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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ul 08. 2017

덴마크 디자이너 되기 02

취업은 정신과의 싸움, 덴마크에 와서 첫 번째 면접을 따기까지.

03 덴마크에서 취준생이 되다.

덴마크로 떠나기 전 몇 달은 정말 정신이 없었다. 조기졸업에 아쉽게 실패하고, 마지막 학기에 3학점을 3주 만에 듣는 수업이 열려서 그 수업 따라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는데, 계속 해오던 파트타임 일도 했고, 거기에 자금을 더 모으려고 일을 하나 더했고, 취업준비에, 떠나기 전 가족, 친구들 만나기까지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온 덴마크.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출발 전날, 물통 뚜껑을 열어둔 채로 가방에 넣어 컴퓨터가 고장 났고, 이게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 한 달 월급 정도 되는 고액을 들여 컴퓨터를 고쳤다. 집이 텅텅 비어있으니, 중고 가구와 이케아로 싸게 산다고 샀어도 한 달 월급이 또 한 번. 그리고 비자가 안 나와서 덴마크어를 돈 내고 들었어야 했는데, 이런 식으로 자꾸 큰 지출이 나다 보니 애초에 6개월쯤은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 했는데 두 달 만에 쫄리기 시작했다.


방 하나를 오피스로 만들어서, 아침에 운동을 하고 와서부터 내 취준 일과가 시작되었다. 공고가 올라오는 웹사이트들을 매일 확인하고, 그중에서 괜찮은 것을 찾아서 에버노트에 저장해 두고, 물어볼 게 있으면 메일을 보내고, 그리고 지원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곳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진심을 담아 지원서를 썼다.



04 덴마크의 채용 방식

덴마크는 공채 같은 건 없고,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공고를 내서 채용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언제든 지원해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워낙 인구수가 적은 나라이다 보니 나의 프로필에 맞는 일을 찾기부터가 쉽지 않았다. 


덴마크는 석사과정 중 인턴을 한 학기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인턴십을 교육과정의 일부로 보아 무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SU라고 학교 다니는 동안 생활비가 나오는데, 인턴을 할 때도 이 보조금이 나와 사실 국가에서 대신 월급을 주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학생들 중에는 외국인들도 많아서, 인턴 공고는 대부분 영어로 난다. 꼭 학생 대상이 아니더라도, 덴마크에서 취업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관문으로 인턴십이 이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에 정규직은 아주 작은 스튜디오가 아닌 이상, 덴마크어로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로그래밍, 엔지니어링은 다른 얘기겠지만 디자인의 경우는 그렇다.

그래서 영어로 된 정규직을 1번 우선순위로, 영어로 된 인턴 (하지만 진짜 일하고 싶은 곳)을 2번 우선순위로 두고 지원을 했다. 무급이라고 명시가 안 되어 있는 것들도 종종 있는데, 안 적혀 있으면 무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05 취업할 때 필요한 것들

보통 큰 회사는 웹사이트 시스템을 통해, 작은 회사는 메일로 지원한다.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건 이력서(CV)와 지원서(Cover Letter)이다. 나는 디자이너로 지원했기 때문에 여기에 추가적으로 포트폴리오도 제출해야 했다. 포트폴리오는 웹사이트로 만들거나 pdf로 제출하는데, 한참을 고민하다가 웹사이트는 내가 좋아하는 작업들을 다 올리고, pdf로는 업무랑 가장 관련이 있는 프로젝트를 4-5개 정도 뽑아서 만들었다.



06 지원에 관하여

지원 유형을 두 가지로 나눠보자면, 1) 일단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거는 무조건 다~ 지원하고 보는 다다익선 유형, 2)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고 읽어보고, 진짜 원하는 곳에만 지원하는 유형이 될 것 같다.


1번 방법은, 큰 회사에 지원하면서 이력이 중요한 업종에 적합할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칸을 채우면서 지원하는 회사들은, 자기네들만의 프로그램을 돌려서 사람을 거른다고 한다. 그런 거라면, 아무도 읽지 않을 지원서를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 써가며 쓸 필요는 없다.


