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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May 06. 2019

덴마크 디자이너 되기 03

면접은 길고 긴 과정의 시작일 뿐

2015년 5월의 이야기인데 2017년 4월에 글쓰기 시작해서 2019년 5월에야 3번째 이야기를 쓰네요..! 한참 잊고 있다가 들어와 봤는데 조회수가 1,200이 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댓글 보고 작년에 쓰다 만 글을 이어 써봅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엔 끝까지 써볼게요.


08 면접 준비


인턴은 서류에서도 떨어졌는데, 갑자기 정직원 면접이라니.

덴마크어도 못하지, EU 시민도 아니라 비자도 없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 이름도 못써먹지, 게다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시각, 의류, 제품, 디자인경영을 통합적으로 배우는 과에 들어가서 인지과학으로 이중 전공을 했다), 제대로 된 경력도 없고, 덴마크 디자이너들도 일자리 구하기가 그렇게 힘들다던데.. 과연 나를 뽑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몰려왔다.


그래도 어렵게 찾아온 기회, 안 되더라도 후회 없게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싶었다.

카페에 앉아서 공고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공고를 노트에 빼곡하게 베껴 적었다. 요구되는 각각의 항목에는 왜 내가 적격 한 지 등의 이유를 적었다. 웹사이트의 About 페이지도 꼼꼼히 읽고, 베껴 적고, 그동안 해온 작업들도 시험공부하듯이 유심히 하나하나 살펴봤다. 예상되는 질문과 하고 싶은 말도 적어봤다. 왜 들어가고 싶은지,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도.


지원한 회사는 인포그래픽에 특화된 디자인 스튜디오였는데, 사실 나는 일러스트랑 인포그래픽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게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했고, 그걸 보완하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간단한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가는 거였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를 테니, 덴마크와 비교해서 한국에 대해 설명하는 인포그래픽을 만들어갔다. 지금 보면 부끄럽지만, 그때의 절실함이 떠올라서 올려본다.



면접 전날, 문구점에 가서 예쁜 서류 파일과 두꺼운 종이를 샀다. 이미 메일로 보낸 포트폴리오지만 직접 종이로 들고 가면 좋을 것 같아 도서관에서 프린트도 해두었다. 면접(Interview)이 아니라 '커피 미팅'이라고 했으니 좋아하는 베이커리에 들러 쿠키도 샀다.


드디어 면접날. 캐주얼한 분위기 일 것 같아 면접용으로 전날 새로 산 회색 블라우스에 검정 바지를 입고 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간 사무실. 백 년도 넘은 오래된 큰 아파트를 세 회사가 방을 나눠서 쓰고 있었고, 복도의 맨 끝 주방에 딸린 방에서 면접은 시작됐다.


09 May 5 at 3pm. Coffee Meeting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인 만큼 너무 떨렸지만, '그들도 너랑 동등한 사람이다. 면접 못 보더라도 세상의 끝은 아니'라는 친구의 말을 곱씹으며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사장 두 명(형제지간)과 인턴 한 명이 고작인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소규모 스튜디오라 그런지 메일도 그렇고 면접도 최대한 편안하게 진행하려고 했던 것 같다. 도착해서 엄청 긴장했지만 커피를 한 잔 받아 들고, 준비해온 쿠키도 '커피 미팅이라고 해서 쿠키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사 왔다'며 어색한 농담을 하며 건네니 긴장이 좀 가시는 것 같았다.


한 시간 남짓되는 시간 동안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일을 진행하는지 등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면 답하고. 학교에서 뭐 배웠는지랑,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프로젝트 이야기, 학교에서 배운 것, 잘하는 것 등등. 프로젝트 하나 하게 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아 나 그런 거 정말 좋아한다. 너무 재밌을 것 같다 등의 능청스러운 대답도 하고. 처음엔 긴장했지만 준비해온 인포그래픽 보여주면서 한국 이야기도 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해나갔다. 하지만 마지막에 (공고는 영어였지만) 내가 덴마크어를 못하는 것과 에이전시에서 일해본 경력이 없다는 게 단점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해서 이야기했다. 나 말고도 세 명 더 면접을 본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즐거운 대화였지만 찝찝한 마무리로 좋은 예감과 불확실함이 공존된 기분으로 면접을 마쳤다.



10 공은 더 이상 내 손안에 없다


면접은 화요일이었고, 주말까지 답변을 준다고 했었다. 이미 면접은 끝났지만, follow up 편지를 쓰기로 했다. 이야기 즐거웠고 고마웠다. 덴마크어를 지금은 못하지만 계속 배울 계획이고, 언젠가는 잘하게 될 거라고. 빨리 배우는 편이니 일도 잘 배울 거라고. 이메일 대신 손편지로 몇 시간을 고심해 쓰고 자전거로 배달을 하러 갔다. 그런데 막상 회사 건물에 도착하니 대문이 닫혀있어서 안에 있는 메일함에 넣을 수가 없었다. 기다려도 아무도 안 나오길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문 앞 재떨이 밑에 두고 갔다. 못 읽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다리는데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답장이 안 온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때만큼은 시간이 왜 이리 안 가던지.. 결국 이틀을 더 기다리다가 조심스레 메일을 보냈다.


혹여나 안 좋은 인상을 줄까 봐 이 짧은 이메일도 고심해서 썼다


일 년 같던 하루가 지나고 답장이 왔다. 면접 하나가 미뤄져서 이번 주말에나 답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PS. 손편지 너무 고맙다. 이런 거 처음 받아본다. 는 주석과 함께


면접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자신감은 점점 낮아지고, 다른 공고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목요일 저녁, 다음의 제목으로 메일이 한 통 왔다.


Illustration test



(타이틀 사진: 2015년 4월 1일 우박이 내리치던 뒷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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