이 섞여 있었다. 결국은 내가 내 화를 못참았다는 자책감과 내가 그 아이를 생각하는 것을 왜 몰라주지? 라는 원망이었다.




#5. 무엇 때문에 그랬을 거 같니?


  학기초 이전 나는 학생들과 규칙을 약속을 했다. 전에 학교문제집5에서도 썼지만 그 규칙을 다 지키면 성인도 될 수 있는 수준이었을거다. 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규칙을 지키게 하기 위해 약속된 벌을 주었다. 하지만 학생들과 규칙을 정할 때 제일 힘든 것이 벌이다. 학생들은 흔히 자신이 걸릴 것을 예상하지 않고 남이 걸릴 때를 대비하여 강한 벌칙을 제시한다. 내가 제시한 벌칙들은 아마도 학생들이 보기에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것이었을테니 당연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는 열정이 있었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적어도 다음해에는 욕을 먹을 행동은 하지 않게 만들겠다는 생각과 뭐든지 열심히 할 수 있는 아이들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문제는 그 열정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최후는 나에게 참 잦았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조금씩 한두대를 때렸다. 그러면 고쳐지겠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변화가 눈에 띄게 없었고 나는 점점 지쳐갔던 거다. 그래서 그 지침이 한번에 분노로 뒤바뀌었다.

 "내가 이렇게 하는데 너희는 어떻게 몰라줄 수 있지?"



 문제는 그 열정과 벌칙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분노를 키웠다는 것이다. 폭력이나 다툼은 그대로 둔다면 시간이 지나가면서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 내 감정도 그랬다. 화가 나는 감정을 가지고 학생을 이성적으로 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며 감정적으로 대하면서 점점 체벌과 폭력은 전보다 심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정도로는 안되니 더욱 강한 체벌을 가하고 그러면서 내 화가 북돋아 지고 그러다 보니 더욱 강한 체벌을 가하게 되었던 게다. 


 사실 나는 기간제, 시간강사를 하면서 두가지를 연습을 했었다. 이성적으로 화를 내는 연습 그리고 학기초 규칙을 정하는 연습. 시간강사(보건강사라 부르던 시간강사가 있었다. 여선생님들 보건휴가때 대신 들어가는 시간강사. 현재는 주5일제가 정착이 되며 사라짐)는 매일 다른 반을 들어가야 하는터라 규칙을 정하고 화내는 걸 연습했었던거다. 하지만 여기에 감정이 들어가 버리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왔던 신목사나 배철민의 모습을 보며 내가 큰 충격을 받았고 추억이 떠올랐던 것은 그들에게서 그때의 내 모습을 본 것이다. 공부를 가르친다는 미명하에 폭력을 저질렀다. 

 그때 나는 그아이에게 져서는 안된다는 생각 말고는 없었던 듯 하다. 그래서 초중고를 다니며 때리던 선생님들을 보며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했던 그 행동을 내가 해버리고 만 것이다. 




 #6. 때린 아이가 그래도 제일 잘 찾아와.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잘되라고 때린다는 말이 통하던 시기니 그게 관심으로 보였을 수 있겠다. 실제로 관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신념을 가지고 때렸다고 해서 시간이 지난 후에 신념이 안바뀐다는 보장이 없다. 또한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할 수 없다. 그래서 때린 아이가 잘 찾아온다는 말은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개인적인 경험상 실제로 잘 찾아오는 아이들은 교감이 잘 된 아이들이다.)

 배철민이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장난이라는 말을 열정이라고 바꾸면 그 당시 내가 되는 거다.


 또한 신목사 동생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사실 이것 또한 체벌을 가하는 사람들의 단골멘트들이다. 

 "좋은 뜻으로 한거야"

 "너를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니야. 너도 알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력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 Epilogue

 그당시 내가 좋아하고 자주 만났던 형이랑 체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고 그 형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있잖아. 처음에는 많이 때렸어. 그런데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 그리고 점점 경력이 쌓여가면서 때리지 않고 아이들을 다룰 수 있게 되더라고. 혼내야 하는 경우면 때리거나 벌주지 않아도 비슷한 효과(반성의 효과)를 낼 수 있게 해주고 말야." 

 사실 그 당시는 저 말이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교육방법들과 철학이 등장하고 10여년 넘게 교사를 하다 보니 체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은 때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 교실에서 체벌이 완벽하게 없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 당시 신규였던 나를 본다면 지금의 많은 선생님들을 소개시켜주고 싶다. 그러면 지금까지도 후회할 일들이 없었을테니 말이다. 


ps. 작년 말인가 올해 초에 그 아이랑 어떻게 연락이 닿았다. 군대인데 휴가 나오면 친구들이랑 같이 뵈러 오겠다고.....(감사하다고 했던가?) 아무튼 만나서 밥한끼든 술한잔이든 하게 된다면 그때는 미안했다고 고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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