나는 2번 방법을 택했다. 공고가 나면 일단 회사 웹사이트 들어가서 작업부터 보고, 그게 괜찮으면 공고를 제대로 읽었다.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회사에 맞게 CV도 수정하고, 포트폴리오도 새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디지털 디자인 쪽이라면, 같은 프로젝트더라도 디지털 쪽의 작업을 더 많이 넣는다던가, 아니면 CV에도 그런 역량을 더 강조해서 적을 수 있다.


처음에는 CV에 뭐를 적어야 하는지, 디자인은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지원서에는 무슨 말을 얼마나 길게 써야 하는지 아예 감이 안 왔다. 교수님과 주변 외국인 친구에게 부탁해서 영문 이력서도 받아놓고, 다른 디자이너들을 엄청 찾아서 참고하고, 구글링으로 찾은 취업 관련된 기사들도 정말 많이 읽고, Skillshare에서 CV 잘 쓰는 법에 대한 동영상도 보면서 감을 알아갔다. 집에서 챙겨 온 비즈니스 이메일 책을 보면서, 예의를 갖춰서 메일 쓰는 법도 배워갔다.


처음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막상 다 만들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한 번 한 번 지원할 때마다 감도 생기고 속도도 붙고, 나아지는 걸 볼 수 있었다. 



07 나의 지원 스토리

11월부터 5월까지, 약 6-7개월의 시간 동안 지원한 곳은 사실 10군데도 안된다. 한국에 있을 때 처음 지원한 가구 회사의 디자인 인턴이 운 좋게 바로 면접까지 이어졌는데, 너무 긴장해서 망쳐버렸다. 그러고 나서 한국에서 시간에 쫓겨 지원한 곳들은 보기 좋게 떨어지고, 덴마크 온 후로 열심히 준비해서 지원한 곳들도 하나둘씩 안됐다는 답장이 왔다. 


이렇게 길게오면 일단은 설레게 되는데, 잘 읽어보면 안됐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몇 번 지원한다고 해서 바로 될 만큼 호락호락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다. 지원할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가 되어서 사랑에 빠진 채로 지원하는데, 상대는 나를 만나보고 싶지도 않아한다니. 안된 이유가 비단 나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을 뽑는다던가, 나보다 훨씬 경력 있는 사람이 지원한다던가 등등 변수는 정말 많다) 머리로 아무리 달래 보아도 슬프고,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몇 번 안됐다는 메일을 받아보고 나서, 자존감이 꽤 낮아졌고, 언제 수입이 생길지 모르니 돈을 쓰기가 조심스러웠고,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 있을지, 디자이너가 아니라 일단 닥치는 대로 뭐라도 해봐야 할지, 그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쯤 지원하고 싶었던 회사가 있는데, 언제까지 지원해야 되는지 확실치 않아서 메일로 문의를 했다. 그러자 바로 내일 취합해서 본다는 답장이 왔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준비를 많이 못해놨는데, 그 답장을 받고 오래간만에 엄청 집중해서 밤늦게까지 포트폴리오도 새로 만들고, 간절한 커버레터도 썼다.


준비가 안됐는데, 내일까지 보내라니


메일도 너무 길지 않게, 하지만 나이스 하게 적으려고 그 짧은 메일을 한참을 고심해서 쓰고, 전송 버튼을 누르면 이미 공은 내 손에 없다. 메일이 언제 오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메일이 온순간 바로 열어서 됐는지 안됐는지 중요한 문장부터 찾으려던 그 순간들.


그렇게 밤늦게까지 준비해서 지원했던 회사에서, 며칠 후에 커피 한 잔 하러 오라는 메일을 받았을 때, 늘 보던 ‘아쉽지만 다른 지원자를 선택했다’는 문구 대신, 만나보고 싶다는 말을 보자 벅차서 눈물이 흘렀다. 아직 된 건 아니었어도, 거절만 당하다가 누군가는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위안이 됐다. 아, 여기서 어쩌면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이렇게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면접은 이틀 후, 어떻게 준비해 가야 하나 또 한 번의 고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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